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모녀 친구셋방 전전.."학대받던 고국으로 쫓겨나나요"

2016. 2. 24. 21:5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2016 나눔꽃 캠페인]

여성 생식기 일부를 절제하는 악습인 ‘할례’를 피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 엄마를 따라 아프리카에서 한국으로 온 제니가 20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자신의 집에서 한글로 자신의 학교 친구 이름을 써 보이고 있다.

동두천/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나는, 한국어, 좋아하고, 한국어, 말하고, 싶어.”

지난 20일,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국적의 10살 소녀 제니(가명·사진)가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말을 이어갔다. 제니는 같은 반 친한 친구의 이름 석자도 곧잘 써내려 갔다. 제니가 좋아하는 학교 급식 메뉴는 “햄버거하고 감자튀김”이다. 까만 피부에 아프리카 전통의 길게 땋은 머리 ‘드레드록’을 했지만, 표정과 말투만은 한국의 여느 어린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경기 동두천의 한 초등학교 3학년인 제니는 방학인 요즘 동네 공부방에 나간다. 또래 아이들 10여명이 모여 있는 이 공부방에서 제니는 한국어로 된 책도 읽고, 줄넘기도 하며 아이들과 어울린다. 때때로 “피부색이 까맣다”고 놀리는 아이들도 있지만, 자신을 아껴주는 단짝 친구 수미(가명)와 재환(가명)이가 있어 제니는 슬프지 않다. 제니는 앞으로도 친구들이 있는 한국에서 살고 싶다.

제니는 2014년 12월 엄마와 함께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제니의 엄마 매리(가명·34)는 외삼촌으로부터 모진 학대를 당해 고향을 떠난 이후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살았다. 17살 되던 해, ‘산디’(Sande)라는 주술 종교집단의 일원이었던 외삼촌은 매리에게 여성의 생식기 일부를 절제해 손상을 입히는 ‘할례’를 강요했다. 심지어 매리를 성폭행을 하고 목숨까지 위협했다. 기독교인인 어머니가 외삼촌을 막아선 덕분에 할례는 피했지만, 더는 고향에 머물기 힘들었다. 그는 외삼촌을 피해 여동생을 데리고 이웃나라 코트디부아르로 도망쳤지만, 내전 상황인 그곳에서도 1년 이상 살기가 힘들었다. 또다른 나라, 가나를 향해 떠날 수밖에 없었다.

끔찍했던 옛 기억이 여전히 매리를 괴롭혔지만, 가나에선 잠시나마 ‘희망’이라는 것을 꿈꾸기도 했다. 매리는 그곳에서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를 만나 안전한 거처도 얻었다. 손재주가 좋은 매리는 미용일을 하며 동생을 건사할 수 있었다. 제니의 아빠를 만난 것도 가나에서다. 그렇게 15년을 가나에서 살았다. 하지만 행복도 잠깐, 제니의 아빠는 매리가 제니를 임신하자 ‘내 딸이 아니다’라며 매리 곁을 떠나갔다. 처음 고향집을 떠나던 17살 그때처럼, 매리에게 세상살이는 여전히 맵고 썼다.

엄마 매리 ‘고향 라이베리아의 악몽’
외삼촌이 ‘할례’ 강요하며 성폭행
도망간 코트디부아르는 내전 상황
가나서 미용일로 생계 이은 15년
남편 없이 키운 제니와 한국행

매리가 딸 제니를 데리고 머나먼 한국 땅까지 찾아오게 된 건, 여동생이 먼저 동두천에 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더 나은 삶’을 기대했지만,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마주친 현실도 녹록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낯선 나라에서 온 흑인 여성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은 드물었다. 일자리는 물론 당장 잘 곳도 마땅치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했지만, 그나마도 일주일에 2, 3회 기회가 오는 불안정한 아르바이트다. 매리는 인천공항에서 컨테이너 상자 안에 넣을 짐을 스캔해 분류하는 작업을 하며 한 달에 50만~60만원을 번다. 일거리가 있는 날엔 하루 전날 이태원에 사는 친구집에 가 하룻밤을 묵은 뒤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인천까지 간다. 고된 출근길이다. 시간과 교통비가 만만치 않다. 일거리를 더 찾고 있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매리를 채용하겠다는 곳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두 식구 몸 누일 월셋방 한 칸도 구하지 못했다. 교회에서 만난 아프리카계 친구들의 셋방을 전전하는 신세다. 지금은 친구 엘리자베스(가명)의 보증금 30만원-월세 25만원짜리 33㎡(10평) 단칸방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매리가 월세 15만원을 부담하는 조건이다. 그래도 엘리자베스의 남자친구가 오는 날이면 매리 모녀는 방을 비워주고, 부엌 바닥에서 잠을 청해야 한다.

