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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정국에 갇힌 연금 논의 =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은 이르면 이번주 안에 국민연금의 공공투자방안을 총선공약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연초 국민연금 10조원으로 임대주택 5만가구를 매입해 청년 15만명에게 공급하겠다는 다소 두루뭉술한 공약을 낸 데 이은 업그레이드판이다. 지난달 '국민연금기금의 공공투자방안 토론회'에서 나온 국민안심채권 투자방식 등의 구체적인 방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은 35세 이하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청년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이른바 '컴백홈법'(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을 지난달 18일 창당 1호 법안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더민주가 제시한 '청년주택' 개념에 신혼부부를 더해 저출산 대책이라는 의미까지 담았다.
새누리당에서는 "야당이 국민연금을 주머닛돈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김정훈 정책위의장, 2월12일 원내대책회의)는 반응이 나오지만 범여권 차원으로 경계를 넓히면 정부·여당 역시 국민연금 이슈에서 예외가 아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 국민연금으로 뉴스테이(중산층용 임대주택)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2013년 인수위원회 시절 기초연금 재원의 30%를 국민연금에서 충당하려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없던 일로 했다.
◇ 수익성·안정성 보장이 관건 = 국민연금 활용론자들은 발상의 전환을 강조한다. 기금을 청년 복지에 사용해 고용안정과 출산율 향상에 보탬이 된다면 장기적으로 국민연금 재정안정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기금은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적 기금 성격도 있다"며 "해마다 50조원씩 늘어나는 기금 중 5조~10조원을 사용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공룡기금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국민연금기금은 GDP(국민총생산)의 30%를 돌파했고 2035년이면 50%에 육박한다. 경제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큰 기금은 환율이나 글로벌 경기 충격에 취약할 수 있다. 거대기금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할 경우 자치 투자포트폴리오 차원에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특히 복지재원 활용방안은 10여년 전부터 수차례 검토됐지만 번번이 수익률의 벽에 부딪혀 무산됐다. 더민주나 국민의당도 이 부분에서는 논리가 취약하다.
2100만 국민연금 가입자의 노후자금을 정부가 자의적으로 손대선 안 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2060년 국민연금 고갈을 고려해 보험료를 올려도 모자라는 상황인데 여기저기서 복지사업에 기금을 쓰기 시작하면 불신이 커지고 임의가입자가 탈퇴하는 등 대란이 일어날 우려가 적잖다"고 지적했다.
◇ 10년째 합의 불발, 이번에는 = 국민연금 활용론은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단골메뉴다. 국민연금이 '정부의 쌈짓돈'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례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정부 부처에서는 예산보다 따내기 쉽다는 점에서 각종 사업에 국민연금을 끌어다 돈을 대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고 정치권에서는 선심성 정책이나 공약의 일환으로 사용되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 청년·신혼부부·중산층 같은 폭발성 높은 개념과 얽혀 나왔다.
과거에는 실제로 국가정책의 자금줄로 동원되는 일도 잦았다. 1988년 국민연금이 출범한 뒤 1994년까지 정부는 재정자금 명목으로 국민연금에서 6조원 이상을 가져다 썼다. 1993년 공공자금기금관리법이 제정된 뒤에는 2000년 강제예탁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40조원 가까운 돈을 끌어다 썼다.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지금도 국민연금의 복지사업 투자는 가능하다. 노인·아동·장애인 복지시설과 주택구입자금·생활안정자금 대여 등이 해당된다. 신규 여유자금의 1% 범위에서 쓸 수 있다. 연간 4000억~5000억원 한도다. 다만 투자가능한 복지사업에 청년주택은 포함돼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