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따위 필요없는 연쇄 저주에 극장가 멜로 피비린내[김범석의 사이드미러]
핀란드 헬싱키에서 자폐아를 키우던 전도연은 비슷한 처지의 공유에게 담뱃불을 빌리다가 그만 눈이 맞는다. 설원 속 인적 끊긴 오두막 사우나에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탈의에 적극성을 보인 두 남녀. 외로움이 부른 불장난에 그칠 것 같던 이들은 귀국 후에도 애틋한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 씁쓸한 결말을 맞고 만다. 지난주 개봉한 영화 ‘남과여’의 이야기다.
더 이상 형용사나 부사가 필요없는 전도연의 연기와 그런 그녀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존재감을 보여준 공유의 절제력은 결코 나무랄 데 없었다. 그동안 본인만의 예술 세계에 지나치게 충실하다는 일부 쓴 소리를 듣던 이윤기 감독 역 이번엔 대중과 손잡으려 한 노력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여기에 관록있는 봄 영화사 오정완 대표와 2년간 흥행 질주한 투자배급사 쇼박스까지 붙었다.
이 정도 스펙이라면 아무리 못 해도 100만 언저리는 맴돌아야 한다는 게 영화계의 기본 셈법이다. ‘귀향’ 같은 예상 못한 돌풍과 폭설이 내린다 해도 최종 스코어가 미니멈 80~90만은 나와 줘야 한다. 하지만 2월 25일 개봉한 이 영화가 나흘간 모은 관객은 고작 11만명에 불과했다. 신작 프리미엄을 전혀 누리지 못한 박스 8위라는 기록은 그래서 더 민망하다.
믿었던 ‘남과여’까지 이렇게 처참한 성적표를 받자 영화계에선 ‘앞으로 멜로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돈다. ‘개연성 부족하고 뜬금없는 이야기’라며 평점 1점을 던지는 성난 관객이 있다 쳐도 검증된 제작사와 배우, 감독의 합작품이 시장에서 고작 이 정도로밖에 대우받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일 것이다. 한 영화사 대표는 “만듦새를 떠나 이젠 정통 멜로가 잘 먹히지 않는 세상이 된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남과여’ 보다 하루 일찍 개봉한 도경수 김소현 주연 ‘순정’도 괜찮은 최루성 멜로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많은 관객을 사로잡는데 역부족이었다. 비단 두 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잇달아 개봉한 ‘나를 잊지 말아요’ ‘그날의 분위기’에 이어 유아인이 가세한 ‘좋아해줘’까지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 했다. 정우성 김하늘 문채원 최지우 같은 멜로에 최적화된 배우들이 나왔음에도 관객의 지갑을 열지 못한 것이다.
범위를 넓혀 봐도 작년 가을 개봉한 ‘뷰티 인사이드’ 정도밖에 꼽을 만한 멜로가 없는 게 최근 영화계 현실이다. 한효주가 원톱으로 나오고 20~30대가 좋아할 만한 기발한 상상력과 코믹 코드까지 동원했지만 이 영화 역시 NEW의 기대를 한참 밑돌며 200만명에 턱걸이한 채 종영됐다. 작년 6월 선보인 ‘은밀한 유혹’은 CJ가 투자한 영화 중 역대 최하 스코어를 기록했고 졸작이란 평가까지 받으며 유연석 임수정의 개런티를 위협하는 데 한몫 했다.
한국 멜로가 언제부턴가 이렇게 피비린내 진동하는 공포 장르로 둔갑된 건 여러 원인이 똬리를 튼 결과겠지만 그중 으뜸은 여배우 영화에 인색한 대기업 투자 풍토 탓이다. ‘추격자’가 터지자 스릴러 붐이 불었고, ‘베테랑’이 잘 되자 다시 형사 액션물이 봇물을 이뤘다. 멜로는 터져봐야 300만인데다 망할 가능성이 높아 대기업 투자팀에서 공포물만큼 기피 대상이 된지 오래다. 꼬리를 문 악순환인 것이다.
정통 멜로는 점점 찬밥 신세이고 로코 양념을 듬뿍 뿌려야 그나마 투자팀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으니 여기에 전념하는 영화사 역시 서서히 사라지는 추세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번지점프를 하다’ ‘클래식’ ‘내 머릿속의 지우개’ ‘너는 내 운명’처럼 한때 한국 영화 붐의 한 축을 담당한 멜로가 이제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멜로 영화가 오히려 요즘 젊은 층의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뒤쳐져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쉽게 사귀고 빨리 싫증내는 인스턴트식 사랑에 길들여진 10~20대들이 과연 ‘남과여’ 같은 영화에 얼마나 공감할 것이냐는 얘기다. 40~50대 중년들조차 새롭고 발랄한 걸 보려하지 꿀꿀하고 음습한 불륜 영화에 얼마나 관심을 갖겠냐는 질문이다. 한 프로듀서는 “성 문화가 개방되면서 잠자리를 가진 뒤 사귈지 말지를 결정하는 추세인데 그날의 분위기 같은 순진한 영화가 과연 먹히겠느냐”고 반문했다.
남녀의 사랑이 다소 변질되고 유통기한이 짧아진다 해도 멜로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랑만큼 고귀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정서가 드물기 때문이다. 세상이 각박하고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멜로에 대한 가치와 희소성은 그래서 더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역시 레시피다. 명품 배우 전도연을 데리고 17년 전 ‘해피엔드’를 뛰어넘지 못할 불륜 멜로를 기획하는 건 그런 점에서 퇴행인 것이다.
[뉴스엔 김범석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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