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요, 한마디로 개판 다 됐습니다"..'계륵' 개방형공모제

CBS노컷뉴스 박상용 기자 입력 2016. 2. 24.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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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핵심보직 줄줄이 공석..공직사회 내부 폭발 직전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박근혜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 2014년 10월 18일자로 안전행정부를 행정자치부로 이름을 바꿔 조직을 축소 개편했다.

이 과정에서 안행부가 갖고 있던 공무원에 대한 막강한 인사 권한이 새로 조직된 인사혁신처로 넘어갔다. 인사 전담 부처를 통해 정부 조직을 새롭게 혁신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인사혁신처가 출범하고 오히려 정부 부처 현장에서는 반목과 갈등이 증폭되는 분위기다. 심지어 부처 과장 1명을 선임하는데 4개월씩 소요되면서 공직 업무가 마비되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인사혁신이 인사공백으로 이어지면서 부처들의 불만도 늘어나고 있다.

◇ 개방형공모제 자리 20%까지 확대…민간인 공직참여 기회 부여

인사혁신처가 2014년 11월 출범한 이후 꺼내 든 인사혁신 카드가 바로 개방형공모제를 확대하는 것이었다.

개방형공모제란 말 그대로 부처 실국장과 과장 등 간부 공무원들을 공모를 통해 선임하는 제도로 민간 전문가와 공무원들이 동시에 응모할 수 있는 ‘개방형직위’가 있고, 공무원들만 참여할 수 있는 ‘공모직위’로 구분된다.

그동안 개방형공모제는 각 부처가 자율적으로 판단해 인사관리를 해 왔다. 하지만,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8월 전 부처에 통보한 지침을 통해 개방형직위는 인사혁신처가 직접 관리하고, 공모직위에 대해서만 부처가 맡도록 하는 내용의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또한, 과장급 이상 간부직 자리의 20% 이상을 개방형공모제로 확대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선임된 민간인은 3년간, 공무원은 2년 동안 임기가 보장된다.

그런데, 개방형공모제가 확대 시행된 이후 긍정적인 효과 보다는 비효율적인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방형직위로 실국장과 과장을 뽑는 과정에서 업무 공백이 심각한 수준이다.

◇ 개방형직위 간부 선임하는데 빨라야 4개월…업무공백 장기화

예컨대, 농식품부 외식산업진흥과장은 벌써 4개월째 공석이다. 외식산업진흥과장은 2014년 기준 83조원에 달하는 국내 외식산업 전체를 육성하고 관리, 지원하는 매우 중요한 실무책임자다.

특히, 프랜차이즈 업체 등 외식 기업들이 국내산 우수 식재료를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자리가 4개월째 공석이 된 배경에는 인사혁신처의 업무소홀 책임이 분명히 존재한다.

내막은 이랬다. 인사혁신처는 전임 외식산업진흥과장이 지난해 10월 16일자로 공모직위인 국립종자원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11월 1일자로 개방형 공개모집 사실을 공고했다.

그리고 12월에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서류심사와 면접, 역량평가에 착수해 결국은 3개월이 흐른 지난 1월 15일자로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가 최종 선임됐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다시 시작됐다. 해당 교수가 대학으로부터 3년간 고용휴직을 인정받고 농식품부로 넘어 와야 하는데, 경희대 측이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고용휴직을 승인하지 않아 합격자 발표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과장 자리에 앉지 못하고 있다.

인사혁신처가 해당 교수에 대한 면접 과정에서 얼마든지 고용휴직 문제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를 게을리 해서 빚어진 참사다.

또한, 농식품부는 현재 실국장 26개자리 가운데 개방 4개, 공모 3개 등 7개자리(27%)가 개방형공모제인데 이 가운데 감사관 자리가 한 달 넘게 공석이다.

이런 상황은 산업통상자원부도 마찬가지다. 개방형직위인 에너지안전과장이 4개월째 공석이다. 인사혁신처가 지난해 11월에 채용 공고를 냈지만 서류심사와 면접 등 절차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가스와 전기, 석유 등 에너지 관련 국가 안전관리 업무가 실무 책임자 없이 4개월째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밖에도 통상정책국 심의관과 국가기술표준원 기술규제대응국장 등 국장급 2개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다.

정부 세종청사의 한 간부 공무원은 "인사혁신처가 개방형직위든 공모직위든 사람을 뽑는데 소요되는 기간이 아주 빨라야 두 달"이라며 "실무를 책임지고 진두지휘해야 할 국장과 과장들이 두 달 이상 공석인데 정부 업무가 제대로 굴러 가겠냐"고 반문했다.

◇ "능력 있는 민간인들이 참여를 기피한다"

개방형공모제의 또 다른 문제점은 경력과 경험을 갖춘 능력 있는 민간인들이 참여를 기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일부 민간인들은 행정조직에서 일했다는 경력을 활용하기 위해 공모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성대 이창원 교수(행정학과)는 "개방형 심사위원으로 참여해서 후보자들의 경력 상황을 살피다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며 "전에 어느 부처의 과장 공모에 7명이 신청을 했는데 쓸 만한 인물이 단 한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일부 부처의 경우는 정년퇴직을 앞둔 교수나 연구원들이 주로 많이 응모를 하는데 이런 분들이 행정조직에 들어가서 어떤 변화를 일으킬 지 사실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 공직사회 내부 폭발 직전…"인사요, 한마디로 개판 다 됐습니다"

세종청사의 한 정무직 공무원은 지난해 연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인사와 관련해 푸념을 하면서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연말연초에 실국장과 과장에 대한 인사를 해야 하는데 막상 인사를 하려고 보니 할 자리가 없더란 얘기였다. 2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인 실. 국장은 청와대와 협의를 거쳐야 하고, 과장은 개방형공모제 직위가 많아서 손도 댈 수 없었다는 내용이다.

부처를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 하는 정무직 공무원이 자신이 원하는 인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조직 운영과 새로운 정책 추진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란 얘기였다.

세종 청사의 한 국장급 간부 공무원은 "개방형직위로 민간인들이 들어와도 행정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하다 보면 3년이 금방 간다"며 "오히려 일만 벌려 놓고 책임은 안지고 나가는 경우가 많아 남아 있는 공무원들이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학식과 경험, 덕망을 갖춘 민간 전문가들을 행정 조직에 투입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개방형공모제가 인사혁신처의 운영미숙 때문에 공직사회에서 불필요한 계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CBS노컷뉴스 박상용 기자] saypar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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