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원 입사 31년 만에 총수..두산家 회의서 만장일치

이인열·김기홍 기자 2016. 3. 2.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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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설립해 올 8월 창업 120주년을 맞는 국내 최장수 대기업인 두산그룹의 회장 승계자로 박정원(54) ㈜두산 회장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국내 재계에서 사상 첫 ‘4세 오너 경영자 시대’가 개막하게 됐다. 삼성그룹과 현대차 그룹은 3세 경영 체제 승계를 준비하는 상태다. 한국 재계에서 보기 드문 ‘형제간(間) 승계 문화’를 이어온 두산그룹에서 4세 승계는 예정된 수순(手順)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두산, 왜 지금 회장 교체·승계하나

두산그룹은 창업주인 고(故) 박승직 회장과 창업 2세인 고 박두병 회장을 거쳐 1980년대부터 창업 3세가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형제가 교대로 그룹 회장직을 맡았다. 박용곤(장남), 고 박용오(차남), 박용성(3남), 박용현(4남), 박용만(5남) 회장이 나이 순서대로 그룹 총수를 맡은 것이다. 이생그룹을 별도로 세워 일찌감치 분가(分家)한 6남 박용욱 회장만 회장을 맡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2005년 7월 ‘형제의 난’으로 불리는 3세 간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지만 두산가(家)의 이 같은 승계 원칙은 앞으로도 유지될 전망이다. 오너 4세 중 맏형인 박정원 회장이 회장직을 물려받으면서, ‘세대순·장자(長子)순’이라는 승계 원칙이 이번에도 준수됐기 때문이다. 이 후계 방식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와 유사해 ‘사우디 방식’으로도 불린다.

재계 관계자는 “두산가는 가족회의를 통해 차기 회장을 만장일치로 결정하는데 그 과정에서 사실상 임기도 정한다”며 “박용만 회장의 경우 2012년 가족회의를 통해 이전 회장인 박용현 회장처럼 3년 임기로 정해졌는데, 박정원 회장으로 넘겨줘야 할 지난해 그룹 유동성(현금 흐름)이 워낙 어려운 데다 박용성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 건까지 맞물려 승계를 유보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해 가족회의에선 박용만 체제를 ‘1년 더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으나 두산가는 이달 하순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회장 교체·승계를 확정한 것이다. 두산 관계자는 “최근 열린 가족회의에서 ‘지난 1년 동안 박용만 회장이 그룹의 위기를 무난히 처리했고 앞으로는 박정원 회장이 나서 그룹 성장을 이끌어가는 게 좋겠다’는 합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박용만 회장은 그룹 회장직과 ㈜두산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지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과 이사회 의장을 맡아 그룹 경영에 일부 관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룹 연수원과 경제연구소를 총괄하는 두산리더십기구(DLI)의 회장도 맡을 예정이다. 그는 “이제는 그룹 회장직을 내려놓을 때가 왔다”며 “지난해까지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도 턴어라운드(turn-around·흑자로 실적 개선)할 준비를 마쳤고 대부분 업무도 위임하는 등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정원 회장, 실적 개선이 최대 과제

재계 일각에서는 박 회장의 용퇴가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중공업 등 주요 계열사의 유동성 위기 등과 무관찮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수년간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 부진이 계속되는 탓이다. 따라서 박정원 차기 회장에게는 실적 악화로 재무 건전성이 나빠진 주요 계열사를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게 급선무이다. 올 상반기 본격화될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의 성공적 안착도 큰 과제이다.

발전·건설 장비 등이 주력 사업인 두산그룹은 세계경제 침체 장기화와 중국 내수 경기 둔화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주회사인 ㈜두산과 주력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나란히 사상 최대(1조7000억원대) 순손실을 냈다. 건설 장비 기업인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8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며 휘청거렸고 두산건설과 선박 엔진 업체인 두산엔진도 각각 수천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두산그룹은 이에 따라 최근 계열사별로 구조조정을 실시하며 재무 건전성 제고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두산인프라코어는 미국 소형 건설 장비 자회사인 밥캣의 국내 증시 상장(上場)이 ‘발등의 불’로 떨어진 상태다. 그나마 두산인프라코어가 2일 공작기계 사업부를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 1조1300억원에 매각하기로 합의하면서 급한 불은 일단 껐다는 평가가 나온다. 매각 합의가는 두산인프라코어가의 최초 희망가인 1조5000억원보다 훨씬 낮고 기존 우선협상 대상자인 스탠다드차타드(SC) 프라이빗에쿼티(PE)가 제시한 1조3600억원보다 적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공작기계 사업부 매각으로 작년 말 267%(연결 기준)이던 부채 비율이 203%로 약 64%포인트 낮아질 것”이라며 “앞으로 밥캣 상장 등 재무구조 개선에 더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박정원 회장은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그룹 분위기가 많이 좋지 않아 부담되는 게 사실이지만 즐거운 분위기로 이끌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사명감을 갖고 회장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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