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아버지가 보여준 사진첩..인간에 대한 질문의 시작"

2016. 2. 29.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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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서울문학회서 밝혀

제41회 서울문학회서 밝혀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어떻게 보면 소설 쓰는 일은 서성거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뜨겁거나 서늘한 질문들을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가거나 뒤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는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되짚어 볼 수 있어요, 저는 천천히 계속 쓸 것이다. 이런 질문들을 품은 채 저에게 주어진 삶 위에서 끈질기게 서성일 것입니다."

소설가 한강(46)은 2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스웨덴대사관저에서 열린 제41회 서울문학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 회그룬드 스웨덴 대사가 회장을 맡은 서울문학회는 한국에 있는 외교관들이 한국 문인을 초대해 대화하는 자리다. 고은, 박완서, 황석영 등 한국 대표 문인들이 자리를 거쳤고, 이날은 한강이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한강은 최근 영미권에 번역 출간된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이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 해외 주요 언론으로부터 대대적인 호평을 받았다. 이런 관심을 반영하듯 이날 스웨덴대사관저에는 평소보다 많은 청중이 모였다.

한강은 여섯 번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의 한 부분과 에필로그를 읽으며 모임을 시작했다. 그는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라는 소설의 대표 문구를 읊으며 자신의 작가 인생을 설명했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로 올라온 뒤 소설가인 아버지가 보여준 사진첩 하나가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계기가 됐다고 토로했다. 그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이 보여준 것은 바로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이었다.

한강은 "그때 저는 열세 살이었다"며 "그 사진첩은 제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런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때부터 간직해온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세 번째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부터 탐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한강은 "'채식주의자'는 제가 열세 살 때 본 잔혹한 사진첩과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땅속 나무줄기처럼 내적으로 연결돼 있다"며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는 달라 보이지만 하나의 쌍을 이루는 소설"이라고 강조했다.

2004년에 출간된 '채식주의자'는 한 여자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멀리하고, 그러면서 죽음에 다가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인간은 선로에 떨어진 어린아이를 구하려고 목숨을 던질 수도 있는 존재이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잔인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며 "인간성의 스펙트럼에 대한 고민에서 소설이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어 "4년 6개월에 걸쳐 쓴 소설은 우리가 폭력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세계를 견뎌낼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한다"며 "대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완성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반면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말을 잃은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섯 번째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한강은 "우리가 이런 세계를 껴안고 살아가야 한다면 그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소설"이라며 "어둠 속에서 여자가 남자의 손바닥 위에 검지로 글씨를 쓰며 대화하는 장면은 제가 써왔던 것 중에 가장 환한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강연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로 이어졌다. 한강이 2014년 펴낸 소설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진압된 후 시위대에 있었던 친구의 시신을 찾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그는 "1980년 5월 죽은 한 소년에게 바치는 소설이다"라며 "저에게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던졌던 그 시간을 정면으로 통과하지 않으면 어디로든 갈 수 없다는 절박한 생각에 소설에 매달렸다"고 했다.

한강은 2009년 일어난 용산참사도 소설을 쓰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용산 참사 소식을 제 아파트에서 뉴스로 전해들으며 '광주가 또 한 번 일어났구나' 생각했다"며 "광주는 어떻게 보면 민주화운동에 국한된 것이 아닌 광범위한 뜻이 있는 보통명사가 됐다. 광주에서 시작해 인간의 존엄성으로 나아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강은 인간의 선함을 다루는 소설을 쓰지 않는 이유를 묻는 독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며 모임을 마무리했다.

"저는 인간의 선함을 간절하게 믿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인간의 존엄성을 굳게 믿고,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폭력이 공존하는 세계에 고통과 슬픔을 느낍니다. 그래서 '소년이 온다'를 쓰며 힘들고, 고통스러웠지요. 그 고통 안에서 하나의 열쇠,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viv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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