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노인과 바다' 탄생시킨 헤밍웨이의 마을

2016. 3. 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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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 세 자매의 께딸, 쿠바] <22·끝> 작은 어촌마을 '코히마르'
아바나에서 가까운 코히마르라는 작은마을 바닷가에서 보는 노을은 쿠바를 다시 찾고 싶게 만든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이곳에서 ‘쓸쓸하며서도 아름다운’ 명작 ‘노인과 바다’를 집필했던 곳이다.
쿠바 아바나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코히마르(Cojimar)’라는 작은 어촌 마을이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집필했던 곳으로 유명해졌다. 아바나에서 버스를 타고 가면 넉넉잡고 한 시간 거리다. 도착해서 누구한테 물어봐도 헤밍웨이 단골집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쩌면 그만큼 작은 마을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헤밍웨이가 아바나에서 묵으면서 왜 매일 이곳까지 왔을까?

낚시를 좋아했던 헤밍웨이는 바닷가에서 한가롭게 낚시를 하고, 여유롭게 술 한 잔과 시가를 즐겼다고 한다. 아바나에서도 낚시할 수 있는 곳은 많았는데, 굳이 이곳까지 온 이유가 궁금해진다. 

일단, 인적이 드문 바닷가는 조용히 낚시하기에 좋아 보였다. 낚시를 몇 시간 하고 나면, 더위도 가시고 배도 채울 겸 레스토랑을 찾게 됐을 것이다. 그곳에서 모히토 한 잔을 하고, 생선요리나 랑고스타(로브스터)요리를 먹으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감하지 않았을까.
    
코히마르에서 단골이 된 식당에는 귀엽고 친절한 그녀가 일하고 있다.

삼일 내내 오게 했던 코히마르의 작은 식당 주인은 아직도 헤밍웨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곳 음식이 맛있고, 그곳에서 바다로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어서 또 가게 된 것은 아니다. 우리를 친절하게 대해준 직원과 친해졌기 때문일 듯싶다. 어린 그녀는 아바나 가는 길조차 모르는 코히마르 사람이었다.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물어봤을 때, 망설이더니 전화를 해서 물어보는 모습을 보고 알았다. 그녀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걸 해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음식을 주문할 때는 입맛에 맞게 요구사항을 늘려도 다 들어준다. 친해져서 그런지 이 식당이 더 정이 간다. 작은언니만 비행기 편이 달라서 먼저 쿠바를 떠나야 했을 때도 이곳에서 마지막 저녁을 먹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남은 큰언니와 나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식당을 찾아갔다.

낮에는 아바나에서 못 본 곳을 보고 돌아다니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선 다시 그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가장 맛있고 멋있는 저녁을 위함이었다. 
코히마르 작은 식당 앞에 있는 헤밍웨이 조각상이 익살스럽다.

헤밍웨이가 즐겨 찾던 곳은 몇 군데 더 있었다. 관광지처럼 변해버린 곳은 관광객답게 구경만 하고 나왔다. 그렇게 몇 군데를 가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 바로 바닷가 앞 식당이었다. 헤밍웨이 형상을 한 조각상이 촌스러우면서도 정겹게 느껴지는 곳이다. 
가게 내부에는 식당 주인과 함께 찍은 헤밍웨이 사진이 작은 액자에 걸려 있었다. 같이 낚시를 하기도 하고 이곳에 들러 모히토 한 잔을 즐기기도 했단다. 사실 헤밍웨이 때문이 아니라, 이곳만의 매력이 있는 곳이다. 식사할 때쯤이면 바다로 들어가고 있는 해가 보이면서 바다는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아바나를 상징하는 건물이 있는 거리다.

아바나 골목을 정처 없이 걸어 다니기도 하고, 자전거 택시인 비시탁시를 타고 끝이 안 보이던 길을 가보기도 했다. 귀여운 노란색을 띤 코코탁시도 다시 보게 됐고, 멋진 클래식 차도 눈에 담았다. 
골목길에서는 언제나 도미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채소를 파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까지 모두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노란 코코탁시도 그리워질 일상이다.

여행자만 떠나는 이 거리에서 다시 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공간이 아쉽게 느껴졌다. 여행에서 특히 우리나라와 먼 곳에 있는 나라라면 더욱 이런 생각이 든다. 이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
길에서는 삼삼오오 모여서 도미노 게임을 한다.

이렇게 떠나도 또 찾게 되는 곳은 생기게 마련이다. 쿠바도 그랬던 나라지만, 이제는 다시 왔을 때 이 모습 그대로는 아닐 것만 같다. 변하지 않는 모습을 기대하는 건 여행자 욕심일 뿐이다. 쿠바는 이제 점점 빠르게 변할 것이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다.

숙소에서는 단수가 심해져 화장실도 호텔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그래도 이런 불편이 별로 상관없게 느껴졌다. 그건 아마도 쿠바를 여행하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불편함이 깨달음을 준다. 불편함을 겪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이 작은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일인지 깨닫는 순간이 온다. 

쿠바에서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불편함이 그렇다. 인터넷 사용도 제한되고, 물과 전기 공급이 끊어지고, 슈퍼에는 있어야 할 물건이 없기도 한다. 그동안 편리함에 잊고 있었던 일들이 고마워진다. 이 불편함까지 그리워질 듯하다.
 
화가들이 직접 나와서 그림을 파는 거리다.

이런 감상에 빠져서 걷다 보니, 매일 지나가던 거리에 다다랐다. 낮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나와 있는 거리다. 화가들이 직접 그림을 팔기도 하고, 그림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얘기를 나눠보면 다들 생각이 확고하고, 열정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아이들이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 하나를 샀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 그림을 벽에 걸어두면, 이날이 떠오를 것이다. 이 작가와 이야기했던 순간, 이 길에 비췄던 햇살까지 기억나길 바란다. 여행하면서 글을 쓰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그것보다 더 기억에 남고 그곳을 추억할 수 있는 것은 사람과의 이야기가 아닐까.
 
아바나 노을처럼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여행에서도 우리는 결국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이야기를 남긴다. 그곳을 설명하는 것은 몇 줄 쓰여 있는 관광지가 아니라, 그곳 사람들이다. 그곳 사람들 미소에서, 표정에서 그곳에 대한 추억이 쌓이면서 설명이 쓰인다. 여행은 정답이 없고, 어떠한 답도 얻어지지 않으며, 결론 또한 없다. 각자 하는 여행이 다르고, 다르게 느끼고, 다른 감정을 받는다. 편견 없이 그들을 대할 때 여행이 한층 더 자신만의 여행이 될 것이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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