팍팍한 삶에도 매리가 좌절하지 않는 건, 딸 제니가 구김살 없이 명랑하게 자라고 있어서다. 매리의 가장 큰 기쁨은 제니의 한국어 실력이 부쩍 느는 것이다. 가나에서 태어나 8살까지 자란 제니는 학교에선 한국어를, 집에선 영어를 쓴다. “제니가 한국에 온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벌써 한글을 척척 읽는다”고 매리가 자랑을 한다. 딸 자랑을 하고픈 건 아프리카 엄마나 한국 엄마나 매한가지인 듯했다.

짐도 풀지 못하는 한국살이
이모가 자리잡은 한국 와 고된 삶
난민신청 했지만 불허 통보받아
엄마 “제니가 1년만에 한글 척척…
딸 위해 좌절 않고 살아야” 눈시울

신분이 불안한 엄마를 따라 한국에 온 제니는 한국 국민이 아니란 이유로 또래 아이들이 받는 여러 복지서비스 등에서 제외돼 있다.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제정 추진네트워크가 외국인 통계월보 등을 바탕으로 추산한 바에 의하면, 제니처럼 현재 국내에 체류중인 이주아동의 수는 1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이 제니처럼 한국 국적 없이 한국에 살고 있는 18살 미만의 이주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을 2014년 발의했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매리는 한국에서 안정된 신분을 얻어 제니를 키우는 게 소원이다. 그러려면 ‘난민’ 지위를 얻어야 한다. ‘할례’를 강요받고 목숨을 위협받고 있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지난해 2월, 딸과 함께 난민 신청을 했다. 하지만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석달 전 ‘난민불인정결정통지서’를 보내왔다. 매리가 외삼촌으로부터 할례를 강요받았던 게 16년이나 지난 일이고, 여전히 위협이 존재한다고 해도 우선 라이베리아 정부에 보호를 요청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항소를 통해 1년의 시간을 벌어놨지만, 변호사를 고용할 비용조차 없는 매리는 한국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쫓기고 있다.

“제가 바라는 건 그저 제니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사는 거예요.” 매리는 제니가 자존감 있는 아이로 자라기만을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이 엄마가 좌절하지 않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죠.” 매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매리와 제니가 앉은 안방의 의자 뒤에는 라이베리아에서부터 가져온 짐이 여전히 쌓여 있었다.

동두천/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한겨레 나눔캠페인 참여하려면
매리와 그의 딸 제니를 돕고 싶다면 계좌이체(기업은행 060-700-1226, 예금주: 바보의 나눔)를 하거나 후원전화(ARS 060-700-1226, 한 통화 5000원)를 걸어 주세요. 이 모녀가정의 모금 목표액은 주거 보증금 500만원과 생활안정자금 500만원, 제니의 장학금 500만원 등 총 1500만원입니다. 모금액은 모두 매리와 제니에게 쓰일 예정입니다. 작은 정성이 모이면 매리와 제니가 한국에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매리와 제니에게 또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02-727-2506~8)으로 연락해 방법을 문의하시면 됩니다.

김미향 기자

보도 이후… 1182명이 정성 모아 1600만원

<한겨레>와 대한적십자사가 함께하는 ‘2016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이수연(가명·24)씨와 그의 아들 준수(가명·3), 준영(가명·10개월)군의 사연(<한겨레> 1월27일치 12면)이 보도된 뒤, 1600만원(지난 22일 기준)의 정성이 모였다. 대한적십자사는 22일 “100만원을 계좌로 입금한 여성을 비롯해 160명이 계좌로 모금에 동참했고 5000원이 기부되는 자동응답전화(ARS)를 통해서도 무려 1022명이 기부에 참여했다”고 전해왔다. 특히 기부자들은 입금자 이름 대신 “힘내세요 형제엄마…” “준수맘 힘내세요” 등 메시지로 이씨 가족을 응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금 목표액 2000만원을 채우지는 못했다. 수연씨와 두 아이를 위한 모금은 계좌이체(기업은행, 060-709-1004, 예금주: 대한적십자사)와 누리집(www.redcross.or.kr)에 접속한 뒤 후원→일시후원→프로젝트 후원을 클릭해 3월까지 참여할 수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이 모금액으로 두 아이가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수연씨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모금액은 주거안정자금 800만원, 아이들의 심리 및 발달 치료비 200만원, 그 밖의 기초생활지원 700만원으로 사용될 계획이다.(사용 계획은 변동될 수 있습니다)

김미향 기자

<한겨레 인기기사>
청와대 “쿵” 책상치는 소리…흥분한 박 대통령 말 못이어
[사진]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은수미 고문 후유증에도 10시간 ‘꿋꿋’
[카드뉴스] 핵심만 정리했다! 테러방지법 독소조항
[정치BAR] 박근혜를 떠난, 박근혜가 버린 사람들
<귀향>, 개봉 첫날 16만명 돌파

공식 SNS [페이스북][트위터] | [인기화보][인기만화][핫이슈]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