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차별, 외모평가, 여성비하 그만 좀 해라"

신은별 2016. 3. 5.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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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여성들이 말하는 성평등의 희망사항
여성이 배제되지 않는 직장, 노동가치에 걸맞은 임금 등 2030 여성들의 희망은 다양했다. 지난해 3ㆍ8 한국여성대회에 참여한 여성들이 셀카를 찍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제공

여성차별은 광범위하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발언에서부터 채용, 임금, 직종, 승진 등 고용 상의 차별, 성적 대상화와 성 역할 고정 등 층위와 강도를 달리하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성 평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마련된 지 오래됐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고, 일상과 관습의 차원에 깊이 침윤해 있는 차별의 문화는 종종 제도를 일거에 무력화한다. 2030 여성들에게 물었다. “성 평등한 사회를 위한 희망을 한 가지만 꼽는다면 무엇입니까?”

“직장에서 차별이 너무 싫어요”

한모(29ㆍ유치원 교사)=“월급이 정말 얼마 안 된다. 여성 종사 비율이 높은 직업은 월급이 다 낮다. 노동 강도가 낮은 것은 결코 아니다. 여자들이 많아서 월급이 낮은 걸까, 원래 가치가 낮은 분야에 열등한 노동자인 여자들이 몰려간 걸까. 노동의 가치를 공정하게 다시 산출했으면 좋겠다.”

송모(27ㆍ미술학원 원장)=“미술대학 졸업 후 미술학원에서 3년간 아이들을 가르쳤다. 지난해 기업에 들어가 내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알아봤는데 쉽지 않았다. 기업이 좋아하는 ‘취업 연령’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아무리 남자가 군대를 다녀온다고 해도 남자에게는 “서른 살까지는 괜찮아” 하는 분위기 있는 반면 여자에게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라고 흔히들 말한다. 주변에서 “올해가 마지막이야” 소리를 하도 많이 해서 마음만 조급해졌다. 미술학원을 차린 이유다.”

백모(30ㆍ광고회사 조연출)=“똑같이 현장에서 뛰어다니면서 일을 하는데, 여자니까 ‘빡센’ 현장을 못 견딜 거라고 생각한다. 같이 조연출 바닥을 굴러도 입봉(자기 이름을 붙인 첫 작품 제작) 비율은 남자가 절대적이다. 입봉하는 여자 연출은 진짜 손에 꼽게 적다. 여자 조연출들이 입봉까지의 시절을 ‘못 견뎌서’만은 아니다. 기회는 제발 똑같이.”

김모(27ㆍ회사원)=“회사가 남자들이 쿵짝쿵짝해서 돌아가는 느낌이다. 남자들은 윗사람들과 술ㆍ담배 등으로 다져진 친분으로 일을 해결하려 한다. 그래 놓고 여자들이 일 다 끝내고 가려고 하면 그걸 욕한다.”

서모(26ㆍ회사원)=“여자들을 배려한답시고 되레 소외시키는 경우가 많다. 아직 사회 주류를 이루고 있는 남자들끼리 족구대회 같은 걸 만들어 친목 도모하면서 여자들은 ‘그냥 쉬라’고 한다. 회식할 때도 ‘여자 사원 모임’을 따로 만들어 ‘파스타 식사권’을 나눠주는 식이다. 인디언 보호구역도 아니고, 이건 배제다.”

이모(28ㆍ회사원)=“남자들은 근무시간 중에 담배 피러 가는 걸 땡땡이라고 생각 안 하면서 여자들이 커피 사오는 건 땡땡이 친다고 한다. 그래 놓고 자기들은 “담배 피러 가서 다 일 얘기만 한다”고. 우리도 나가서 “일 얘기” 한다.”

지난해 3ㆍ8 한국여성대회에 참여한 여성들. 한국여성단체연합 제공

“성적 대상으로 보지 마세요”

나모(27ㆍ회사원)=“성희롱에 대한 감수성이 좀 높아지길 바란다. “‘예쁘다’고 하는데 왜 좋아하지 않냐” 이런 말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여자들은 예쁘다고 해주면 다 좋아라 하는 존재로 여기나. 외모에 대한 평가는 제발 마음 속에서 방백 처리하길 바란다.”

김모(28ㆍ출판사 편집자)=“전문직이어서 다른 직종에 비해 여성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남성 작가가 많은 문학계 술자리에 가면 ‘여자들이 있으니까 좋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긴한 일을 함께 얘기할 수 없다거나 직업적인 능력을 평가절하 당할 때 기분 나쁘다.”

“그쪽 엄마도, 아내도 아니랍니다”

정모(27ㆍ인문학 석사과정)=“청소나 커피 타기와 같은 잡무가 여자 대학원생들에게 암묵적으로 강요된다.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대학원에 온 건데 교수님들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김모(21ㆍ아르바이트생)=“물고기 키우는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장이 “그런 거 키울 대신에 얼른 시집가서 애나 키워”라고 말하더라. 그저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남자였어도 그렇게 얘기했을까. ‘여자’가 된 순간부터 아이를 낳는 것이 그 여성의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너무 꼰대스럽다. 대한민국의 저조한 출산율을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에게만 전가하는 못된 심보. 게다가 난 고작 스물 한 살인데.”

“저 만만한 사람 아니에요”

나모(25ㆍ대학생)=“연애할 때 성관계 문제에서 불평등을 많이 느낀다. 성병의 위험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있는데 자궁경부암 주사는 여자만 맞는다. 피임 문제에 있어서 내가 느끼는 불안과 남자친구가 느끼는 불안이 다른 것 같다. 콘돔을 써달라고 ‘부탁’해야 하고, 혹시라도 발생할 임신의 불안은 나만의 몫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게 불안하면 네가 피임약을 먹으면 되잖아? 라고 말하는 남자들이 있는데, 콘돔을 사용하는 것과 피임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것은 몸의 부담 차원이 다르다.”

이모(27ㆍ회사원)=“핑크 택스에 분노한다. 똑같은 면도기인데 왜 여자 면도기가 더 비싼가.”

신은별기자 ebshin@hankooilbo.com

한소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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