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지법] 보아텡에서 김기희까지, 빠른 센터백의 시대

풋볼리스트 2016. 2. 2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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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축구는 깊다. 격렬함 속에는 치열한 고뇌가 숨어 있다. 보이지 않는 축구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다리가 필요하다. ‘풋볼리스트’가 축구에 지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마련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축구를 둘러싼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준비한다. <편집자주>

축구가 지금보다 느슨하고 공수 간격이 넓은 종목이었을 때, 최전방 공격수와 최후방 수비수는 골대 앞에서 끝없이 서로를 견제하는 존재였다. 당시 공격수와 수비수의 모습은 농구의 센터가 골밑 싸움을 벌이듯 롱 패스를 따내고 몸싸움을 벌이며 때론 공 대신 서로를 걷어차는 것이었다. 둔해도 몸싸움만 잘 하면 된다는 점에선 비슷했다.

공격수가 골대 앞에 머물러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그러나 수비수가 골대 앞을 떠날 순 없었다. 덩치가 커야 한다는 조건 역시 수비수들에게만 적용된다. 측면 수비수들은 그나마 오버래핑을 더 중시하며 작고 빠른 선수들로 대체돼 왔지만 중앙 수비수는 가장 침착하고 믿음직한 존재여야만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센터백이 자기 자리를 벗어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박경훈 전주대 교수(전 제주유나이티드 감독)는 세계 축구의 가장 두드러진 흐름 중 하나로 “센터백이 빨라야 한다”는 점을 꼽는다. “경기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세계적인 센터백들은 조직적인 수비도 잘 하고, 일대일 수비도 잘 하고, 공을 빼앗은 뒤 짧고 긴 패스도 잘 하고, 때로는 직접 몰고 올라가는 드리블까지 해야 한다.”

#패스, 주력, 수비 범위… 점점 바빠진다

제라르 피케(바르셀로나)가 ‘패스 잘 하는 선수’로 화제를 모았던 것이 2008년부터니까 벌써 8년 전 일이다. 그 동안 수비수에 대한 관점은 꾸준히 달라져 왔다. 이제 빅 리그 선두권 강팀들을 보면 빌드업 능력이 없는 수비수를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 피케는 느리다는 단점이 있었던 반면 최근엔 빠르면서 덩치도 크고 공도 잘 차는 센터백들이 각광받고 있다.

최소실점으로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노리는 토트넘홋스퍼(26라운드 현재 20실점)는 대표적인 예다. 얀 베르통언과 토비 알데르베이럴트는 토트넘에서 센터백, 벨기에 대표팀에서 좌우 풀백으로 호흡을 맞추는 특이한 관계다. 둘 다 풀백처럼 공을 몰고 전진할 수 있는 능력과 스피드를 갖췄다는 뜻이 된다. 능력보다 중요한건 성향이다. 둘 다 측면으로 빠지는 움직임을 어색해하지 않는다. 알데르베이럴트가 공을 잡고 오른쪽 측면으로 이동하면 라이트백 카일 워커는 아예 윙어처럼 잔뜩 올라가고, 중앙에 빈 자리를 센터백 출신 미드필더인 에릭 다이어가 메우는 식으로 유기적인 전환이 일어난다.

베르통언과 알데르베이럴트 모두 정확한 킥까지 갖고 있다. 베르통언이 왼쪽으로 공을 몰고 갔다고 가정해 보자. 그의 앞에는 대니 로즈나 무사 뎀벨레가 공을 받으려 서 있기 마련이다. 가까운 선수에게 패스했을 때 팀에 돌아올 이득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베르통언은 오른쪽 측면까지 대각선 롱 패스를 날려 공격 방향을 바꿀 수 있다.

패스와 수비를 모두 잘 하는 센터백은 흔치 않다. 그럴 땐 상호보완적인 조합을 만드는 것이 과거의 상식이었다. 한 명이 공수 양면에서 수비진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으면, 그 옆에는 보디가드 겸 싸움꾼 역할을 맡아 상대 공격수를 대인마크해야 할 선수가 필요했다. 1970년대 독일에는 프란츠 베켄바워 옆에 기술이 떨어지는 대신 악착같이 상대 공격수를 물고 늘어지는 베르디 포그츠가 있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은 포그츠와 베켄바워의 특징을 모두 지닌 센터백을 두 명 구해 동시에 기용하는 추세다. 현대 축구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유행은 주력, 나아가 수비 범위다. 공수 전환 속도는 점차 빨라진다. 대열을 갖추기 전에 수비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났다. 경험이 쌓이면 느린 주력을 보완할 수 있지만, 최근 센터백들은 미드필드까지 전진해 상대 공격을 저지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났다. 순간적으로 넓은 범위를 책임지려면 멀리 진출하는 걸 꺼리지 않는 성향과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주력이 필요하다.

