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공감] 아카데미 시상식, '화이트 오스카' 해결책 필요해

황서연 기자 2016. 2. 29.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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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8회 아카데미 시상식, 아카데미 시상식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화이트 오스카' 논란에 휩싸였던 아카데미 시상식이 아예 흑인 사회자와 게스트들을 전면에 내세워 논란을 정면 돌파하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에는 더욱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제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29일 오전 (이하 한국시각) 미국 로스엔젤레스(LA)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렸다. 일명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의 영화업자와 사회법인 영화 예술 아카데미 협회가 수여하는 미국 최대의 영화상이다.

하지만 미국 최대의 영화상이라는 명성과는 달리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시작 전부터 '오스카는 너무 하얗다(Oscars So White)'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에 이어 남녀 주연·조연상 후보 20명 모두 백인들로만 선정됐으며 흑인 감독의 영화도 작품상이나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해 흑인 영화인들이 불만을 토로했고, 급기야 '백인들의 잔치'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결국 일부 흑인 영화인들의 보이콧이 이어졌다. 그러자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의 셰릴 분 아이작 위원장은 "후보들의 인종 다양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개혁안을 발표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결국 아카데미 측은 논란을 진화하지 못한 채 시상식 당일을 맞게 됐다.

베일을 벗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흑인 영화인들을 또 한 번 배척한 행사였다. 호스트인 흑인 배우이자 코미디언 크리스 록이 재치있는 멘트로 작금의 사태를 꼬집었고, 여러 흑인 배우들이 특별 영상에 등장했으며, 흑인 싱어송라이터 위켄드가 축하무대를 꾸미고 흑인 배우들이 시상에 나섰다. 심지어 객석과의 소통을 위해 흑인 소녀들이 걸스카우트 단복을 입고 쿠키를 팔기 위해 객석 곳곳을 돌며 배우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수상을 위해 노미네이트 된 흑인 영화인은 한 명도 없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미 여러 차례 '백인 위주'라는 비난을 받아 왔다. 일례로 지난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역대 오스카상 트로피를 품에 안은 흑인의 숫자는 15명에 불과하다. 1939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해티 맥대니얼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최초의 흑인 수상자가 됐지만, 이후 남우주연상 시드니 포이티어, 특별공로상 프와티에, 남우주연상 댄젤 워싱턴, 여우주연상 할리 베리, 남우 조연상 모건 프리먼 여우조연상 루피타뇽이 간신히 역대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단순히 '흑인 감독들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서', '흑인 배우들이 많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적은 숫자다.

아카데미 시삭싱 측은 이날 시상식에서 흑인들을 대거 등장케 하며 인종차별이라는 꼬리표를 떼려 했다. 하지만 시상식에 등장한 흑인 진행자와 흑인 시상자, 축하무대를 펼치는 흑인 가수의 모습은 잠깐의 임시변통에 불과했다. 흑인들이 시상식장에 참석해 시상식의 일부가 될 수는 있었지만 시상식의 본질인 수상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었던 탓이다.

앞서 셰릴 분 아이작 위원장은 '화이트 오스카' 논란이 일어나자 개혁안을 통해 아카데미 회원 가운데 여성과 소수계 비율을 2020년까지 2배 이상 늘리고, 회원 투표도 10년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이날 시상식에서도 "아카데미는 모두를 포용하고 존중한다"며 작금의 논란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2020년 이후 이런 해결책이 흑인 배우들의 수상까지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이날 시상식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 있자면 이 혁신안이 실제로 이행이 될지 더욱 의문이 든다. 어느 영화제보다도 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준다던 아카데미 시상식은 흑인들을 진행자, 게스트로만 시상식장에 초대했을 뿐이다. 결국 축배를 든 것은 백인 영화인들이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자면 아이작 위원장의 말처럼 제도 확립를 통해 흑인 영화인들의 참가를 늘리는 일은 가능한 일이지만, 흑인의 오스카 참가 비율이 늘어난다고 해서 흑인 영화인의 오스카상 수상이 직접적으로 늘어날지는 의문이 든다.

이날 시상식을 통해 앞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더욱 명확해졌다. 스스로 내건 공약대로 인종차별 없이 모든 이들을 포용하고 존중하며, 흑인을 포함한 소수 인종이 실질적으로 시상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시상식은 공로를 치하하고 이에 대한 상을 수여하기 위해 존재한다. 오스카 역시 마찬가지다. 내년에는 흑인 영화인들의 활약에 공정하고 정당하게 상을 부여하는, 차별 없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 포스터]

아카데미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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