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애플 vs FBI, 애플이 지면 미국도 한국 된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2016. 3. 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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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애플 vs FBI 논쟁, 한국 사회에서 배워야 할 것들

[미디어오늘 김국현 IT 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애플과 FBI가 격론중이다.

샌 버나디노 사건. ISIS에 충성하는 용의자에 의해 13명이 사망한 테러가 일어났다. 쉽지 않은 테러 수사. 수사 당국은 용의자의 폰을 수색하려 했으나 암호에 막힌다. 네 자리 숫자니까 0000에서 9999까지 만 번만 시도하면 된다. 40초에 한 번씩 100시간 남짓 되니 이 정도면 안보를 위해 할만한 작업이다. 하지만 정말 이런 막무가내 시도를 하면 10번 만에 폰은 공장 초기화가 되고 말 것이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냐며 FBI는 애플을 조른다. 문을 열 방법을 달라는 것. 그런데 이 수사협력요청에 대해 애플은 그런 방법은 원래 없고 만들어 줄 수도 없다고 응한다. 이어서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등도 모두 애플에 공개적으로 찬동한다.

때는 바야흐로 미 대선 정국. 국가 안보를 위해 좀 열어 보겠다는데 그걸 굳이 싫다 하다니 졸렬한 마케팅이다, 아니다 허용한다면 빅브라더에게 우리 인생의 CCTV를 쥐여주는 것이다. 뜨거운 격론이 펼쳐진다.

미국 여론은 “왜 열어 주지 않지, 애플?”의 분위기가 우세했다. 공화당 후보들은 애플에 대해 원색적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시민들은 국가안전보장과 프라이버시가 과연 동등한 것으로 비교가 가능하냐 물었다. 가족과 사회의 안위가 있고 난 후에 프라이버시가 있다는 것. 만약 여러분의 딸이 살해되었고, 그 핵심 실마리가 암호 걸린 폰 안에 있다면 어떤 심경일까. 실제로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사회의 안녕과 국가 안보를 위해 용의자의 신상은 당연히 열어 봐야 하고 확보되어야 한다. 지금도 이미 서버 쪽은 영장만 있으면 얼마든지 뜯어 가고 있다. 여러분에게 혐의점이 있다면 그 순간 여러분의 데이터는 이제 여러분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의 논점은 과거의 데이터가 아니다. 바로 미래의 코드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데이터를 가져가는 것이 아닌, 앞으로 벌어질 일도 빼돌릴 수 있는 코드를 짜라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그냥 FBI만 살짝 이용하게 하거나 제조사가 대신 실행해 주면 된다고? 하지만 코드의 존재가 드러나는 이상, 그 코드는 마치 절대 반지처럼 욕망의 대상이 될 것이다. 적성 국가에서부터 악질 해커까지 누구나 한 번쯤은 쓰고 싶은 코드가 된다.

모든 것이 연결될 앞으로의 시대에 그 코드는 곧 여러분을 지배하게 될 수도 있다. 스마트폰에서 사물인터넷까지 그리고 금융에서 헬스케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 그 자체는 디지털로 복제되고 있다. 만물 인터넷에 만능열쇠가 필요한가? 그리고 그것을 국가에게 주는 것이 맞는가? 괴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공동체의 수호자에게 마법을 허락했더니, 오히려 수호자가 그 마법에 취해 괴물로 변해간다. 미국의 수정헌법이 경계하는 것은 바로 이 수호자 괴물의 출현이다.

예컨대 수정헌법 1조는 언론의 자유를 다루고 있다. 무엇을 짜든 말든 그것은 나의 자유인데 국가가 원하는 코드를 짜라는 것은 국가가 원하는 기사를 쓰라는 것과 마찬가지. 하드디스크를 압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공포가 코드 작성 의뢰에는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기업이 소비자의 자유를 위해 정부와 싸우는 일은 한국에서는 낯설다. 안기부의 보안 지침 규제에 뿌리를 둔 공인인증서의 중흥, 그리고 국정원 인증에서 심지어 국정원과 공동 개발을 하는 보안 기술까지 보안이란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닌 국가를 지키는 것이라는 상식이 된 곳이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관주도 산업 정책과 정경 유착은 노(No)라고 말하지 못하는 기업을 만들었다.

심지어 헌법의 가치를 수호하려는 의도였더라도 잘못 발언했다가는 애국심을 의심받게 되고, 기업 실적과 개인 생활에 피해가 갈 수도 있다. 그런 사회에서는 원점으로 되돌아가 정의가 무엇인지 탐색할 동기를 잃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것은 다름 아닌 개인이고 곧 소비자다. 지배받지 않고 자립한 개인. 강한 개인의 탄생이란 바로 소비자의 탄생이다. 기업은 그렇게 개인의 힘이 빠진 사회를 두려워해야 한다. IT(정보기술) 기업들이 반정부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애플은 전문가 위원회를 열어 해법을 도출하자고 제안했다. 번거롭게 위원회 열 필요 없이 한국을 사례 조사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미래를 볼 코드를 정부가 다루려는 사회, 또 기술 적용에 머물지 않고 급기야 테러방지법 등 아예 제도로 이를 일상화하려는 시도에 이르기까지.

이번에 애플이 지면, 미국도 아마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남의 일 같지 않아 흥미진진하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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