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그들의 평창겨울올림픽은 이미 시작됐다

2016. 2. 25.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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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월19일 슬로프스타일 스노보드 경기가 열리고 있는 보광휘닉스파크의 슬로프에서 VMO(Venue Medical Officer 개별대회의무책임자) 공창배씨(한국원자력병원 정형외과)가 무전교신 중인 모습. 왼편은 의무지원 대기중인 이근호씨(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2월7일 프랑스선수를 10분만에 슬로프 밖으로 이송한 뒤 FIS(세계스키연맹)의 레이스총감독으로부터 ‘퍼펙트’하단 교신을 받은 직후 다른 의사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있는 은승표 씨.
2월7일 오전 산악인 주치의로 이름난 정덕환 씨(경희대병원 정형외과교수 왼쪽)가 은승표씨(코리아정형외과원장)와 의무지원 의사를 슈퍼대회전 경기장에서 어떻게 배치할 지 논의 중이다.
평창겨울올림픽 조직위원회의 CMO(최고의무책임자) 이영희씨(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부원장).
정선알파인경기장엔 이 ‘닥터헬리’라고 불리는 이 의무헬기가 월드컵 활강 및 슈퍼대회전 경기가 열리는 내내 대기중이었다.
정선알파인경기장에서 의무지원팀이 패트롤과 함께 실전 훈련중인 모습.
패트롤이 토보간으로 막상스 무자통 선수를 이송중인 모습. 정선 알파인경기장의 슈퍼대회전 경기 도중 상황이다.
이근호씨(서울성모병원)가 넘어져 무릎을 다친 막상스 무자통 선수를 돌보는 동안 패트롤이 토보간을 이동중인 장면. 정선알파인경기장에서 2월7일 열린 슈퍼대회전 경기 도중 상황이다.
슬로프스타일 스노보드와 프리스타일 스키 경기가 열렸던 보광 휘닉스파크의 슬로프. 레일과 키커가 설치된 상단이다.
FIS 월드컵 알파인스키 활강경기의 공식 진행표.
정선 알파인경기장 모습. 저 빨간 표식은 의무지원팀 의사가 배치될 다섯 개 섹션을 보여준다.
2월 7일 오후 1시35분.

세계스키연맹(FIS) 아우디 알파인 슈퍼대회전 경기가 한창이던 정선 알파인 경기장. 슬로프에 있던 의무지원팀과 경기지원팀의 무전기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Perfect(완벽합니다)’

평창겨울올림픽조직위원회 CMO(Chief Medical Officer·최고의무책임자)인 이영희 씨(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부원장)를 도와 의무지원 프로그램을 준비해온 은승표 씨(서울 코리아정형외과 원장)에겐 평생 잊지 못할 한마디였다. 당시 이 슬로프의 네 지점에서 선수들의 부상에 대비해 경기 내내 추위 속에 서있던 7명의 의사들에게도 같았다.

전날부터 이 경기장에선 월드컵 알파인스키(활강·슈퍼대회전)경기가 잇달아 열렸다. 평창겨울올림픽에 앞서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와 FIS가 경기장과 대회운영능력을 점검하기 위해 마련한 28개 테스트 이벤트 중 첫 대회였다. 이 경기는 전 세계에 중계됐다.

활강과 슈퍼대회전은 스피드종목이다. 그래서 부상위험도 높다. 노르웨이 연구팀이 조사한 월드컵 출전 10개국 선수의 부상률(1000회 출전 당)에 따르면 회전은 4.9, 대회전은 9.2. 반면 슈퍼대회전과 활강은 11과 17.2로 훨씬 높다. 그러니 이 대회에서 부상선수를 돌볼 의사들이 긴장할 수밖에. 게다가 이런 스키장 의무지원은 모두가 처음이었다. 한 팀을 이뤄 구급활동을 벌일 패트롤과 응급구조사(소방대원)들도 마찬가지고.

