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마이너스 금리의 ‘덫’… 日 정반대 효과 딜레마

입력:2016-03-0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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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금리 결정 1개월 지났지만 엔화 가치 되레 급등

[월드 이슈] 마이너스 금리의 ‘덫’… 日 정반대 효과 딜레마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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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직장인들에게 최대 화제는 마이너스 금리다.

“내 예금에도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면 돈을 더 내야 하는 것 아니야?”

“대출금리가 내려가면 지금 주택담보대출은 상환하고 갈아타야겠군.”

“그런데 엔화는 왜 오르는 거야?”


도쿄 긴자의 유흥가에서는 이런 대화가 흔히 들려온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전격 결정한 지 1개월이 지났지만 혼란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사태는 이제 시작일 뿐 연금과 주식시장 등으로 영향이 확산되면 어느 방향으로 어디까지 전개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 백태

‘집 살 때 필요한 자금, 최저 연 0.5%에 빌려드립니다.’

도쿄시내의 미쓰이스미모토은행에는 이 같은 문구가 내걸렸다. 이 은행은 지난 25일 모기지론(주택담보 한정대출) 금리를 연 0.7%에서 0.5%로 낮췄다. 10년 만기 고정형 최저금리다. 2억원을 빌려도 한 달에 은행에 내야 할 이자가 10만원도 되지 않는다. 사상 최저다. 앞서 22일 모기지론 금리를 낮췄던 미즈호은행도 다시 금리를 낮출 움직임이라고 지지통신은 전했다.

물론 예금금리는 훨씬 더 낮다. 미쓰이스미모토은행의 보통예금 금리는 연 0.001%. 1000만원을 맡기면 1년 이자로 1만원을 받아 세금을 떼야 한다. 예금 계좌에 매달 이체를 할 때마다 108엔(약 1180원)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니 이자로 받는 돈보다 수수료로 내야 할 돈이 더 많은 상황이라 사실상 판매가 중단된 셈이다. 개인이 일본 국채를 살 때 최소 보장 금리가 0.05%이니 차라리 국채를 사놓는 게 은행 예금에 가입하는 것보다 낫다.


은행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마이너스 금리로 은행이 회복할 수 있는 사다리를 떼어버린 셈”이라고 묘사했다. 머니평론가(재테크 전문가) 닛타 히카루는 아예 은행에 대한 개념을 바꾸라고 조언했다.

“안전하게 돈을 맡아주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장롱에 숨겨두면 화재나 도둑으로 잃어버릴 우려가 있으니까요.”

닛세이 기초연구소는 연금저축으로 생활해 온 노인들 사이에선 불안감이 더 커지면서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젊은이들은 주거비 부담이나 학자금 상환 부담이 줄면서 돈 씀씀이가 느슨해질 것 같지만 노후 불안이 커지면서 저축에 더 힘쓸 가능성이 크다. 마이너스 금리가 초고령사회에 디플레이션 마인드를 확실하게 심어놓는 ‘특효약’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닛세이 기초연구소의 센다 히데아키 수석전략가는 “유럽에서는 금융기관들이 마이너스 금리 부담을 대출 고객들에게 전가하면서 모기지 금리가 오른 경우도 있다”며 “엔화 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르는 것을 보면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경험하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다양한 움직임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금융 혼란 커져

일본의 금융산업도 재편될 조짐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지방은행 간의 인수·합병(M&A)이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면서 “앞으로는 규모로 승부하는 지방은행 또는 독자적인 서비스를 가진 지방은행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금융청 간부의 말을 전했다.


일부 건설업계와 부동산 분야에서는 저금리로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도 있지만 아직은 부정적인 파급 효과가 더 크다. 초고령화로 위기에 처한 보험산업은 근간이 휘청거릴 정도로 타격을 받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는 대출이 늘어나고 현금성 자산이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으로 옮겨가면서 돈이 돌아가는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 엔화 가치도 내려가면서 제조업 수출이 늘고 외국인 관광객도 더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주가는 폭락했고, 엔화 가치는 급등했다. 은행과 증시에서 돈을 빼 집에다 숨겨두려는 이들이 늘면서 금고(金庫) 판매가 급증했다.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금리 이론이 현실에선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금융분석가 구로다 히로유키는 “저축을 선호하는 일본인에게 마이너스 금리는 소비 확대가 아니라 두려움 확대, 불신 강화라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이대로는 출구가 없어 전진도 후진도 할 수 없는 처지여서 결국 일본은행 집행부가 바뀌고 금리를 정상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시장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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