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째 쾅·쾅..채석장 옆 주민 "몸·마음 무너져"

글·사진 배명재 기자 2016. 3. 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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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전남 장성군 신기촌 마을 ‘고통의 나날’ 대책 호소

3일 전남 장성군 황룡면 신기촌 마을. 마을 입구부터 ‘발파중지’를 호소하는 펼침막이 보였다. 마을회관으로 가는 500여m 골목길 양쪽에 위치한 50여채의 집 담장은 모두 금이 가 있었다. 처마가 비스듬히 내려앉은 집도 있었다. 지붕이 수차례 무너지면서 비가 새자 아예 비닐포장으로 지붕 전체를 덮어놓은 집도 3채나 됐다. 골목길 바닥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까만 먼지가 발자국을 낼 만큼 수북했다. 마을회관 마당에 있던 노인 10명은 한목소리로 “43년째 이런 고통을 겪고 산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시집온 뒤 60년째 이 마을에 사는 전남순씨(80)는 “집이 기울어지면서 방문 4개가 모두 안 열려 쪽문을 새로 내고 겨우 드나들면서 살고 있다”면서 “채석장에서 발파소리가 날 때는 혹시 집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 추운 겨울에도 급히 마당으로 뛰어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1973년 (주)고려시멘트와 채석장이 들어서면서 이런 생활이 일상사가 됐다고 털어놨다. 시멘트를 생산하는 공장과 채석장 사이는 2㎞ 거리다. 그 중간에 신기촌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인근 시멘트공장의 분진과 발파진동으로 43년째 고통을 받고 있는 장성 황룡면 신기촌 마을 주민들이 3일 마을 회관 마당에서 온갖 생활 불편을 털어놓고 있다.

주민들의 가장 큰 고통은 하루 2~3차례 겪어야 하는 발파 진동이다. 업체에선 지하 수백m에서 이뤄지고 있고, 그 흔들림 정도도 법정기준치 이하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그 진동이 40여년 이어지면서 각종 피해가 누적돼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경록 이장(56)은 “65가구 주민 130여명의 마음과 몸이 피폐해 있는 상황”이라면서 “각계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으나 힘없는 시골마을 주민들의 문제라 아무도 우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시멘트공장의 분진으로 43년째 고통을 받고 있는 전남 장성군 황룡면 신기촌 마을 골목길 담장이 금이 갈라진 채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서 있다

업체 측이 캐낸 석회석을 공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먼지도 화를 키우고 있다. 2012년 주민 133명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한 결과 41명의 주민이 진폐증이나 심한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진폐증을 앓고 있는 조모씨(85)는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았는데 이런 몹쓸 병을 얻게 됐다”면서 “진단이 심각하게 나왔는데도 아무런 치료나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기촌 마을 한 주민이 마루문을 열려고 하고 있으나 집이 기울어져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그동안 공장이전을 요구해 왔다. 갈수록 마을 주거환경이 황폐해지자 이제는 고향을 아예 떠나는 ‘집단 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은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나 업체 모두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마을노인회장 임정택씨(83)는 “오죽 했으면 고향을 떠나자고 작정을 했겠느냐”면서 “그런데도 업체는 구체적인 답변을 안 하고 있고, 지자체도 나 몰라라 하고 있어 주민들의 피해만 커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배명재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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