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전원 국내파 승부수, 결코 오만의 표출이 아니다
(베스트 일레븐=난징)
결과론적으로 볼 때 실패했다.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 처지에서는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느낌도 들었을 듯하다. 하지만 상대를 얕보거나 가진 전력에 대한 자만감의 표출은 절대 아니었다. K리그 클래식 최강 중 하나로 평가받는 전북의 내부에 내재된, 반드시 보완해야 할 점이 드러났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전북은 지난 1일 밤 9시(한국 시각) 난징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벌어진 2016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E조 2라운드서 장쑤(江蘇) 쑤닝(蘇寧)에 2-3으로 졌다. 전북은 후반 16분 이동국과 후반 41분 장쑤 트렌트 세인즈버리의 자책골로 두 골을 넣었다. 그러나 전반 16분 알렉스 테이셰이라, 후반 21분 조, 후반 24분 우시에게 연거푸 실점하며 패하고 말았다. K리그 클래식 최강자로서 지난 겨울 이적 시장에서 막대한 자금을 쏟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장쑤의 콧대를 꺾길 바랐을 팬들에게는 대단히 허탈했을 결과다.
이 경기가 시작되기에 앞서 가장 큰 관심을 모은 대목은 바로 최 감독의 선발 라인업이었다. 최 감독은 놀랍게도 전북의 핵심 축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를 단 한 명도 기용하지 않았다. 이번 장쑤 원정에서 전북은 레오나르도·로페즈·파탈루를 데려왔다. 루이스는 국내에 남아 있는 상황이다. 뒤늦게 팀에 합류한 수비형 미드필더 파탈루의 활약 여부에 대한 외부의 호불호가 갈리는 상황이기에 선발 기용에서 배제된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전북 공격의 양대 축을 맡고 있는 레오나르도와 로페즈를 벤치에 앉힌 것은 대단히 의외였다.
이를 두고 전북이 토종 선수만으로도 특급 외국인 선수와 기량이 상대적으로 좋지 못한 중국 선수들로 구성된 장쑤를 꺾을 수 있다는 오만감의 표시로 여기는 시각이 있다. 실제로 전날 기자회견 모습과 경기를 앞두고 있던 장쑤의 우울했던 분위기를 감안할 때 그렇게 볼 법한 상황이기도 했다. 장쑤는 대대적 전력 보강에도 불구하고 시즌 개막 후 첫두 경기에서 좋지 못한 성과를 내면서 다소 의기소침한 상황이었다. 특히 댄 페트레스쿠 장쑤 감독은 의욕을 잃은 듯한 모습으로 중국 취재진과 날 선 각을 세우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준비와 경기 전 사기 측면에서 볼 때, 전북이 기 싸움에서부터 확고한 우위를 점했다고 볼 수 있었던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전북이 국내 선수로만 이길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시아 대륙의 클럽 축구 최강자를 가리는 ACL이 절대 호락호락한 무대가 아니라는 건 이 대회 단골손님인 전북이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럼에도 최 감독이 국내파 선수로만 라인업을 구성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수비에 대한 부담을 떨치기 위해서다.
경기를 앞두고 전북은 대내외적으로 팀을 위협하는 요소가 하나씩 있었다. 내적으로는 갑자기 상하이 선화로 떠난 김기희의 공백과 확실한 수비형 미드필더 부재로 말미암은 수비력의 저하다. 적지에서 경기를 벌일 때 가장 우선시해야 할 부분이 바로 수비인데, 전북은 팀 구성상 최적의 수비력을 발휘하기 위한 조건에서 다소 결함을 품은 채 시즌을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장쑤의 왼쪽과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오가며 활약하는 테이셰이라라는 크랙이 장쑤에 존재했다. 개인 능력으로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선수였기에 반드시 봉쇄해야 할 요주의 인물이었다. 불완전한 수비진의 구성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도 탐내던 특급 공격 자원을 막아야 하는 숙제가 주어진 것이다.
이 테이셰이라를 막기 위한 대응책으로, 최 감독은 최철순의 수비형 미드필더 전진 배치를 꺼내 들었다. 이미 지난해 감바 오사카와 벌인 맞대결에서, 최철순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진시켜 상대 에이스 우사미 다카시를 제압했던 바가 있기 때문에 같은 효과를 노리고자 시도한 카드였다. 그런데 테이셰이라가 우사미보다는 한두 수준은 더 위에 놓인 선수기 때문에, 같은 방책으로 막아내긴 힘들다 봤다.
그래서 꺼내 든 방책이 바로 국내파 라인업이었다. 최 감독은 최철순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세워 일차적으로 저지시키고 라이트백인 김창수와 협력 수비를 지시했다. 여기에 이선 공격진의 한 축인 이종호까지 수비시 힘을 보태게 해 보완하고자 했다. 이는 경기 후 최 감독이 최철순 시프트가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는 질문에 소상하게 답한 방안이다.
요컨대 레벨이 대단히 높은 선수를 막기 위해 전술적으로 세 선수가 돌아가며 마크하고자 하는 수비 전술을 짠 것이다. 이 세 선수가 테이셰이라를 막으려면 당연히 유기적 조직력과 소통이 반드시 필요했고, 이 때문에 전방에서부터 최후방까지 국내파로 라인업을 구성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전반전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후 후반전에 벤치에 아껴둔 이동국·레오나르도·로페즈를 활용해 승부를 보고자 했다.
하지만 테이셰이라의 경기력은 그물망 수비를 통해 묶어 두려던 최 감독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세 선수의 호흡이 엉키면서, 시간이 갈수록 파트너의 플레이 때문에 심적 부담을 받는 상황이 주어졌다. 최 감독이 지목한 세 선수는 올 시즌을 통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는 사이다. 더군다나 후방에서 무게 중심을 잡아야 할 센터백 진용마저도 이 경기에서 유달리 심각하게 흔들려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결국 전반 16분 만에 선제골을 내주며 초반 분위기를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전북이 적지에서 대단히 어려운 경기를 펼친 끝에 패하고 만 이유다.
경기 후 이동국은 “막상 붙어 보니 장쑤가 그렇게 위협적 팀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서두르는 바람에 제대로 하지 못한 경기다. 그래서 이런 패배는 대단히 기분 나쁘다”라고 말했다. 전북이 장쑤에게 당한 아픔의 원인이 녹아 있는 말이다.
축구는 작전 타임을 통해 시시각각 전술을 수정할 수 있는 종목이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전력 분석을 철저히 하고 팀 상황을 면밀히 살핀 후 시뮬레이션해 최적의 전술을 들고 나와야 한다. 이 첫 번째 플랜이 엉키게 되면 플랜 B와 플랜 C를 마련한 상태라고 해도 이를 바꿔 가는 작업이 상당히 어렵다. 요컨대 경기에 나섰을 때부터 원하는 흐름대로 끌고 가야만 한다.
그렇지만 감독의 판단이 항상 옳을 순 없는 법이다. 애석하게도 최 감독이 이 경기에서 꺼낸 카드는 뼈아픈 실패로 끝났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감독이 짊어지는 게 숙명이다. 그러나 전원 국내파라는 라인업이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경기를 앞두고 불안해 하던 장쑤를 가볍게 여긴 오만의 표출은 결코 아니었다는 점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단지 마련한 작전이 성공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를 복수를 통해 만회할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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