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의 눈]'정치' 단체 된 대한변호사협회?

박보희 기자 2016. 2. 2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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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주문맞춤형' 테러방지법 의견서..논란 확산

[머니투데이 박보희 기자] [[the L]'주문맞춤형' 테러방지법 의견서…논란 확산]

"대한변협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기본원칙을 갖고 있다…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변호사의 사명은 정치적 이념이나 색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 하창우 회장은 지난달 25일 '20대 총선을 앞두고'라는 성명서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그리고 1달 뒤인 지난 24일,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 및 동법 본회의 수정안(테러방지법)에 대한 검토' 의견서를 국회가 아닌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에게 제출했다.

의견서 제출 하루 전인 23일,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김광진 의원을 시작으로 '필리버스터'가 시작됐다. 더민주 소속 의원 전원이 신청했고, 정의당과 국민의당 의원들도 참여하고 있다. 이때부터 '필리버스터'라는 단어는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어 상위 순위에 나흘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머물러있고, 참여 국회의원들은 순서에 따라 검색어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중이다.

이같이 구구절절 설명하는 이유는 현재 '테러방지법'은 우리 사회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고,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야당의원 전원에 가까운 이들이 '절대 통과시킬 수 없다'며 밤을 세워가며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면, 그 이유를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특히 법률가라면, 전국의 변호사들을 대표하는 단체라면, 그리고 조직의 이름으로 의견서를 내겠다고 결정했다면, 그래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대한변협의 검토의견은 간단하다. "전부 찬성" 야당의원들이 밤을새워 조목조목 법안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포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도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지만, 대한변협은 단 7장의 의견서로 "전부 찬성" 의견을 밝혔다. 대한변협의 의견대로라면 '완벽한 법안'이다.

하지만 회원인 변호사들 생각은 같지 않은 모양이다. 대한변협의 의견서 전달 사실이 알려지자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변호사 사명'을 위해 일하는 공익인권변호사 52명이 공동성명을 냈다. 이들은 △변협'명의' 의견서가 변협 공식 입장이 아님을 확인할 것 △의견서가 특정 정당에 전달된 경위를 소상히 밝힐 것 △관련 집행부의 공개사과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이번 대한변협 의견서를 '변협 명의 의견서'라고 이름붙였다. 대한변협 이름으로 제출됐지만, 회원인 자신들의 의견과 다르다고 선을 그은 표현이다. 더이상 이들이 전체 변호사들의 의견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선언인 셈이다.

대한변협 회칙에 따르면 '법령의 제정과 개폐, 법제도의 운영과 개선 기타 모든 분야에 걸쳐 설립목적에 비춰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의견을 발표하거나 건의할 수 있다'(제5조). 이러한 '의견발표 또는 건의를 할 때 중요 사항은 이사회가 의결'(제20조)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가 된 '테러방지법'에 대한 이사회는 개최된 적도 없고, 법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된 적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견서가 제출되고 나서도 구성원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평소 SNS 등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던 협회장은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공익인권변호사들은 성명서에서 "의견서를 실제 제출했는지,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변협에 연락했지만 집행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국내 대표적인 변호사 단체들은 테러방지법안 통과 반대에 대한 의견을 평소 분명히 해 왔다. 구성원인 변호사들의 의견 수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의견서 내용도 부실하다. 서울의 한 중견 변호사는 "절차를 어기고 의견서를 냈다는 사실도 충격이지만, 그 수준도 너무 낮아 황당하다"고 평가했다. 공익인권변호사들 또한 "법문의 명확성, 국내외 사례, 국가 기관의 권한 분배, 국민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지 않은 주문제작형 의견서에 가깝다"며 "사회적 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에 이정도 수준의 의견서를 변협 이름으로 낼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한변협은 다른 변호사단체처럼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니다. 변호사라면 의무적으로 가입을 해야만하는 법정 단체다. 회원 규모만 2만여명에 이른다. 발언의 무게감이 다른 단체와 다를 수밖에 없다. 몇몇 집행부가 임의로 의견을 내고, 모르쇠로 일관해서는 안되는 곳이다. 하 회장과 일부 집행부가 '월권행위'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이번뿐만이 아니다. 하 회장 취임 이후,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협회가 정치·이익단체화 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지난달에는 대한특허변호사회를 출범시키며 변리사와 변호사간 직역 갈등을 표면화했다. 변호사가 실무수습을 받아야 변리사 등록을 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자, 대한특허변호사회를 설립해 "변리사들은 전문 지식이 부족해 소송 대리 권한이 없다"며 직접 실무수습 방향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전문성 강화'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실무수습 의무화로 좁아진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밥그릇 싸움'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사법시험 존치 여부를 두고는 '사시 출신 변호사'와 '로스쿨 출신 변호사' 모두를 회원으로 둔 대한변협이 사시존치를 주장해 회원간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협회장이 정치 진출을 하려 한다더라", "사시 존치를 위해 새누리당과 짜고서 이러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대한변협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바닥까지 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뒷이야기들이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과거 대한변협의 성명 하나하나에는 큰 의미가 있고 무게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정치 단체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한변협 '명의'의 의견서를 둘러싼 법조계 논란은 확산될 전망이다. 이날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모임인 한국법조인협회는 "대한변협의 의견은 변협 구성원의 의사를 대변한 것이 아니다"며 "의견 수렴절차가 전혀 진행되지 않은 의견 표명은 하 회장과 작성자의 독단적 사견일 뿐이다. 하 회장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민변 또한 대한변협에 '테러방지법 의견서에 대한 13개 항의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어떤 과정을 통해 의견서를 제출하게 됐는지, 과거 특정 정당의 요구로 법률의견서를 제출한 사례가 있었는지, 법제위원회 회의는 거치고 의견서가 제출됐는지, 의견서 작성은 누가 했는지 등 회원이라면 궁금해 할 만한 내용들이다.

답변을 통해 오해가 있다면 풀고 의혹이 있다면 해소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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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희 기자 tanbbang1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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