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의 역습..태평양 섬들 삼킨다

이인숙 기자 2016. 2. 2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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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코로섬이 납작해졌다.”

남태평양의 피지 정부 대변인 에완 페린은 23일(현지시간) 뉴질랜드라디오 인터뷰에서 “코로섬에 성한 건물이 몇 채 남지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20일 피지를 덮친 초대형 사이클론 윈스턴은 피지 사상 최악의 피해를 남겼다. 29명이 숨지고 코로섬 주민 4500명 중 2000명을 비롯해 8000명이 집을 잃고 이재민이 됐다. 피지에 최고등급인 카테고리 5의 사이클론이 상륙한 것은 처음이다. 12m가 넘는 파도가 덮치고 시속 325㎞의 강풍이 휩쓸었다.

지난해 3월 이웃한 섬나라 바누아투도 같은 규모의 사이클론 팜으로 15명이 숨지는 참사를 겪었다. 볼드윈 론드데일 바누아투 대통령은 당시 “정부가 건설한 모든 인프라가 사이클론 하나로 다 망가졌다”고 했다. 론드데일 대통령은 그 직후 참석한 기후변화 국제회의에서 “우리는 해수면이 올라가는 것을 계속 목도하고 있고 올해는 사이클론, 폭우가 더 빈번했다”며 “이 모든 것이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모아도 2012년 9월 사이클론 에반으로 1991년 이후 최악의 피해를 입었다.

마셜제도, 키리바시 등 남태평양의 섬국가들은 미국·영국 등 강대국의 핵실험장으로 이용돼 강제이주와 암 발병 같은 막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이 섬나라들은 색색의 산호초와 에메랄드빛 바다가 있는 파라다이스로 각광받으며 전 세계 관광객들의 휴양지가 돼 왔다. 그런데 이제는 선진국이 주도한 환경파괴로 생존 위기에 몰려 있다.

빈국인 섬나라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배출량의 0.1%에도 못 미치지만 이들은 기후변화의 피해를 가장 먼저, 가장 심하게 입는 최전선에 있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는 점점 바닷물에 잠식되고 있다. 엘니뇨(해수온난화)로 가뭄과 육지로 스며든 해수로 먹을 물이 점점 사라지고 흉작을 낳는다. 열대성 폭풍인 사이클론이나 허리케인이 자주 일어나 홍수 피해도 잦다.

영국 해들리센터에서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리처드 베트 교수는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섬나라들은 폭우나 태풍에 더 취약해졌다”고 지적했다.

투발루는 해수면이 올라가 섬 9개 중 2개가 물에 잠겼다. 앞으로 해수면이 1.8m 더 올라가면 투발루는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투발루 사람들 상당수는 ‘기후변화 난민’이 돼 호주 등지로 떠났다. 마셜제도는 지난 4일 엘니뇨로 가뭄이 심해지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벼랑 끝에 몰린 이들 섬나라는 국제무대에서 공격적인 기후변화 외교에 나서고 있다. 섬나라들이 결성한 퍼시픽아일랜드포럼은 2013년 9월 기후변화 행동을 촉구하는 ‘마주로 선언’을 채택해 유엔에 제출했다. 지난해 12월 채택된 파리 기후변화협약은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하로 제한하는 것으로 결론났지만 이들 섬국가들은 0.5도 차이가 생존과 멸망을 결정한다며 1.5도 이하를 주장했다.

22일 미국 럿거스대 연구팀은 산업화 전까지는 해수면 상승 속도가 100년에 3~4㎝ 정도였는데 1900년대에만 해수면이 14㎝ 올라갔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1993년부터는 100년당 30㎝씩 높아지고 있다. 2100년이 되면 지금보다 28~181㎝ 올라갈 것으로 예측됐다.

<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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