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돈이 사라진다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현금도피 우려 확산…가상화폐 도입 논의, 고액권 퇴출 움직임도]
경기부양을 위한 극약처방으로 마이너스 금리가 확산되면서 현금이 퇴출위기에 놓였다. 시중에 돈을 풀기 위해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 기조 아래 오히려 현금이 자취를 감추고 있어서다. 마이너스 금리는 사실상 예금에 수수료를 물리는 셈이 되기 때문에 이자율이 그나마 0%인 현금을 손에 쥐고 있는 게 이익이 된다. 이에 따라 각국 정책당국은 예금 인출이나 예금 기피를 막기 위한 묘안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가상화폐 도입·고액권 폐지 논의 활발 24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금융청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의 전자화폐를 '물건'이 아닌 '화폐'로 인정해 결제수단으로 활용하고 법정화폐와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쪽으로 자금결제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개정안은 현재 회기 중인 정기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유럽에서도 가상화폐 도입 논의가 한창이다. 유럽의회 경제통화위원회(ECON)는 지난달에 가상화폐 관련 규제 방안을 놓고 공청회를 열었다.
고액권 퇴출 움직임도 활발하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500유로(약 68만원)권 폐지 논의를 시작했고 미국에서도 100달러(약 12만원)권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사설을 통해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등이 주도하고 있는 100달러 폐지론에 힘을 실었다.
가상화폐 도입과 고액권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표면적으로 테러리스트들의 악용 가능성을 문제 삼는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연쇄 테러를 계기로 통제권 밖에 있는 가상화폐를 양지로 유도해 규제를 강화하고 고액권을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부쩍 커진 게 사실이다. NYT는 1000스위스프랑(약 124만원), 1000싱가포르달러(약 88만원)와 같은 고액권도 범죄자들이 악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가 가상화폐 도입과 고액권 폐지 움직임의 배경이라는 분석도 많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스웨덴, 스위스, 덴마크, 일본 등이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는 대개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맡기는 예치금에만 수수료처럼 적용된다. 은행의 대출을 독려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 등은 금리를 더 낮출 수 있다는 방침이다. 마이너스 금리가 기업과 개인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이다.
고액권을 없애면 당장 큰돈을 장롱에 쌓아두는 게 물리적으로 어려워진다. 블룸버그는 불과 3㎥ 크기의 창고만 있으면 500유로짜리 지폐로 10억달러(약 1조2340억원) 규모의 현금을 쌓아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찰스 굿하트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고액권을 폐지하면 현금을 저장해두는 게 훨씬 더 비싸고 어려워지기 때문에 명목금리를 더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화폐 활용, 현금 마이너스 금리 논의도 전문가들은 가상의 전자화폐로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저항을 더 낮출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중앙은행들이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꺼려온 건 '제로금리하한'(zero lower bound) 탓이었다. 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시간이 갈수록 예금액이 자동으로 줄기 때문에 돈을 인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찰은 이자율이 0%이기 때문에 그냥 들고 있으면 얻을 건 없지만 잃을 것도 없다.
전문가들은 또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저항을 '화폐환상'(money illus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이 돈의 실질가치보다 명목가치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임금이 물가상승률만큼 올랐다면 사실상 동결된 것인데도 임금액수가 늘었다는 사실에 흡족해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현찰의 실질 이자율을 0% 밑으로 떨어뜨려 마이너스 금리에 따른 현금도피를 막자는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마일스 킴볼 미국 미시간대 교수는 지난해 말 영국 싱크탱크인 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를 통해 낸 논문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기존 화폐가 아닌 전자화폐에 도입하는 건 문제 될 게 없다며 묘안을 제시했다. 그는 시중은행들이 중앙은행의 현금창구에서 마이너스 이자율을 적용해 현금을 전자화폐로 바꾸게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금리가 연간 -4%라면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한 100달러의 현금은 1년 뒤 전자화폐 가치로 96달러가 된다. 100달러짜리 지폐의 명목가치는 변하지 않지만 실질가치가 낮아지는 것이다. 파급효과가 일어나면 시중은행과 기업도 더 이상 고객들의 현금을 액면가대로 받지 않게 된다. 현금을 쥐고 있는 게 손해가 되는 셈이다.
미국 온라인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그러나 이렇게 되면 현금의 본질적 가치를 떠받치는 등가교환성과 유동성이 사라져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신회 기자 rasko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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