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사카 이야기 #2] '거칠게 다뤄, 의도를 읽어, 균열을 만들어'

안영준 2016. 3. 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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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사카 이야기 #2] '거칠게 다뤄, 의도를 읽어, 균열을 만들어'



(베스트 일레븐=오사카)

‘거칠게 다뤄, 의도를 읽어, 균열을 만들어.’

일본전을 하루 앞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숙소에 붙은 메시지다.

“왜 그래? 월드컵 끝났어? 스페인 이기면 16강이야!”라는 글귀로 유명한 윤영길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 멘털 코치의 작품이다.

지난해 캐나다에서 열렸던 여자 월드컵에서 한국은 첫 도전임에도 16강이라는 좋은 결실을 맺었다. 당시 한국은 조별 라운드 첫 경기서 브라질에 대패하고 코스타리카전에서 다 잡은 경기를 놓치는 등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상황이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끝에 스페인을 잡고 극적으로 토너먼트에 오를 수 있었다.

모든 선수와 코칭 스태프가 함께 이룬 업적이지만, 선수들 멘털을 담당했던 윤 코치의 공도 적지 않았다.

당시 윤 코치는 어려운 상대 브라질전을 앞두고 긴장한 태극 낭자들에게 ‘강점은 내 안에 있어. 그거면 충분해’라는 이야기와 함께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고, 두 경기서 1무 1패를 기록하며 고개를 숙였을 땐 “왜 그래? 월드컵 끝났어? 스페인 이기면 16강이야!”라는 글귀를 통해 선수들의 심리를 코칭했다.

히우로 가는 중요한 길목인 이번 대회서도 윤 코치의 심리 코칭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선수들은 경기 직후, 숙소에서, 식당에서 늘 수시로 윤 코치의 메시지를 눈에 담으며 마음을 다 잡고 있다.

▲ 급한 건 북한이야

윤 코치는 첫 경기 상대이자 대회 우승 후보 중 하나였던 북한전을 앞두고는

‘△출발점 흔들어: 전반 시작부터 9분까지, 후반 시작부터 9분까지 북한 공격의 시작점을 더 급하게 만들어. 급해지면 정밀함이 더 떨어질 거야. △길목에서 기다려: 결국 거기로 오겠지. 따라갈 수 없으면 길목에서 기다려, 올 거야. △급할 것 없어: 우리 급하지 않으면 북한이 말릴 거야. 급하거든. 천천히 기회를 만들어’

라는 종이를 붙였다. 자칫 부담 가질 수 있던 태극 낭자들을 위한 맞춤형 코칭이었다.


▲ 버려, 다음 일본전 준비해

이 같은 종이의 효과 덕분이었을까? 한국은 북한의 맹공을 나름 잘 막아내고 훌륭한 경기를 펼쳤다. 비록 리드를 지키지 못해 동점을 허용하기는 했으나, 절반의 성공이라 불러도 좋은 결과였다. 윤 코치는 이후 그러나 자칫 이 같은 선전이 방심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이에 윤 코치는 경기 직후 ‘버려, 그리고 다음 경기 준비해. 일본이다’라는 문구를 ‘버려’와 ‘준비’라는 글자를 파란색으로 굵고 크게 표시했다.

이후 숙소로 돌아와 늦은 석식을 먹고 난 뒤에는 ‘스스로 가장 어렵다고 여겼던 북한에 거의 이길 뻔했다’라는 문구로 자신감을 살려주는 한편 ‘조직력은 한 지점을 잘라버리면 무너진다. 일본, 어디를 자를까?’라고 물으며 특유의 조직력을 장점으로 하는 일본을 겨냥한 문구를 덧붙이기도 했다.

▲ 거칠게 다뤄, 의도를 읽어, 균열을 만들어

운명의 한일전을 하루 앞둔 아침, 윤 코치는 이전보다 다소 긴 글의 메시지를 붙였다.

윤 코치는

‘△거칠게 다뤄: 저항은 흐름을 느리게 한다. 거칠게 다루면 일본애들 흐름이 불편해질거야. 거슬리거든, 거친 신체접촉은 심리적 장애물로 우리를 보호할거야. 거칠게. △의도를 읽어: 패스로 유인하다 결국 틈을 만들어 투입하겠지. 패스 흐름 주위에서 숨어 틈을 노리는 그 놈을 찾아. 패스의 목표 그 놈, 그 놈이 골문으로 공을 보낼거야. 패스 의도를 읽어. △균열을 만들어: 전반 시작 9분까지, 후반 시작 9분까지 일본을 두드리면 균열이 보일거야. 그 균열을 자르면 조직력이 무너질거야. 균열을 잘라’

라고 썼다.

중간 중간 상대팀을 지칭하는 ‘일본애들’·‘그 놈’등과 같은 단어들은 옅은 회색의 글씨로 써 심리적으로 약해 보이게 만들었고, 각각 문항마다 마지막에는 오렌지색으로 강조한 짧고 굵은 한 마디씩을 덧붙여 보다 잘 받아들일 수 있게끔 했다.

지난해 여름, 태극 낭자들은 캐나다에서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겼던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오사카에서 아시아 최강자 6개국과 겨루는 이번 올림픽 최종예선도 그에 못지않게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태극 낭자들은 이미 기적을 이룬 바 있다. 당시 캐나다의 기적을 뒤에서 묵묵히 뒷받침했던 윤 코치는 이번에도 선수들의 멘털을 섬세하게 관리하며 또 다른 기적을 준비하고 있다.

글=안영준 기자(ahnyj12@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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