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은 위험?"..나부터 "그건 아니다" 말해요
[한겨레] 한겨레·한국여성민우회 공동기획
‘해보면’ 달라져요
<3> 편견에 대항하는 ‘첫사람’ 되기
구로동 주민 김희영씨의 편지
조선족 등에 비하발언 자주 들어
살고있는 사람은 아무 걱정 없는데…
편견과 차별에 단호한 대처 다짐
한 택시기사 “잘 모르고 말해 미안”
누군가 나서야 다른 사람도 말하죠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구로구 구로4동에 사는 주민 김희영(32)이라고 합니다. <한겨레>와 한국여성민우회의 ‘해보면 달라져요’ 공동기획 1, 2회를 보고, 평소 제가 하고 있는 ‘해보면 달라지는’ 실천을 소개하고자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서울 은평구에서 혼자 살던 저는 3년 전 여동생과 같이 살기 위해 이사를 마음먹었습니다. 여동생과 제 직장의 중간지대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인근에 집을 구해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런데 이사 후 예상치 못한 ‘불편함’이 찾아왔습니다. 퇴근길에 종종 택시를 타는데, 남구로역으로 가자고 할 때마다 기사님들로부터 “아, 거기 ‘짱깨’들 사는 데요?” “잡종들 많아서 힘들죠?” “거기 범죄율 높으니까 집 코앞까지 데려다 줄게요” “여자분이 위험하시겠어요” 같은, 이주민들에 대한 온갖 비하의 말을 듣게 된 겁니다. 이곳에 중국 동포가 많긴 하지만 한번도 중국인 때문에 피해를 입은 적이 없는 저로선 도대체 왜 이런 말을 쉽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순간의 불쾌함만 참으면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2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11년 넘게 이 동네에 사는 이웃 언니에게 슬쩍 물었습니다. “언니, 이 동네로 이사 온 뒤로 사실 좀 걱정이 돼요. 주변에서 위험하다고 하는데 괜찮냐”고. 그랬더니 그 언니는 “그건 다 편견이고, ‘위험하다’는 것도 실체는 없다”고 답하더군요. 언니의 단호한 대꾸에 저도 그간 제 마음속에 있던 편견과 불안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지난해부터 이주민들에 대한 비하성 발언을 하는 기사님들께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잡종이라뇨,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라고 되묻거나 “이 동네에서 몇 년을 살았지만 한 번도 피해 입은 적이 없어요” “범죄율이 진짜 높은지 따져봐야 알지요”라고 답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기사님들은 말이 없습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기도 하고요. ‘저 여자, 중국인인가?’ ‘걱정으로 한 말인데 왜 저러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 말이 기사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모르지만, 저마저 가만있으면 기사님은 계속해서 구로동에 대한 편견, 중국인에 대한 비하를 멈추지 않고, 자신의 말이 왜 잘못됐는지 생각조차 안 할 것 같아서 이제는 용기를 내서 말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 참, 한번은 제 말에 답변하는 기사님을 만난 적이 있네요. 80대로 보이는 어르신이었는데, 제 반박에 처음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시더니 이내 “나이든 사람이 잘 모르고 얘기해서 미안하네”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사실, 저도 기사님들께 면박을 주기 위해서 꼬박꼬박 ‘지적질’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때론 저도 우리 동네에 사는 중국인들과 문화적 이질감을 느낄 때도 있고요. 하지만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무작정 선을 긋는 것이 우리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어쩌면 이웃 언니는 제게 ‘첫 사람’인 것 같아요. 왜 있잖아요. 주변에서 작은 오해, 잘못된 고정관념들을 마주했을 때 문제제기 할 줄 아는 첫 사람 말이에요. 대부분 ‘별거 아닌데…’ ‘귀찮아’ ‘이 순간만 참자’ 하고 그냥 넘어가잖아요. 일일이 따져 묻다간 공연히 까다로운 사람처럼 비칠까봐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잖아요. 그런데 누군가 한 사람이 먼저 나서서 편견임을 인지하고 분위기를 바꾸면, 저처럼 뒤를 따르는 ‘두번째 사람’이 생깁니다. 세번째, 네번째 사람이 나선다면 편견 없는 사회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요?
정리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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