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LCD '자존심' 샤프 품은 대만 폭스콘.."한국에 최악의 시나리오 현실로"
일본 LCD(액정디스플레이) 산업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평가를 받던 샤프가 대만 홍하이(鴻海)그룹에 7000억엔(7조7000억원)에 매각됐다. 훙하이는 애플 아이폰을 위탁 생산하는 폭스콘의 모(母)회사다.
폭스콘이 샤프 인수를 계기로 TV ODM(제조업자 개발생산) 전략을 크게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홍하이그룹의 샤프 인수는 한국 디스플레이는 물론 전자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됐다"고 평가한다. '타도 한국'을 구호로 삼은 폭스콘이 샤프의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 폭스콘 야망은 '脫애플'…플랫폼 전략 가속
폭스콘은 2013년부터 홀로서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하청업체에서 벗어나 자사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특히 대형 평면 TV 제조를 목표로 했다. 아이폰의 수요가 정체되면서 폭스콘은 홀로서기에 더욱 매진했다. 폭스콘 매출에서 애플이 4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애플의 후광효과가 예전 같지 않아 새 성장 동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샤프는 대형 TV 제조에 필요한 모든 자산을 갖춘 회사다. 일본 간사이(關西) 지역에 있는 샤프의 사카이(堺) 공장은 60인치 이상 고품질 LCD 대형 패널을 생산하는 10세대 라인을 갖췄다. 삼성과 LG의 주력 생산라인인 7, 8세대에서 60인치 이상 LCD를 생산하면 효율성이 떨어진다. 기판에서 쓰지 못하고 버리는 면적이 많다는 뜻이다. 예컨대 8세대 기판에서는 최대 3장만의 60인치 패널을 만들 수 있다. 10세대에서는 기판당 10장씩을 만들 정도로 채산성이 좋아진다. 삼성전자가 샤프 인수에 끝까지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TV업계 관계자는 "최근 TV 시장의 무게 중심이 55인치 이상 대면적쪽으로 기울고 있다"며 "폭스콘이 샤프를 인수한 배경이다"고 말했다.
폭스콘은 샤프 인수를 통해 확보한 역량으로 자체 TV 제조 비중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자체 제조한 TV를 ODM(제조업자 개발생산) 방식으로 다른 회사 브랜드로 판매하는 이른바 '플랫폼' 전략이다. 폭스콘은 2013년 LCD TV 부품 90%를 자체 생산해 폭스콘만의 60인치 TV를 만들어냈다. 중국 라디오샥(radioshack)과 미국 비지오(Vizio)와 손잡고 이들 브랜드로 TV를 팔고 있다.
폭스콘이 플랫폼 전략을 선택한 이유는 주 고객사들과 직접 경쟁하지 않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이 전략으로 폭스콘이 일석이조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소니와 도시바 등 주 고객과 경쟁을 피하면서 자체 생산하는 LCD 패널의 재고까지 처리했다는 것이다.
크레디트스위스의 톰슨 우 애널리스트는 "훗날 애플이 고화질 TV를 생산하게 되면 샤프의 기술력과 생산 경험을 무기로 폭스콘이 위탁생산 주문을 받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韓에 최악의 시나리오"…반한(反韓) 폭스콘 대응책은?
한국 LCD업계는 중화권 기업들의 물량공세로 LCD시장 주도권을 계속 넘겨주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3일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LG디스플레이는 출하량 기준 23.8%를 점유하며 1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삼성디스플레이(16%)는 대만 이노룩스(16.7%)에 2위 자리를 내줬다.
하이투자증권은 "홍하이그룹의 샤프 인수는 국내 업체에 가장 좋지않은 시나리오"라며 "10세대 라인의 원가 경쟁력을 무기로 낮은 가격에 제품을 선보이면 국내 업체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고 봤다.
애플을 둘러싼 국내업체와 홍하이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샤프는 태블릿PC 등 애플 IT기기에 탑재되는 옥사이드 박막트랜지스터(TFT) 기술력을 갖고 있다. 홍하이의 자회사인 폭스콘이 이를 바탕으로 애플 수주를 늘리면 LG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 등 국내 업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홍하이의 궈타이밍 회장은 2012년 "한국인들은 뒤통수를 잘 친다"고 말했을 정도로 반한(反韓)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폭스콘은 이전에도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LCD 패널을 공급하면서 시장을 교란한 전례가 있다"며 "이익률이 가뜩이나 낮은 LCD 시장에서 치킨게임이 벌어지면 국내 업체들의 수익이 급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한국 전자기업들은 일본과의 경쟁에서 부족한 기술력을 '싼 값'이라는 소비자 가치로 만회했다. 기술력에 대한 확신이 강했던 일본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저가시장을 한국에 내줬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에 도약의 기반이 됐는데, 지금 한중 대결도 비슷한 구도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시설투자의 절반 이상을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집중해 중화권 업체들과의 격차를 벌린다는 계획을 밝혔다. 업황이 주춤하는 LCD에서 추격이 덜한 OLED로 무게중심을 옮겨간다는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소형 OLED에 투자를 집중하면서 새로운 고객사 확보에 주력하기로 했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한국 업체들이 중국 현지 법인을 본격 가동하면서 현지 조달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도 곁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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