현장의무지원엔 의료 외에 고려할 게 또 하나 있다. 시간이다. 월드컵스키의 인기는 세계적으로 매우 뜨겁다. 그래서 매 경기를 빠짐없이 전지구촌에 생중계한다. 사고가 발생해도 경기를 신속히 재개해야 할 이유다. 그러니 경기장 의무지원의 제일 원칙도 부상 파악 후 신속한 이송. 경기운영은 FIS가 지명한 레이스총감독(Chief of Race)이 맡는데 그날 정선의 총감독은 토마스 존스톤. ‘퍼펙트’라고 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엑설런트(Excellent)’라 해도 무방했다. 그런데 평소 오버하지 않는 서양인이 퍼펙트라는 최상의 평가를 한 것이다. 그 이유. 현장 의무지원이 기대 이상으로 신속·깔끔·정확해서다. 배경은 이렇게 추정한다. 한국의사들이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초짜’였는데도 팀워크가 유럽최고라는 한넨캄(오스트리아 키츠빌 소재 활강코스)에 뒤지지 않아서다. 지난달 한넨캄 활강경기에서는 사고 후 슬로프를 비우는데 13~14분이 걸렸다. 그날 우리 팀은 10분 내에 상황을 정리했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40번 주자 막상스 무자통(프랑스·남·25)은 첫 점프에서 착지 불안정으로 넘어져 기문에 충돌했다. 오후 1시 25분에 일어난 사고다. 순간 점프대 위 섹션2의 이근호 씨(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는 즉시 부츠버클과 바인딩을 채우고 무전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VMO(Venue Medical Officer·개별경기 의무책임자)인 은 씨로부터 출동지시가 떨어졌다. 얼음판과 다름없는 경기장에서 선수에게 다가가기란 쉽지 않다. 그간 스키훈련을 하지 않았다면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응급구조사와 배민기 패트롤 팀장이 선수를 돌봤다.

이런 상황에서 의무지원은 상반된 두 가지 임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신속한 경기재개(슬로프 이탈)와 부상자 검진 이송. 의사는 의사다. 전자보단 후자가 우선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공황상태에 빠진 선수를 진정시키는 것. 당시 선수는 왼쪽 다리를 붙들고 고통을 호소하며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무릎부상이나 다리골절로 의심되는 상황. 그는 무전으로 토보간(Tobogan·환자를 뉘어 이송하는 썰매)을 요청했다. 그 사이 공창배 씨(한국원자력병원 정형외과)가 합류했다. 공 씨는 배 팀장이 추위로 온 몸을 떠는 선수를 토보간에 누이고 담요를 덮어주자 그 안에 따뜻한 핫팩 두 개를 넣어주었다. 실전대비 훈련을 할 때 토보간에 누워보니 엄청나게 춥던 것을 기억해 준비해둔 것이었다. 슬로프에선 패트롤 두 명이 슬로프를 통제했다. 만에 하나 질주선수와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새 패트롤 두 명은 토보간을 들고 슬로프 아래로 내려갔다.

이 짧은 시간에도 무전은 끊이지 않았다. 결승지점에서 TV로 상황을 지켜보던 CMO 이 씨와의 소통이다. 그의 임무는 부상선수의 신속한 병원 이송. 그런데 이송도 부상부위와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선수의무실과 월드컵 외상센터(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중 어디로 갈 것인지, 앰뷸런스와 닥터헬리(Doctor-Heli·환자수송전용 헬리콥터) 중 무엇을 이용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무전교신은 그걸 위한 것이다.

일분일초라도 시간을 줄여야 하는 게 의무지원이다. 최초 판단이 매우 중요하고 그건 부상자를 문진한 현장의사 몫이다. 그래서 부상 선수를 직접 보지 못한 CMO 이 씨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토보간 이송 중 앰뷸런스와 헬기를 모두 준비했다. 토보간이 드디어 슬로프를 빠져나갔다. 사고 10분만이다. 그 사이 슬로프 네 곳에 배치된 의사들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매뉴얼에 따라 부상선수 때문에 비게 된 섹션2를 섹션1의 두 의사가 커버했다. 이것으로 경기재개를 위한 모든 상황은 종료됐다. 은 씨는 무전으로 이를 보고했고, 그때 들은 말이 바로 ‘퍼펙트’였다.

토보간 이동 중 스키베이스에서의 의무지원도 신속하고 정교했다. FIS 기술고문 귄터 후햐라는 안전그물망을 철거토록 해 헬리패드(이착륙장)로 가는 통로를 열어주었다. CMO 이 씨는 헬기시동을 지시했고 앰뷸런스도 헬리패드로 이동시켰다. 선수의무실 의료진도 대기시켰다. 토보간 도착 즉시 CMO 이 씨가 프랑스 팀 의사와 코치에게 부상정도와 호송방식을 영어로 설명했다. 선택은 선수 몫. 결론은 헬기후송이었다. 헬기는 1시 53분 이륙해 25분 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 착륙했다. 그게 2시 18분. 사고발생 꼭 53분 만이었다.

병원조치도 빨랐다. 도착 즉시 수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던 7명의 의료팀이 선수를 맞았다. 이 병원은 ‘국비지원 권역응급센터’. 권역외상센터(트라우마)와 닥터 헬리 시스템까지 갖춘 최고수준(레벨1)이다.

