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노벨상 이야기] 해파리의 축복 - 2008년 노벨 화학상 -

2016. 2. 23.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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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일반적으로 노벨상하면 천재 과학자들의 창의적 성과를 떠올린다. 하지만 평범한 과학자라도 기회가 주어졌으면 생각했을 아이디어와 성과로 수상하는 사람도 꽤 있다.

2008년도 노벨 화학상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한 성과라기보다, 과학자들이 실험할 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한 성과에 주어졌다.

밤에 해파리를 보면 번뜩이는 빛이 나오는데, 그런 빛을 내게 하는 단백질 중의 하나가 녹색형광단백질(GFP)이다. 오사무 시모무라는 GFP의 생화학 성질을 밝혀서, 마틴 챌피와 로저 치엔은 GFP의 응용 가능성을 열어준 업적으로 2008년 노벨상을 받았다. 파급 효과가 큰 성과이긴 했지만, 이들이 이 건으로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모무라는 나고야대학에서 박사학위 과정 중에 발표한 논문 덕분에 프린스턴 대학의 프랭크 존슨 교수로부터 초청을 받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으면서 미국에서 포닥 연구를 시작했다. 시모무라는 1961년부터 1988년 사이에 프린스턴 대학과 매사추세츠의 우즈홀 해양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철마다 미국 워싱턴 주의 해변으로 가서 매일 3000 마리의 해파리를 채집하는 일을 19번 반복한다. 그의 추산에 따르면 85만마리로부터 해파리 단백질을 분리하여 그 성질을 연구했다. 해파리 한 마리당 단백질의 양이 너무 적다보니 어쩔 수 없이 양으로 승부를 본 것이다. 시모무라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끈기와 열정으로 임한 성실한 생화학자였지만 학계를 들썩일만한 성과를 낸 사람은 아니다.

챌피는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교수로서 '예쁜 꼬마 선충'이라 불리우는 아주 작은 지렁이 같은 생물체를 이용해서 신경과 발생를 연구하며 잘 나가던 사람이었지만, 이 분야 자체에서는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업적을 낸 사람이 아니다. 그가 막상 노벨상을 받은 것은 해파리의 GFP 유전자 자체 혹은 이것과 다른 유전자를 융합하여 만든 키메릭 유전자를 선충에 집어 넣었더니 형광이 발산된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분리한 GFP유전자를 갖고 일한 지 불과 2년도 안 되어 노벨상 업적이 나왔으니 그는 매우 운이 좋았던 사람이다.

챌피는 1992년 어느 날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자기 연구에 GFP를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GFP 유전자를 분리하고 있다는 더글러스 프래셔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에게 그 DNA를 보내줄 수 있냐고 물어본다. 프래셔는 유전자 분리가 아직 진행 중이니, 작업이 끝나는 대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마침내 유전자를 클로닝한 프래셔는 챌피에게 전화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아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당시 챌피는 연구년을 맞아 여자 친구가 있는 유타대학교로 가서 후일 아내가 될 툴리 하제릭과 인생의 재미를 만끽할 때여서 그런지 그 메시지를 아예 못 받았다고 한다. 콜롬비아 대학으로 돌아온 챌피는 과학자들이 늘상 하듯이, 컴퓨터로 논문들을 찾다가 프래셔가 GFP 유전자를 분리하여 발표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 프래셔에게 전화를 걸어 DNA를 받게 된다.

챌피는 자기 실험실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대학원생인 기나 유스커친에게 단기 프로젝트로, 대장균에다 GFP 유전자를 집어넣고 형광이 생기는지 보라고 지시했다. 초보 대학원생에게 일을 맡긴 것을 보니 챌피도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해파리 유전자를 가진 대장균을 만들고 현미경으로 관찰했으나 유스커친은 형광을 보지 못했다. 챌피의 실험실에 있던 현미경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유스커친은 예전에 화학공학과 실험실에서 형광에 대해 일해본 경험이 있었고, 거기에는 챌피 연구실보다 훨씬 더 좋은 현미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스커친은 대장균을 갖고 그 곳으로 가서 번득이는 빛을 보게 된다. 챌피는 즉시 대대적인 실험을 전개하여 GFP 유전자를 선충에 넣을 수 있고, 선충의 다른 단백질과 GFP를 융합한 단백질도 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박테리아에서 형광을 관찰한 순간부터 챌피 연구실이 흥분에 가득 차서 전쟁하듯이 실험을 펼쳐나갔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챌피의 가장 큰 행운은 해파리의 GFP가 대부분의 다른 광단백질들과는 달리 단독으로도 빛을 발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건 자연이 만들어 준 것이니 챌피의 능력이 아니다. 뿐만 아니었다. 챌피 이외에도 최소 다른 3개 팀이 비슷한 연구를 했으나 그들은 모두 형광을 보는 데 실패했다. GFP 유전자를 조금 다르게 클로닝했기 때문인데, 당시에는 챌피를 포함해서 모두들 특별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그리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운(運) 90%와 능력 10%, 즉 運9技1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현미경이 없었던 챌피는 꾀를 내기도 했다. 현미경 업자에게 자기 연구실에다 전시용 현미경을 설치해달라고 부탁하고, 그 날 모든 중요한 실험을 감행한다. 확실한 결과를 보기 전에는 고가의 현미경에 투자하기 어려운 기초과학자의 고육지책이었다.

로저 치엔은 칼슘과 같은 이온이나 형광들을 사용해 세포 연구나 진단에 유용한 물질을 만들어 100개가 넘는 특허를 보유한 발명가이자 유능한 과학자로서 세포의 이미징 분석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사람이다. 그는 GFP에 각종 돌연변이를 일으켜 더 강한 빛 혹은 다양한 색깔의 빛을 내는 단백질을 만들어 GFP의 용도를 크게 넓혔다. 챌피가 비포장 도로를 만들어 놓았다면, 치엔은 그 길에 최상급 아스팔트를 깔고, 여기저기로 빠져 나가는 각종 샛길까지 만든 것이다. 시모무라는 챌피와 치엔 두 사람이 GFP의 활용 가치를 올려놓지 않았더라면 해파리 단백질을 연구하여 光(광)단백질 분야에 기여한 생화학자 정도로 기록에 남았을 것이다.

인생사가 그러하듯이 이들의 수상에도 수많은 ‘if’가 있다. 챌피가 그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았더라면, 1년 후에 프래셔에게 다시 전화를 거는 집요함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많은 연구자들이 그러하듯이 프래셔가 일부러 DNA를 보내주지 않았거나 아주 천천히 보내줬더라면, 대학원생 유스카쳐가 박테리아를 들고 예전 실험실로 가서 현미경을 보는 열성이 없었더라면, 노벨상이 다른 누구의 손에 들어갔을지 모를 일이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챌피와 치엔 연구의 시발점이 된 GFP유전자를 분리했던 프래셔는 왜 노벨상을 받지 못했을까? 단백질의 생화학적 측면만 연구한 시모무라보다는 유전자를 분리한 프래셔가 노벨상을 받아야 하지 않았을까. 노벨상이 발표될 당시 프래셔는 아리조나주의 헌츠빌에서 새 차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셔틀버스의 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프래셔의 안타까운 인생사에는 우리 과학자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여러 가지 있다. 다음 회에서 다루기로 하자.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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