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창조경제? 동해안 연어에 물어보라

조민근 2016. 3. 2.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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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 경제부문 차장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는 요즘 연어가 자란다. 국내 업체가 1년 내내 연어를 양식할 수 있는 기술을 처음 도입해 생산에 들어가면서다. 찬 물에서만 사는 연어는 국내에선 양식이 어려웠다. 시중에 불티나게 팔리는 연어가 대부분 노르웨이나 일본산인 것은 그래서다. 하지만 동해산이 본격 출하되면 소비자들은 보다 값싸고 싱싱한 연어를 연중 맛볼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가공 공장 등 부속 투자가 일어나면 새로운 일자리도 많이 생겨날 것이다.

 이런 일들은 한 기업인의 집념과 도전이 만들어낸 결과다. 김동주 동해STF 대표는 정보기술(IT) 분야 벤처사업가 출신이다. 2005년 수산업의 가능성을 보고 양식산업에 뛰어들었다. 다금바리·돌돔으로 시작해 곧 ‘블루오션’인 연어에 눈을 돌렸다. 물리적 한계는 기술로 뚫었다. 기존 양식장보다 먼 바다(外海)에, 기온에 따라 내렸다 올렸다 할 수 있는 부침식 가두리를 설치하는 게 해법이었다.

 김 대표가 입증해 보인 가능성에 정부도 한껏 고무됐다. 최근 발표한 투자활성화 대책에 양식산업 규제 완화 계획이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했다. 그간은 직원이 1000명을 넘거나 자산이 5000억원이 넘는 기업은 양식업을 할 수 없었다. 대기업이 어민과 중소기업의 ‘먹거리’를 뺏지 못하게 하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다 보니 양식산업은 영세화하고, 투자와 기술개발이 필요한 참치·연어 같은 고급 어종은 수입산이 시장을 장악했다. 이 진입장벽을 풀어 양식업에도 대규모 자본투자가 일어날 수 있는 길을 열겠다는 게 정부가 밝힌 구상이다.

 하지만 단순히 규제만 푼다고 양식업에 대규모 투자가 일어날까. 동해STF의 경험으로 보면 ‘글쎄 올시다’다. 연어 양식에 성공하기까지 이 업체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규제 자체가 아니었다. 그보단 규제 이면에 얽힌 각종 기득권, 그리고 이를 방조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태도였다. 양식면허는 국가가 준다. 하지만 법이 정한 요건을 갖춰 서류를 들고 간다고 면허가 나오진 않는다. 양식장이 들어설 지자체와의 협의는 물론 지역 주민의 동의를 받아오라는 요구가 뒤따른다. 지역 주민과 충돌이 일어나 분란이 일면 불똥이 공무원들에게까지 튈 것을 염려해서 생긴 법에 없는 관례다. 업체 관계자는 “어촌계원들을 일일이 설득하고 지역 주민의 동의를 얻고 나니 인근 지자체에서 이것저것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더라”면서 “이를 모두 해결하는 과정에만 3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직원 13명의 동해STF가 그랬는데 만약 굴지의 대기업이 진출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국 동해안 연어의 교훈은 ‘규제 개혁은 창조경제를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는 것이다. 바늘 하나 꼽을 여지 없이 촘촘히 짜인 기득권, 논란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공무원의 무사안일이란 뿌리를 흔들지 않고선 새싹은 자라기 어렵다. 창조의 다른 이름은 파괴다.

조민근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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