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용소 같은 '외화벌이' 북한 노동자들의 삶
러시아 극동지역의 중심지인 블라디보스토크. 이곳 국제 공항은 일주일에 두 번씩 북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북한 국적기인 고려항공은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평양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는데, 이때마다 공항 터미널은 북한말로 떠들썩해진다. 이렇게 북한 사람들이 블라디보스토크를 찾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개인 자격의 돈 벌이가 아니라, 북한의 '외화벌이' 사업에 동원되는 이른바 '송출 노동자'들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만 이런 북한 송출노동자가 5천여 명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쏟아져 들어오는 수와 달리,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는 정작 북한 사람들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북한 노동자들은 모여있는 곳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건설현장'이다. 러시아에 와있는 북한 송출노동자 대부분이 건설분야에서 일하는데다가, 숙식을 건설현장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러시아 전역에 이런 북한 노동자가 3만 명에서 최대 5만 명까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취재진은 북한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건설현장을 찾았다. 접촉이 쉽지만은 않았다. 말을 걸어도 못 알아듣는 척 대답하지 않거나 도망가는 것은 예사였고,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북한 노동자들의 이런 반응은 '윗선'에서 내려진 지시 때문으로 보였다. 최근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북한 당국은 외국에 있는 북한 사람들에게 남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더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어렵게 마음의 문을 연 북한 노동자들은 그들만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들이 가장 괴로운 부분이라고 토로한 것은 '국가계획분'이라는 것이었다. 국가계획분은 일종의 사납금처럼 북한 노동당에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돈을 말한다. 노동자 개인마다, 또 속한 인력 송출회사마다 다소 차이가 나긴 하지만, 대개 한 달 수입의 절반 이상을 떼이는 셈이다. 노동자들은 중간에서 소속된 송출회사가 상당금액의 돈을 가져가지만, 자신들도 그 가운데 정확히 얼마만큼의 돈이 북한 당국에 가는지는 알지 못한다며 투명하지 않은 국가계획분 징수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러시아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의 경우 한 달에 4만에서 7만 루블(한화로 60만원~110만원 정도)를 번다고 한다. 이 가운데 '국가계획분'과 송출 나올 때 탔던 '비행기값' 등 수속료, 일감을 가져다주는 중개인에게 주는 '수수료'등을 제하면 실제로 북한 노동자들이 손에 쥐는 돈은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이런 '국가계획분'은 만일 해당 월의 할당량을 내지 못하면 이월이 된다. 나라에 빚이 생기는 것이다. 이 국가계획분의 미납분은 북한으로 돌아가도 계속 따라다니기 때문에 북한 노동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KBS 취재파일K 취재진은 노동자들의 관리인이 이 국가계획분의 납부를 어떻게 압박하는지 보여주는 내부 동영상을 입수했다. 이 영상을 보면 북한 인력 송출회사의 사장은 대놓고 노동자들을 협박한다. 당 창건 기념일이 있는 10월의 국가계획분을 특별히 강조하기도 하고, 심지어 다리가 아픈 노동자에게까지 노동을 강요한다. 이들은 국가계획분을 받아내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총화(일종의 조회)'를 열기도 한다.
취재진이 확보한 영상을 보면 북한 노동자들의 일상도 확인할 수 있다. 매일 힘을 쓰는 강도 높은 건설 노동을 하지만 식사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밥 한 그릇에 반찬은 삶은 달걀 하나, 그리고 멀건 국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숙소를 벗어나면 상황은 더 열악해진다. 지저분한 공사현장에서 노숙인처럼 숙식을 해결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열악하고 위험부담이 큰 생활이지만, 강제로 외국에 끌려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앞다퉈 해외에 나가기 위해 북한 노동자들은 인맥에 뇌물까지 동원한다고 한다. 이것저것 다 떼이고 손에 쥐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해도, 북한 내에서 버는 것보다는 사정이 낫기 때문이다. 취재진이 만난 한 북한 노동자는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가족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집으로부터 '돌아오지 말고 돈을 더 벌어오라'는 편지를 받고 어떻게든 버텨보려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자들이 외국에 나가 벌어들이는 '외화'는 한 해에 대략 2억 5천만 달러 수준으로 분석된다. 개성공단 폐쇄에 이어 유엔 안보리의 고강도 대북제재가 시작되면서 북한의 외화 수급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번 대북제재는 광물 수출까지 막는 등 북한의 외부 돈줄을 죄는 각종 수단이 망라된 유례없는 조치이다. 하지만 '인력 수출'만큼은 이번 대북제재에서 빠져 있다. 앞으로 북한이 송출 노동자를 더욱 확대하고 더 다그칠 것으로 보이는 배경이다. 지금보다도 열악해질 북한 노동자들의 상황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취재파일K <단독 입수> 北 '외화벌이' 현장 속으로 3월 6일(오늘) 밤 11시 20분 KBS 1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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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기자 (wakeup@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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