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출산 사실 숨겨도 이혼 사유 안돼"

CBS노컷뉴스 최인수 기자 2016. 2. 2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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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에 오기 전 성폭행을 당해 출산한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지 않았더라도 남편이 혼인 취소 청구를 할 수 없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40대 남성 김모씨가 아내 A(26)씨를 상대로 혼인을 무효로 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혼인을 취소하고 A씨가 3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국제결혼중개를 통해 만난 이 부부는 A씨의 모국인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2012년 4월 혼인신고를 마쳤다.

그런데 몇 달 뒤 한국에 들어와 시집살이를 하던 A씨는 이듬해 남편의 계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시아버지는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재판 과정에서 A씨의 과거 출산 경험이 밝혀졌다.

A씨는 13살일 때 베트남에서 소수민족 남성에게 납치돼 성폭행을 당한 뒤 임신을 했는데, 친정집으로 돌아와 낳은 아이는 남성이 데려가 버렸다고 주장했다.

남편은 A씨가 이같은 출산 사실을 결혼 전에 말하지 않았다며 혼인 무효와 위자료 3천만 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민법은 부부 가운데 한쪽이 사기 등에 의해 혼인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법원에 혼인 취소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A씨는 이에 맞서 계부의 성폭행 사건을 이유로 남편에게 1천만 원의 위자료를 요구하며 이혼하게 해달라는 맞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출산 경력은 상대가 혼인을 할지 결정하는 중요한 고려요소"라며 "김씨가 사전에 알았다면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로 남편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아동성폭력범죄의 피해를 당해 출산을 했지만 이후 그 자녀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상당기간 양육이나 교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사생활 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어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이 비난 받을 정도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면서 "출산 경력을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민법상 혼인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봐서는 안되고, 이는 국제결혼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이번 판결에 대해 "베트남에서 어린 시절 납치 강간으로 출산했던 여성이 한국 남성과 결혼해 새 삶을 살고자 했지만 시아버지에 의해 다시 성폭력을 당했다"며 "결혼생활이 끔찍하게 끝났지만 또다른 고통을 야기하는 형벌이 돼서는 안된다"고 논평했다.

이 단체는 또 "단순한 출산 사실이 아니라 성폭력으로 인한 출산 사실은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게 대법원이 공식으로 인정한 것"이라며 "여성의 인권을 반영한 대법원의 선고가 하급심에서도 수용되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CBS노컷뉴스 최인수 기자] appl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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