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관심도 없는 내가 국회를 찾은 이유요?"

CBS노컷뉴스 권영철 선임기자 2016. 3. 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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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필리버스트 현장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필리버스터'가 계속되는 것이 신기해서 와보고 싶었습니다."
"국회의원 분들께 감사했고, 정치에 대해서 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리버스터를 방청하던 경기도 양주에서 고등학생인 언니와 함께 왔다는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의 말이다. 필리버스터가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이라는 게 실감나는 말이기도 했다.

테러방지법 처리 반대를 위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로 여야가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29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전날 내린 눈으로 덮여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2016년 2월 29일 오후 2시 30분 국회의사당은 조용했고 눈이 쌓인데다 바람까지 불어서 추웠다. 그렇지만 국회의상당 후문 방문객 안내소에는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역사적 현장을 보기위한 방청객들의 발길은 이어졌다.

방문객 안내소에서 만난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학생 2명은 "필리버스터가 역사적 현장인데 곧 끝날 것 같아서 서둘러 왔다"면서 "정치학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꼭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엊그제 대학을 졸업했다는 함모씨는 "필리버스터를 봐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아무런 준비를 안하고 왔더니 방청권이 여분이 없어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래서 미리 구해서 가지고 있던 방청권을 줬더니 너무나 고맙다며 방청은 한 뒤 이메일로 방청소감을 전해왔다.

함씨는 "생각보다 국회가 가까이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나와는 다른 곳이란 생각에 멀게 느껴졌었다"면서 "방청석에서 본 국회의 모습은 제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굉장히 인간다운 모습이었고, 비인간적이라고만 느꼈던 의장도 사람이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정치에 계속 관심을 갖게 만든 정말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밝혔다.

방청석에는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 아들을 데리고 온 가족도 있었고 고등학생 친구끼리 방청을 오거나 대학생 7~8명이 지역구 국회의원의 소개로 방청을 오기도 했다.

테러방지법 처리 반대를 위한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2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방청객들이 무제한 토론을 벌이고 있는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국회 방청권. 일반방청을 위해서는 국회의원이나, 국회소속기관의 2급상당 이상의 별정직 또는 서기관이상의 일반직 공무원의 소개(초청)이 있어야만 발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국회 본회의 방청이 쉬운건 아니었다. 기자들은 국회출입기자가 아니더라도 해당언론사 출입기자를 통해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은 방청권을 확보 할 수 있지만 일반인들이 방청권을 구하기란 쉬운일이 아니었다.

<국회방청규칙>이 있는데 방청석은 특별석, 일반석, 기자석으로 구분한다. 특별석은 국회의원이었거나 행정부에서 국회의원 이상의 직(차관급 이상)에 있었거나 대법관, 헌법재판관 출신, 국회교섭단체가 있는 정당의 대표, 외국귀빈은 방청권 없이 특별 방청을 할 수 있다.

방청권은 일반방청권, 단체방청권, 장기방청권이 있는데, 일반방청권은 "국회의원이나, 국회소속기관의 2급상당이상의 별정직 또는 서기관이상의 일반직 공무원의 소개에 의하여 교부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필리버스터를 방청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아서 방청권을 받아야 한다.

더민주 배재정 의원은 페이스북에 "국민이 국회 본회의를 방청하려고 하는데도 '아는 국회의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면서 "제가 '아는 국회의원'이 되어드릴게요"라는 글을 올렸다.

지난 24일 동료 10명과 단체 방청을 한 신하영 숙명여대 연구원(교육학 박사)은 "우선 방청 절차가 까다롭다"면서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접근하자면 방청권 신청이 국회의원을 통한 소개나 공문을 통한 것으로 제한되는 것은 지나치게 제한적인 기회 허용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신 박사는 "대한민국 국민 중에 당일에 바로 국회의원에게 연락을 취해 소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으며, 공문 발송을 통한 단체 방청권이 가능한 단체 또한 국회가 어떤 기준으로 걸러내는지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의 소개로 방청권을 받았더라도 까다로운 과정이 남아있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방청권을 받은 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전자기기나 가방 등 물품들을 사물한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 휴대전화와 노트북, 카메라 등을 소지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청석에서도 6가지의 '방청인의 준수사항'이 있다.

