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둥 르포]"북한서 연락 왔는데, 오늘 물건 못 나가요?"
[경향신문] “조선(북한)에서 연락 왔는데, 오늘 물건 못 나가요?”
중년의 조선족 여성 사업가는 27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丹東)으로 향하는 고속열차 안에서 통화하며 상대에게 이같이 묻고 있었다. 베이징 남역에서 출발해 6시간 남짓 되는 여정 동안 비슷한 내용의 전화를 몇 차례 했다. “조선에서 기다리니까 물건 확인해 봐”, “(함경북도) 청진 사람이 기다리고 있잖아”, “앉아만 있지 말고 계속 확인해 봐라”, “오늘은 움직이지 말고 아무도 만나지 말라”는 말을 했다. 때로는 목소리가 커졌다.
단둥 역에서 내린 이 사업가에게 “북한과 무역하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북한으로 물건 나가는 데 문제가 생긴 것이냐고 질문하자 갑자기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는 “들어올 물건을 들어오고 못 들어오는 물건을 못 들어오겠지, 난 그런 것은 모른다”고 쏘아붙이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북·중 무역의 거점인 단둥은 지금 예민할 대로 예민하다. 북한 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긴장감이 고조된 데다 국제 사회의 북한 제재에 대해 중국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지역 경제에 악영향이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둥 기차역 부근에 조성된 북한·한국 거리인 ‘고려거리’(高麗街)는 주말 내내 인적이 드물었다. 고려거리는 단둥에 머무는 북한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북한·한국 물건을 파는 상점과 음식점이 즐비하다. 무역일꾼 등으로 단둥에 나와 일하는 북한 근로자는 2만명에 달한다.
북한 술과 담배를 파는 한 상점의 중국인 주인은 최근 단둥 상황에 대해 “언론 보도가 과장된 것이고 장사는 아주 잘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가게에서 일하는 중국인 점원 말은 달랐다. 이 점원은 “요즘 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줄었다”면서 “진산팡(김씨 집안 세 번째 뚱보라는 의미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비하해 부르는 말) 때문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장사가 잘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북한 물건 수급에 차질이 생긴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지난주 한국 언론에 단둥발 기사가 쏟아지면서 현지 사람들이 입을 닫아버렸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안 좋은 상황에 단둥 분위기가 최악이라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더 악화될까봐 아예 말을 안 하려 한다는 것이다. ‘북한’과 관련된 주제는 꺼내려 하지 않는다고 달라진 요즘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저녁 한 식당에서 만난 북한 사업가는 단둥 날씨 등 일상 생활 주제는 거리낌 없이 이야기 했으나 대북 제재나 사업 상황에 대한 주제가 나오자 말을 하지 않았다.
북한의 외화벌이 수단으로 꼽히는 북한 식당은 최근 한국인을 비롯해 손님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압록강변 인근에 평양 고려관, 류경 식당 등은 정상 영업 중이었지만 모든 창문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북한 억양이 강한 사람들이 이따금씩 식당으로 들어가는 것만 눈에 띄였다.
<단둥|박은경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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