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제조사 이별수순?"..'각자도생' 기운 감도는 국내 휴대폰시장

전준범 기자 2016. 3. 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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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이 2월 21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신제품 공개행사 무대에 올라 갤럭시S7 시리즈를 소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3월 11일 국내 시장에 갤럭시S7을 출시하면서 렌탈폰 프로그램을 함께 선보인다. / 블룸버그 제공
애플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 소개 페이지 / 애플 웹사이트 캡처
아이돌그룹 AOA의 멤버 설현이 SK텔레콤이 중국 TCL-알카텔과 협력해 2016년 1월 출시한 자체 기획폰 ‘쏠’을 들고 있다. / SK텔레콤 제공

삼성전자가 4일부터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S7’과 ‘갤럭시S7 엣지’의 예약 판매에 돌입했다. 출시일은 오는 11일이다. 신제품 만큼 눈에 띄는 건 삼성전자가 국내 최초로 도입한 렌탈폰 프로그램이다. 갤럭시S7 구매자가 1년 간 기기를 사용하고 반납하면 2017년에 나올 갤럭시S8으로 바꿔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애플이 2015년 9월 아이폰6s와 함께 선보인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과 같은 것이다. 당시 애플은 아이폰6s(16기가바이트 기준) 사용자가 매월 32.41달러(약 3만9000원)를 내면 1년 후 출시되는 신제품으로 교체해준다고 밝혔다.

업계 전문가들은 “미국 휴대폰 시장에서 애플이 이동통신사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유통망을 강화한 것처럼 한국 휴대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들도 점차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금융회사와 손잡은 스마트폰 제조사

삼성전자 렌탈폰 프로그램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삼성이 이동통신사가 아닌 금융회사와 힘을 합쳤다는 점이다. 프로그램 이용자는 삼성 디지털프라자에서 삼성카드로 갤럭시S7 시리즈를 할부(24개월) 구매할 수 있다. 이용자는 이후 1년 간 할부금을 내면서 스마트폰을 쓰고, 신제품이 나오면 기기를 교체한다. 사용하던 기기를 반납하면 남은 1년치 할부금은 면제된다.

할부금은 매월 삼성카드로 결제된다. 이용자는 자동이체를 통해 통신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할부 이자는 연 5.9% 수준으로 책정될 예정이다. 이동통신사와 요금제는 이용자가 원하는대로 고를 수 있다.

애플 역시 2015년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도입할 때 이동통신사가 아닌 금융회사의 도움을 받았다. 미국 시티즌스 뱅크가 이 프로그램의 할부금융을 담당한다. 애플이 직접 단말기 할부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간·인력 낭비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이용자는 시티즌스 뱅크의 대출 상품인 시티즌스 원을 통해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에 가입하고 신제품을 받는다.

삼성과 애플의 이 같은 시도는 ‘제조사가 만들면 이동통신사는 판다’는 기존 스마트폰 유통 구조를 뒤흔드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동통신 대리점 직원의 추천이나 공시지원금 규모에 따라 어떤 휴대폰을 살지 정하던 옛 방식에서 벗어나 제품 브랜드와 성능 자체에 집중할 길이 열린 셈이다. 휴대폰 제조사는 1년에 한 번씩 신제품으로 교체해주면서 충성 고객을 자사 브랜드에 단단히 묶어둘 수 있게 됐다.

박종일 착한텔레콤 대표는 “삼성전자 렌탈폰 프로그램은 삼성이 더 이상 이동통신사에만 기대지 않고 자체적으로 판매 능력을 키우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의 돈독했던 공생 관계가 느슨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 자체폰 만드는 통신사…판매망 강화하는 제조사

이동통신 영역에서도 기존 시스템을 무너뜨리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미국의 경우 버라이즌, AT&T, T모바일, 스프린트 등 주요 이동통신사들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휴대전화 보조금 제도를 잇따라 폐지했다. 이들 기업은 “음성통화량 감소와 요금 하락 등의 영향으로 매출이 악화됐다”면서 “단말기 보조금을 없애고 차별화된 통신 서비스를 도입해 수익성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이동통신사들이 보조금을 없애자 애플은 자구책으로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보조금을 주지 않는 이동통신사 판매점에서 굳이 스마트폰을 살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소비자들을 자체 유통망으로 끌어모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한국에서는 SK텔레콤이 2015년 9월 자체 기획폰 ‘루나’를 출시하면서 제조사와의 관계를 재설정했다. 루나는 SK텔레콤과 TG앤컴퍼니가 기획하고 대만 폭스콘이 생산한 보급형 스마트폰이다. SK텔레콤은 2016년 1월 두 번째 자체 기획폰 ‘쏠’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중국 TCL-알카텔이 생산한다.

한 휴대폰 제조업계 관계자는 “이동통신사가 외국 제조사와 손잡고 기획폰을 내놓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도 자체 판매망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며 “그 결과물이 렌탈폰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2014년 10월부터 시행 중인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이동통신사와 제조사의 관계를 서먹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 단통법은 공시지원금을 최대 33만원으로 규제하고 있어 100만원 안팎의 고가 스마트폰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제도다.

삼성전자는 렌탈폰 프로그램을 통해 보조금 규모에 불만을 느끼는 소비자를 직접 공략할 수 있게 됐다. 사용자는 매달 일정 할부금을 내면서 최신 스마트폰을 쓸 수 있다. 여기에 매달 통신요금의 20%를 할인받는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 할인제’까지 더하면 소비자 부담은 더 줄어든다. 렌탈폰 사용자는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기 때문에 20% 요금 할인 요금제에 가입할 수 있다.

박종일 대표는 “앞으로 이동통신사들은 더 많은 자체 기획폰을 출시할 것이고, 제조사는 다양한 판매 루트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국내 휴대폰 유통 시장을 장악하려는 두 진영의 주도권 대결이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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