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대한 조롱과 전복"..풍자 예술의 역사와 의미

송민섭 2016. 3. 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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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경선의 최대 승부처였던 ‘슈퍼 화요일’(지난 1일) 이후 정치 패러디물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 공화당 경선 선두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를 겨냥하고 있다. 


◆미국에서 쏟아지는 정치 풍자물
미국 크툴루신화 동호회는 최근 유세하는 트럼프 후보 얼굴에 크툴루 캐릭터를 합성한 이미지를 선보였다. 크툴루신화는 작가 H P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괴기스럽고 음울한 판타지를 의미한다. 이 동호회는 비슷한 합성이미지에다 ‘왜 우리는 덜 사악한 후보에게 투표해야 하는가’라는 문구가 적힌 배지까지 제작했다.


클린턴 힐러리 민주당 경선 후보도 비판의 화살을 피해가지 못했다. 인기 가수 마일리 사이러스는 3일(현지시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2위 후보) 버니 샌더스의 인스타그램 지지자 vs 투표장 지지자들’이라는 풍자 섞인 만평을 내걸었다. 국민 지지 여론이 높은 샌더스가 불공평한 경선룰 때문에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치 풍자가 패러디를 넘어 예술로 승화한 경우도 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 한 술집 화장실에는 롤링스톤즈 앨범 자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입술 모양의 소변기에다 트럼프 입을 맞춘 벽화가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막말을 일삼는 트럼프의 입에다 오줌을 갈기자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호가스, 하트필드의 살아있는 권력 비판
서구에서 이같은 정치 풍자화의 뿌리는 꽤 깊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18세기 영국 윌리엄 호가스(1697∼1764)와 19세기 프랑스 오노레 도미에(1808∼1879)의 작품들이 대표적인 정치 풍자화다. 호가스는 1754년 당대 정치권의 협잡과 정쟁, 부패를 꼬집는 ‘총선 연회’를 발표했다. 도미에는 1831년 프랑스 귀족·부자만을 위한 정책을 편 루이 필리프 1세를 탐욕스러운 괴물에 묘사한 ‘가르강튀아’를 통해 1848년 시민혁명의 신호탄을 쐈다.


20세기에는 독일 태생의 다다이스트 존 하트필드(1891~1968)가 정치 풍자 예술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독일 공산당 창단멤버이기도 한 그는 1920년대 히틀러와 나치정권의 위선과 잔혹성을 풍자한 포토몽타주 작품을 잇따라 발표했다. 그와 동시대를 산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하트필드의 작품처럼) 일상의 사소하기 짝이 없는 진실한 파편들이 회화보다도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앤디 워홀도 닉슨 비판 작품 선보여
팝아트의 선구자 미국의 앤디 워홀(1928∼1987)도 정치 풍자화를 그렸다. 그는 1972년 작품 ‘리처드 닉슨’에서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닉슨 대통령을 악마처럼 묘사한 뒤 ‘(민주당 후보) 맥거번에게 투표하라’고 적었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표현한 작품도 있다. 척 클로스(76)의 2006년작 ‘빌 클린턴’이나 셰퍼드 페어리(46)의 2008년작 ‘희망(HOPE)’이 대표적이다.


유럽의 반난민 정서를 꼬집은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와 아랍권의 인권 침해, 종파 갈등을 풍자한 이란 출신의 풍자만화가 마나 네예스타니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풍자 예술가들이다.


일본에는 아베 신조 정부의 우경화 및 원전 재가동 정책을 비판하는 그래피티 작품으로 ‘일본의 뱅크시’로 불리는 ‘281_anti nuke’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풍자작가로는 2014년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출품작 ‘세월오월’의 홍성담 화백과 풍자화 연작 ‘문신시리즈’를 낸 이홍원 화백 등이 꼽힌다.


◆“풍자예술은 권력에 대한 항변”
풍자 예술의 본질은 무엇일까. 미술평론가 홍경한은 ‘세월오월’ 논란 직후인 2014년 11월 한 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풍자작가들은 서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세태를 예리하게 비판하고 냉소적 진술을 통해 시대를 통찰하고 항변한다”며 “권력이나 무력 따위로 눌러 꼼짝 못하게 할수록 풍자는 더욱 질긴 생명력을 내보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가디언은 하지만 이같은 비판 예술은 대체로 권력에 패배해왔다고 지적했다. 워홀이 1972년 현역 대통령을 한껏 조롱했지만 닉슨은 재임에 성공했다. 또 오늘날 대다수 미국인은 닉슨은 기억하지만 맥거번은 그렇지 않다. 가디언은 이에 “풍자예술은 거들 뿐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후보의 경쟁력”이라고 잘라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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