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노년도 젊은 날도 악몽이 되는 사회..각자도생이 답일까
[경향신문] “솔직히 말하면, 빨리 죽고 싶습니다. 죽어버리면 돈 걱정을 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이제 정말 지쳤습니다.”
80대 중반의 다시로 다카시는 누구 못지않게 성실하게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맥주회사에 취직해 맥주홀에서 웨이터, 경리 등 12년간 묵묵히 일했다. 40세가 넘어서는 그렇게 모은 돈과 퇴직금, 대출받은 돈을 더해 소망하던 자기 술집도 차렸다. 현역 시절 “매일이 바빴고 매일이 즐거웠다”는 그가 이제는 “하루빨리 죽고 싶다”고 호소한다. 비참한 노후의 삶 때문이다.
다시로는 도쿄의 낡은 연립주택에서 홀로 산다. 3평 넓이 방에 1평 반 정도의 부엌까지 합쳐도 5평이 안되는 좁은 집이다. 한 달에 100만원 정도의 연금을 받지만 부족하다. 매달 집세로 60만원을 내야 해서다. 남은 40만원 중 공공요금과 보험료 등을 내면 고작 20만원 남는다. 전기는 오래전 끊겼다. 하루 5000원 이하로 식비를 아껴야 겨우 적자를 면한다. 돈이 떨어지면 두 다발에 1000원 하는 냉국수 하나로 하루를 버텨야 한다. 다시로의 유일한 사치는 연금이 들어오는 날, 한 달에 한 번 대학식당에서 4000원짜리 점심 정식을 먹는 것이다. 싼 집으로 옮기면 조금은 여유가 생기겠지만, 이사 비용이 없다.
■ 노후파산…NHK 스페셜 제작팀 지음·김정환 옮김 |다산북스 | 316쪽 | 1만5000원
<노후파산>은 2014년 방송된 NHK 스페셜 <노인표류사회-‘노후파산’의 현실> 제작팀이 당시 취재기록을 바탕으로 쓴 르포르타주다. 저자들이 만난 노인들 모두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일했다. 와타나베 노리코는 60세가 넘어서까지 호텔 청소원으로, 다케다 도시오는 자위대에서 근무하다 대형 제빵회사에 취직해 공장 제조 라인에서 일했다. 요시다 마사루는 80세가 넘은 지금도 밭농사를 짓고, 가와니시 신이치는 평생을 목수로 살았다.
그럼에도 이들은 ‘노후파산’의 늪에 빠져, “빨리 죽고 싶다”며 몸부림친다. 가난한 노인들을 위한 생활보호 지원제도가 있지만, 연금 수입이 있다는 이유로 혹은 1000만~2000만원의 예금이 있다는 이유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혜택을 받을 수 있어도 정보에 어두워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병이라도 걸리면 이들의 삶은 한층 더 피폐해진다. 생활비를 아끼려 죽을 병이 아니면 병원 가기를 거부하고 그러다보니 건강은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연금제도 등 일본 사회보장의 토대가 형성된 시기에는 홀로 사는 고령자가 드물었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기에 노인들은 ‘용돈’ 수준의 연금만 받고도 생활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1980년대만 해도 3대가 함께 사는 비율이 60%였지만, 2013년 기준 그 비율은 10% 정도까지 떨어졌다. 세상은 변했는데 제도는 여전히 부실하다. 그러니 남은 것은 각자도생이다.
<가면사축>은 <노후파산>에서 드러나는 이런 모순적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반응의 책이다. 각자도생하라는 것이다.
■ 가면사축…고다마 아유무 지음·김윤수 옮김 |가나출판사 | 248쪽 | 1만3800원
‘회사에 길들여진 가축’이란 뜻의 ‘사축’에 빗대 제목을 지었다. <가면사축>은 젊은 직장인들에게 사축인 척하면서 본인의 필요에 따라 회사를 철저히 이용하라고 말한다. “사축은 늦게까지 야근하면서 일한다는 기분에 빠져들지만 가면사축은 정시에 퇴근한다” “사축은 회사 일에 많은 시간을 쓰지만 가면사축은 정보 수집과 공부 시간을 가장 우선시한다”. 저자는 어떻게 하면 상사와 회사를 철저히 이용할 수 있는지 42가지 항목으로 설명한다.
결국 사축으로 회사에 충성한들 남는 것은 불안한 미래일 뿐이니, 자기가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노후파산>에서 와타나베 노리코는 열심히 일했지만 나이가 들어 병으로 쓰러졌다. 회사는 병이 든 그를 해고했다. 와타나베는 “회사를 위해 온몸 바쳐 일한 결과는 파산”이라고 말했다. <가면사축>에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일본의 문제는 곧 한국의 문제다. 노후파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가파른 고령화 추세와 함께 독거노인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보장제도는 여전히 부실하다. 노인 문제에서 한국과 일본은 거의 판박이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2012년 기준 49.6%로 불명예스럽게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노인 자살률은 2014년 기준 10만명당 55.5명으로 전체 자살률의 두 배를 넘었다. 2003년 이후 자살률 세계 1위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한국에서 말이다. 지금 노인들의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젊은 세대의 미래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가면사축>이 말하는 것처럼 결국 답은 각자도생일까. 책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면조차 힘들 정도로 현실이 가혹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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