특히 상대 공격이 일종의 ‘가짜 9번’을 중심으로 전개될 경우 수비수는 자기 자리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공격수가 미드필더처럼 후퇴하면, 수비수도 미드필더처럼 전진해 공격수를 따라다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공을 잡기 전부터 견제하지 않을 경우, 저 멀리서부터 속도를 붙여 드리블해 들어오는 공격수에게 발도 못 뻗고 뚫리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 공격보다 1명만 많으면 된다는 수비의 원칙에 비춰볼 때 상대 공격수가 0명이라면 내 센터백은 1명만 있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때 두 센터백은 번갈아 앞으로 전진하며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모든 측면을 고려할 때 제롬 보아텡(바이에른뮌헨)은 2016년의 흐름을 가장 잘 반영하는 수비수다. 190cm 거구와 빠른 발을 겸비했다. 정상급 롱 패스를, 그것도 양발 가리지 않고 전개할 수 있다는 점이 주젭 과르디올라 감독과 잘 맞는다. 미드필더 출신인 하비 마르티네스보다 오히려 공격 전개가 안정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수비수들이 수비 임무에서 해방되면, 수비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스리백의 단점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최근 AS로마는 스리백을 병행하며 전문 풀백 수준의 왼발 크로스를 지닌 에르빈 주카노비치, 원래 미드필더인 다니엘레 데로시를 수비수로 기용했다. 주카노비치가 오버래핑해 크로스를 날리고, 데로시가 롱 패스를 사방으로 배달한다면 팀 공격력에 큰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

#덩치도 커야 한다면, 키우거나 옮기거나

지능, 기술, 스피드가 아무리 중요해져도 센터백은 어쨌거나 높은 패스를 머리로 걷어내야 하는 자리다. 공격수는 감독 취향에 따라 제공권을 포기할 수 있지만 수비수는 그럴 수 없다. 공도 잘 차고, 수비에 필요한 지능도 갖추고 있고, 발도 빠르고, 거기다 거구인 선수는 흔치 않다. 좋은 센터백은 희귀하다.

그런 선수가 당장 수중에 없다면 만들 수도 있다. 덩치 크고, 몸놀림이 빠르고, 어느 정도 공을 잘 차는 선수를 찾아 센터백으로 육성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독일은 안토니오 뤼디거(AS로마)가 아직 경험 부족이라는 평가를 받던 2014년부터 대표팀에 불러들였다. 뤼디거는 신장이 190cm에 스피드도 빠르고, 패스 능력도 준수해 여러모로 좋은 기대주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당장 세계 챔피언의 수비진을 맡기엔 경험이 부족했다.

요아힘 뢰브 독일 감독은 미래를 보고 있었다. “제2의 제롬 보아텡이 될 것”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뤼디거를 성장시키겠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시즌 AS로마로 이적한 뤼디거가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레알마드리드를 잘 막아 주간 베스트 11에 오르자 뢰브는 또 인터뷰를 하겠다고 나섰다. “루치아노 스팔레티 로마 감독의 인도를 따라 잘 성장하고 있다. 뤼디거는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다.”

더 다재다능해야 하는 다른 포지션의 선수를 센터백으로 이동시키는 것 역시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바르셀로나)는 잘 알려진 것처럼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센터백으로 이동했다. 바르셀로나의 센터백이 다른 팀의 미드필더 수준으로 전진해 공을 다뤄야 하고, 상대 역습에 자주 노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조치였다. 레알마드리드의 세르히오 라모스는 소싯적 라이트백 중에서도 세계적인 질주 본능을 지닌 선수였다. 한편 루이스 판할 맨체스터유나이티드 감독도 비슷한 발상에 근거해 달레이 블린트를 풀백에서 센터백으로 전환시켰지만, 블린트의 부족한 신체 능력이 약점으로 드러나곤 한다.

#김기희 없는 전북의 예

수비 말고도 신경 쓸 것이 많은 ‘공격형’ 센터백들은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기 전까지 실수를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 보아텡, 피케, 라모스 등이 그랬고 마츠 훔멜스(도르트문트)는 여전히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헛발질은 한다. 세계 최고 선수들도 이렇다면, 아직 발전이 필요한 팀일수록 공격형 센터백들로 수비를 조합할 때 조심해야 한다. 한국은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홍정호와 김영권이 역할을 제대로 배분하지 못하는 모습을 익히 봐 왔다. 한국 수비는 공격 전개 능력이 부족한 대신 동료들의 사기를 북돋울 줄 아는 곽태휘를 기용한 뒤 훨씬 안정됐다.

K리그에선 2014년 전북현대 중앙 수비를 맡았던 김기희가 최근 센터백 유행에 부합하는 플레이를 했다.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하는 김기희는 주력이 좋고, 공을 편안하게 다루며 주위 선수들에게 안정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 롱 패스가 부정확하다는 단점을 빼면 대체로 현대적인 센터백의 특성을 갖추고 있다. 김기희도 부경고 시절엔 윤빛가람과 함께 미드필더로 활약하다 프로에서 전문 수비수로 전업한 선수다.

김기희가 상하이선화로 이적한 뒤 시즌 첫 경기를 치른 최강희 전북 감독은 “백패스나 (롱)킥을 하지 말아야 할 장면에서 계속 킥을 해서 상대에게 소유권을 넘겨주는 일이 중앙 수비에서 많이 발생했다”고 수비수들의 빌드업 문제를 콕 집어 지적했다. 최 감독의 말엔 중앙 수비수가 수비력에만 집중하지 말고 다재다능해 져야 오히려 실점이 줄어든다는 역설이 있다. 상대의 역습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공을 빼앗기지 않고 전방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재주 많은 미드필더를 굳이 센터백으로 변신시킬 가치가 있다.

글=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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