그의 '마지막 토스'는 행복했다

천안 | 이용균 기자 2016. 3. 6.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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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현대캐피탈, 사상 첫 18연승 하던 날
ㆍ최태웅 감독, 선수로서 마지막 ‘은퇴식’

현대캐피탈이 프로배구 최초로 18연승 대기록을 달성했다.

6일 천안 유관순체육관, 현대캐피탈은 우리카드를 3-0으로 꺾었다. 마지막 7연승 동안 상대팀에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았다. 한 라운드 전체를 무실세트 승리로 장식한 것은 프로배구 처음이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이 6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우리카드를 꺾고 최다연승 신기록(18연승)을 수립한 뒤 이어진 그의 선수 은퇴식에서 아버지 최만호씨(왼쪽)로부터 꽃다발을 받으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천안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18연승을 기념하는 행사가 끝난 뒤 갑자기 코트에 불이 모두 꺼졌다. 캄캄한 가운데 전광판에 옛 경기 장면이 흘러나왔다. 그 안에서 머리를 빡빡 깎은 세터 최태웅이 배구 공을 올리고 있었다. 오랜 삼성화재 선수 생활 중 갑작스레 이뤄진 현대캐피탈로의 이적, 그리고 더 갑작스럽게 찾아온 림프암이라는 병마. 최태웅은 모든 걸 이겨내고, 감독으로서 현대캐피탈의 정규시즌 우승과 18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최태웅 감독(40)이 아닌 선수 최태웅의 깜짝 은퇴식이었다. 현대캐피탈 구단이 몰래 준비했다. 구단 관계자는 “감독님 가족에게도 은퇴식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감독님에게도 코트에 도착한 뒤에야 행사가 있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올시즌을 앞두고 선수에서 곧바로 감독이 됐다. 정태영 구단주가 배구단 변화의 첫 단추로 선택한 파격적 임명이었다. 당연히 은퇴식을 할 겨를이 없었다.

정태영 구단주가 최 감독의 선수 시절 등번호 6번이 달린 유니폼을 선물했다. 최 감독의 아버지 최만호씨가 꽃다발을 들고 앞에 섰을 때 최 감독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한 채 부모님을 끌어안았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이 6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선수 은퇴식에서 그의 토스를 받아 스파이크에 성공한 문성민과 포옹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천안 | 김기남 기자

최 감독은 “초등학교 때 배구를 시작했다. 그때 아버지가 당시엔 귀했던 작은 캠코더로 내 경기 장면을 찍어 주셨다”며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고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는데, 일만 너무 좋아해서 집에도 잘 안 들어가는 불효자”라고 말했다.

이 눈물은 그가 코트에서 흘린 두 번째 눈물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운 적이 없다”고 말한 최 감독은 “사실 지난 시즌 안산 OK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서 진 뒤 화장실에서 운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창단 이후 가장 부진했던 지난 시즌, “고참으로서 선수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고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됐다.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서 라커룸 화장실에서 혼자 많이 울었다”고 했다.

어쩌면 그 눈물의 힘이었다. 선수에서 곧장 감독이 됐고, 치열한 독기로 새로운 배구를 만들었다. 선수로서 못 이룬 꿈을 감독으로 일궈냈다. 첫 번째 눈물이 분함에서 나왔다면, 18연승 대기록을 세운 날의 눈물은 해냈다는 기쁨의 눈물일지도 모른다.

최 감독은 마이크를 들고 팬들을 향해 “현대캐피탈에 처음 왔을 때 선수로서 우승해야겠다고 많이 생각했는데, 그걸 못했다. 마음속 부담이 많았다”며 “여기 뒤에 서 있는 선수들이 저 대신 우승을 해줘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은퇴식의 마지막 행사는 선수 최태웅의 공식적인 마지막 토스였다.

개인 통산 토스 1만2571개 성공이라는 프로배구 최고 기록을 가진 명세터의 토스. 1만2572번째 토스는 팀의 주장 문성민을 향했다. 양복 상의를 벗고, 넥타이도 풀고 네트 앞에 섰다. 여오현의 리시브를 최태웅이 토스했고, 문성민이 네트 너머에 꽂았다. 1만2573번째 토스는 윤봉우 플레잉 코치를 향했다. 깔끔한 A 속공이 완성됐다. 1만2374번째 토스는 외국인 선수 오레올 까메호가 특유의 강타로 마무리했다.

이제 선수 최태웅은 진짜 끝. 최 감독은 “은퇴식을 했지만 여전히 코트에 남는다”고 했다. 목표는 물론 챔프전 우승이다. 최 감독은 “챔프전에서도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드리겠다. 많은 응원 바란다”며 환하게 웃었다.

<천안 |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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