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명예훼손' 난타전 우려..반의사불벌죄 등 법 개정 목소리

조상희 2016. 3. 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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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상 '명예훼손죄'가 권력기관에 대한 비판과 견제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법조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진실을 말하고 피해 당사자의 직접 고소가 없어도 형사처벌이 가능해 비판적 여론에 재갈을 물리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총선을 전후로 시민단체 등에 의한 명예훼손 고발 사건이 큰 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낭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법 개정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명예훼손죄' 세계적으로 폐지 추세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우리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은 허위사실 뿐만 아니라 사실을 적시해도 오로지 공익에 관한 것이 아닌 경우 형사상 처벌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면책규정이 있지만 '공익'에 대한 판단이 주관적일 수 있고 세계적으로도 형사상 명예훼손죄가 폐지추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제도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형사상 명예훼손 제도는 1992년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2001년에는 아프리카 가나가, 2002년에는 스리랑카에서 잇따라 폐지됐다. 2007년에는 멕시코도 명예훼손 제도를 없앴다. 유럽도 2004년 이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에스토니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몰도바가 명예훼손 형사처벌 제도를 폐지했다. 프랑스,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는 자유형을 없앴다.

법률선진국 가운데 형사상 명예훼손죄를 유지하는 나라는 미국과 독일, 독일 형법을 이어받은 일본이 대표적이다. 다만 독일은 명예훼손으로 투옥된 사람이 거의 없고 유죄 대부분이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 미국은 15개주가 명예훼손 형사처벌죄를 규정하고 있지만 이들 주에서 제기되는 사건은 연간 2~3건에 불과할 정도로 사실상 사문화된지 오래다.

■국내 기소는 10년 새 4.5배 급증

반면 우리나라의 명예훼손사범은 급증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검찰에 접수된 명예훼손 사건은 4만1980건으로, 2004년(1만4016건)에 비해 10년새 3배 가량 증가했다. 접수된 사건 중 실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2004년 2859건에서 2013년 1만2812건으로 4.5배나 늘었다.

더 큰 문제는 명예훼손죄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고소를 해야 공소제기가 가능한 '친고죄'가 아니라 '반의사불벌죄'라는 점이다. 피해자가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히면 처벌할 수 없지만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더라도 침묵하면 시민단체 등 제3자에 의한 고발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처럼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남아있는 일본도 명예훼손죄는 '친고죄'다. 구체적인 통계는 없지만 법조계에서는 매번 선거철을 전후해 고발이 큰 폭 증가하는 것도 이런 제도 탓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반의사불벌죄를 남용, 시민단체간 명예훼손 고발이 난무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불필요한 수사·재판에 따른 혈세낭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력기관 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 제3자 고발에 따라 국가기관(검찰)이 기소할 수 있도록 하는 현재 시스템은 표현 및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도 있다.

■"언론자유 침해 우려"..국회 계류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명예훼손 대상이 공적기관 등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자일 경우 언론의 감시와 견제를 피하기 위해 제도를 악용, 검찰의 기소를 종용함으로써 권력유지의 방편으로 변질될 수 있다"며 "명예훼손은 개인간 사적 영역으로, 국가가 나서 형벌로 해결할 사안은 아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반의사불벌죄를 없애도 언론중재나 손해배상 소송만으로 명예훼손에 따른 구제는 충분하다"고 전했다.

한편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이 대표발의한 형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지난해 8월 상임위원회를 통과,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중이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처벌 조항을 삭제하고 친고죄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안은 오는 4월 임시국회 때까지 통과되지 못하면 자동폐기된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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