1. 모자, 외투를 착용하지 못한다. 2. 보자기 기타 부피가 있는 물품을 휴대하지 못한다. 3. 음식 또는 끽연을 하지 못한다. 4. 신문 기타 서적류를 열독하지 못한다. 5. 회의장의 언론에 대하여 가부의 의견을 표시하거나 박수를 하지 못한다. 6. 소리를 내거나 떠들지 말아야 한다.

야당의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엿새째인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를 찾은 시민 방청객들이 토론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야당의 무제한토론, 필리버스터가 일주일이 됐다. 29일 권영철 선임기자는 국회 방청석을 찾아 국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윤창원 기자)
29일 오후의 국회 본회의장은 한산했다. 정갑윤 부의장에 이어 이석현 부의장이 의장석에 앉아 있었고 국민의당 최원식 의원이 토론을 이어가고 있었다.

방청석에는 주말보다 방청객이 크게 줄어들었다. 평일이다보니 방청객이 50~60명으로 왔다갔다 했다. 필리버스터가 국회의원 1명이 무제한 토론을 이어가다보니 계속 듣기에 지루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필리버스터는 정치에 무관심하던 사람들을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했고 민주의의 산 교육장이 됐다.

친구들과 방청을 왔다는 한 주부는 "원래 정치에 관심이 없고 테러방지법이 뭔지 몰랐는데, 필리버스터를 보면서 지금까지 정치에 무관심했던 것을 반성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명대 김동규 교수는 페이스북에 "국회TV와 각종 인터넷으로 24시간 생중계 중인 현재의 필리버스터는 대한민국 정치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국면을 열어가고 있다. 국회의사당 속에 함몰되어 (선거 유세 때 외에는) 유권자와의 직접 커뮤니케이션이 차단되었던 국회의원들과 유권자 사이에 폭발적 공감과 이해가 확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 김종인 비대위원장(우측)과 이종걸 원내대표 (사진=자료사진)
필리버스터 방청을 마치고 나오면서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선거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민주 이종걸 원내대표가 회기가 끝나는 3월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가겠다고 공언했지만 과연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이 현실화 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심야 의원총회와 긴급비대위원 회의를 거치면서 필리버스터를 끝내기로 한 것이다. 29번째 전정희 의원에 이어 30번째 임수경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이어지고 있다.

필리버스터는 국민들에게 민주주의가 뭔지 토론이 어떤 것인지, 테러방지법이 왜 국정원권한강화법이고, 안기부X파일 합법화 법인지를 조목조목 설명해왔다. 국민들에게 정치에서의 유불리가 아니라 뭐가 옳고 뭐가 그런지를 제대로 설명해온 것이다.

그런데 다시 정치에서의 유불리로 돌아섰다. 이대로가면 야당이 선거지연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 쓰게 될 것이라는 '독박론'이 고개를 들었고 '이념논쟁으로는 이긴 전례가 없다는 말'이 필리버스터를 강고하게 이끌어오던 이종걸 원내대표의 양보를 끌어낸 것이다.

그러면 야당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까? 이렇게 끝내면 테러방지법이 '영구집권노골화법'이라고 주장 할 수 있을까? 결집된 국민여론이 야당지지로 결속될 수 있을까?

가장 큰 의문은 "정치에 대해서 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던 그 여중생이 정치에 계속 관심을 가지게 될까?

대한민국헌법 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제18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고 규정돼 있다. 테러방지법이 이에 위배되는 건 아닐까? 국민들과 좀 더 토론 할 수는 없을까?

[CBS노컷뉴스 권영철 선임기자] bamboo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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