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하고 밥까지 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

2016. 3. 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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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잠깐독서

조선의 딸, 총을 들다
정운현 지음/인문서원·1만6000원

2016년 1월 기준 훈·포상을 받은 여성 독립유공자는 270명. 전체(1만4262명)의 약 2%다. 여성 독립유공자의 “수가 적은 것이 아니라 필수 인원이 상당수 빠져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책이 쓰였다. 20년 넘게 친일 자료 수집과 취재를 해온 지은이는 2014년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관장의 발표(‘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 여수감자 현황과 특징’)를 인용해, 1920~45년 수감된 여성 중 수형기록카드가 남아 있는 181명 가운데 13명만 독립유공 인정을 받았다고 알린다. 당시 여성 수감자 대부분이 치안유지법, 보안법 등을 어긴 항일운동가다.

<조선의 딸, 총을 들다>는 여성 독립운동가 24명의 실화를 담았다. 물에 담가 보는 듯하다. 크게 보인다.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은 일제강점기 내내 항일투쟁을 한 거의 유일한 여성이다. 약지를 잘랐고 조선총독 암살을 시도했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떠나기까지 30여년이 선하다. 그의 유언.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진다.”

김알렉산드라는 일제에 총살당한 유일한 여성 투사다. 러시아에서 반일활동을 한 그는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 ‘한인사회당’ 중앙위원이기도 했다. 총살이 집행되기 직전, 그는 붕대를 벗고 그 자리에서 열세 발자국을 걸었다. 조선의 13개 도를 상징하는 의식이었다. 그는 2009년 건국훈장을 받았으나,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는 유공 심사에서 거의 배제된 실정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조마리아는 아들 안중근의 수의만 지은 게 아니다. 그는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07년 2월23일 “여자는 나라의 백성이 아닌가?”라는 취지문을 발표하며 패물폐지부인회가 조직됐다. 여성은 반찬값을 아끼고 패물을 내놓고 머리칼을 잘라 나라에 기부금을 보탰다.

총칼에 식칼까지 다 들었다. 조선의용대(조선의용군)엔 부녀대도 있어 여자도 전투했다. 소금이 귀해 돌을 갈아 넣고 산에서 뜯은 나물을 비빈 전투식량도 여성이 준비했다. 여성 독립운동가는 이렇게 싸웠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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