그날 CMO 이 씨와 은 씨는 미국 콜로라도 주 비버크릭 스키장의 응급의료 책임자인 스티브 주커만으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비버크릭은 지난해 2월 FIS알파인 세계선수권대회 개최지이고 주커만은 당시 의무위원장. 이 씨와 은 씨는 올림픽조직위 의무전문위원장인 정덕환 씨(경희대병원 정형외과)와 함께 이 대회의 의무지원활동을 배우기 위해 그곳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그날 메일은 주커만이 이 슈퍼대회전 경기를 TV로 보고 보낸 것. ‘우리도 이 모든 게 한꺼번에 작동되도록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그때 비로소 알았는데, 정선이벤트가 우리와 함께 경험한 것을 확실히 뿌리내리게 한 듯 보여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매끄러운 진행을 칭찬한 것이다.

시곗바늘처럼 정확한 팀워크로 테스트 이벤트를 성공으로 이끈 의무지원. 보광 휘닉스파크에서 열린 슬로프스타일 스노보드와 프리스타일 스키 월드컵 이벤트(16~21일)에서도 변함없었다. 이 대회에서는 VMO를 맡은 공 씨와 김동영(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이근호 김정훈 씨(화인통증의학과 원장)가 6일간 네 종목 경기를 커버했다. 이 때문에 공 씨는 일주일간 휴가를 내야 했고 다른 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또 모두가 오전 8시부터 오후 3, 4시까지 눈밭에 선 채로 슬로프를 지켰다. 공 씨는 대체 의사가 모자라자 화장실을 가지 않기 위해 아예 점심을 굶기까지 했다.

공 씨는 의무지원팀의 스키지도자다. 연초부터 일요일마다 새벽에 의사들에 대한 스키기술을 지도한다. 일요일은 의사가 유일하게 쉬는 날. “부상선수에게 빨리 접근하려면 확실한 사이드슬립(옆으로 미끄러지기)기술이 필요해서요.” 그는 서울대 의대 스키부에서 선수로 활동했고 재학 중인 1998년에 FIS 등록선수가 됐다. 이듬해엔 극동컵 대회에도 출전했다. 전 국가대표 문정인 씨가 의무지원팀 고문으로 봉사 중인 것도 학생시절 함께 미국전지훈련을 다녀온 그와의 인연 때문이다.

올림픽은 돈만 투자한다고 그냥 치러지는 이벤트가 아니다. 많은 이의 노력을 결집해야 만 성공할 수 있는 거국적 행사다. 그 성공이란 대대로 물려줄 ‘위대한 유산’이다. 그런 점에서 평창겨울올림픽은 이미 작은 성공을 기약했다. 우리가 갖춘 국제수준의 의무지원 체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실 비버크릭에서 우리 의사들은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외국전문단체에 맡기라는. 그 점에서 주커만의 칭찬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번에 방한한 IOC와 FIS 관계자의 반응도 좋았다. 특히 알파인경기장 코스의 아름다움과 인공눈의 설질을 높게 평가했다. 더불어 올 2월 17일 원주세브란스병원을 점검한 각국의 팀 닥터(전담의사) 9명도 완벽한 외상센터와 응급의료 시스템을 칭찬했다.

하지만 미흡함이 더 많은 게 현실. 가장 시급한 게 인력이다. 올림픽경기장은 14개, 상주의사만도 100명 이상 필요하다. 올림픽본부에도 그만큼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10여 명이 고작. 설상종목은 조건마저 까다롭다. 어느 정도 스키를 타야해서다.

“대회 의료서비스의 중요성에 대한 정부와 조직위의 이해가 좀더 깊었으면 합니다. 부상자치료는 물론이고 경기 중에 신속 완벽한 의무지원은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중계되는 만큼 완벽을 기해야 하니까요.”

CMO 이 씨는 이 모든 게 조직위나 의사 모두에게 처음인 만큼 걱정이 앞선다.

“고마운 사람은 제 아내와 가족이에요. 봉사라니 군말은 않지만 병원까지 쉬면서 이 추위에 눈밭에서 떨고 있으니 그걸 보는 아내의 마음이 편치는 않겠지요. 지난 금요일엔 딸아이의 유치원 발레공연도 까먹어 가슴이 아팠는데 앞으로 2년은 생일을 함께 지낼 수 없으니 더 미안하지요….”(공씨)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은 씨도 다르지 않다. “‘나 없으면 올림픽 안 된다’고 뻥치고 나왔어요.”

CMO 이 씨도 마찬가지. 오전에 환자진료를 마친 뒤 경기장 내 선수의무지원실에 나와 현장의무지원을 지휘하는 형편이다. 사실은 의무지원에 자원한 10여 명의 의사 모두가 사정은 비슷하다. 모두 시간을 쪼개어 스키연습하고 휴가를 모아 테스트 이벤트에 참가중이다. 또 개업의의 경우엔 아예 문을 닫거나 후배의사에게 맡기고 봉사중이다.

이런 의무지원팀에게 평창겨울올림픽은 이미 시작됐다. 그것도 아주 뜨겁게. 그렇지만 바람이 있다. 더 많은 의사가 동참해 올림픽 성공의 불쏘시개가 되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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