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수면 아래 여인.. 음악적 영감의 샘인가
그 축축하고 물컹한 덩어리 안에 절여져 아가미 없이 질식되던 끔찍한 기억. 그 때문일까.
빌 에번스와 짐 홀의 재즈 피아노-기타 듀오 앨범 ‘Undercurrent’(1962년) 표지(사진)는 처음 본 순간부터 내 눈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몸에 붙는 흰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손발을 늘어뜨린 채 수면 바로 아래에 죽은 듯 뜬 기묘한 이미지. 두렵도록 우아했다. 숨, 막히는 아름다움. 암류(暗流·물 바닥의 흐름)란 뜻의 앨범 제목과도 잘 맞는 그 사진은 그러나 음악에 대한 몰입은 되레 가로막았다. 그 신비롭고 처연한 죽음의 이미지에서 고즈넉한 재즈 연주를 기대했던 건 아니니까.
죽음. 음반 표지에 묘사된 건 그게 아니란 걸 최근에야 알았다. 토니 프리셀이란 미국 사진가가 1947년 플로리다 주의 위키워치의 샘에서 촬영한 패션사진이라고 했다. 위키워치의 샘은 인어공주처럼 차려입은 여성의 수중 쇼로 유명했다고 한다. 사진 속 주인공도 인어로 분한 연기자로 추정된다. 필름에 담긴 것은 비참한 절명의 순간이 아니었다. 차라리 여흥을 위한 쇼의 단편이었던 것이다.
묘한 매력을 지닌 이 사진은 ‘Undercurrent’ 말고도 여러 다른 음반에 표지로 쓰였다. 아르헨티나 작곡가 오스발도 골리호브의 칸타타 음반 ‘Oceana’(2007년), 록 밴드 보빌스의 ‘Whispering Sin’(2009년)과 디스 어센션의 ‘Tears in Rain’(1989년)…. 최근 출간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스릴러 소설 ‘심연’ 한국판 표지도 바로 이 사진이다. 지난해 미국 싱어송라이터 첼시 울프의 ‘Abyss’(심연), 스웨이드의 신작 ‘Night Thoughts’는 위키워치의 여인에서 영향받은 듯한 표지를 내세웠다. 요즘 자꾸 그 여인을 맞닥뜨린다.
스웨이드의 신작과 짝을 이뤄 발표된 영화 ‘Night Thoughts’엔 물과 잠수가 반복해 등장한다. 그중 ‘Pale Snow’(QR코드) 장면에 어항 속 금붕어가 있다. 먹먹하게 변형된 코러스가 저 아래로부터 물결쳐 올라온다. ‘Undercurrent’의 여인을 다시 들여다본다.
‘창백한, 우릴 위해 떨어지는 눈송이/밖 복도엔 조그만 신발 한 짝/창백한, 당신이 기른 모란/당신 피부 색깔/창백한, 종이처럼 얇은….’
야윈 두 발. 움직이고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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