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주역.. 야당 정치사 큰 족적 남기고 천상으로

2016. 2. 2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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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별세

4·19혁명의 주역인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20일 향년 79세로 별세했다. 7선 의원을 지낸 이 전 총재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야당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서전 원고를 손질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서전 제목은 ‘우행(牛行)’으로 정해졌다.

◆YS·DJ에 버금가는 야권의 정치 거목

1937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난 이 전 총재는 부산상고와 고려대 상학과를 나왔다. 1960년 고려대 학생위원장을 맡아 4·19혁명을 주도하고 이듬해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1967년 제7대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76년 39세의 나이로 당 사무총장직과 부총재직에 잇따라 오르며 화려하게 정계 지도자로 부상했다.

1979년 4월 신민당 총재 경선에선 김영삼 전 대통령(YS), 이철승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 등과 경쟁했다. 1차 투표에서 낙선해 2차 투표에서 YS를 지지했고 YS가 신민당 총재로 선출됐다. 그는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대선후보와 관련한 양김의 갈등 국면에서 다시 한 번 YS의 편에 섰다. 하지만 1990년 YS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정당, 김종필 전 총리의 공화당과 3당 합당을 하자 이에 반발해 같은 해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함께 ‘꼬마민주당’을 창당했다.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20일 노환으로 향년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경북 포항 출신인 이 전 총재는 4?19혁명을 주도했고 정치계에 입문한 뒤엔 7선 의원을 지냈다. 사진은 1988년 11월 1일 이기택 5공비리 특위 위원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 문제 처리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그는 1991년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신민당과 통합해 민주당 공동대표를 맡았다.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DJ가 정계은퇴를 선언하자 제1야당 민주당 총재 자리까지 오르며 차기 대권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그는 DJ가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DJ와 결별했다. 1996년엔 이회장 총재의 신한국당과 통합했다. 2002년 대선 때는 민주당 시절 동지였던 노무현 후보 지원유세를 했다.

◆대통령 비위 안 맞춘 ‘마이웨이’

이 전 총재는 각종 인터뷰 등을 통해 정치적 인연을 맺었던 정치 거물들에 대한 신랄한 평가를 남겼다. 그는 YS에 대해 “군사정권이 만든 정당과 통합해 여당을 만들었던 YS의 정치행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DJ와 관련해선 “동교동 쪽에서 ‘DJ를 도우면 너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거절했다”며 “(정계복귀는) 80세 고령의 노욕”이라고 맹비난했다.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1987년 5월 14일 4·13 호헌조치 철폐를 요구하며 11일째 단식투쟁을 벌이다 건강 악화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선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 그 사람에게서 보지 못했던 어두운 나머지 절반을 발견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2000년 16대 총선 한나라당 공천에서 자신을 배제한 이회창 전 총재에겐 “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고 혹평했다. 그는 “그들의 비위를 맞춰 가며 살았다면 지금쯤 ‘이기택 시대’가 왔을는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사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해 내 길을 걸었다”고 자부했다.

◆고인 추모하는 정치권 조문행렬

정의화 국회의장은 21일 강남성모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 전 총재가 보여준 말씀과 행동을 우리가 잘 음미하고 따라 나라를 반석에 올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항상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초지일관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분”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도 조문했다. 이 전 총재 비서실장을 지냈던 박계동 전 의원은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19일 밤 총재님이 여의도 사무실에서 지난 6년간 준비해온 자서전 원고의 탈고작업을 마치고 나오며 ‘아, 큰일을 마쳤네’라고 흡족하게 말씀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사인과 관련해 유족들은 “평소 지병은 없었는데, 자다가 호흡곤란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왼쪽)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된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의 빈소에서 헌화를 마친 뒤 이 전 총재의 부인 이경의 여사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육영재단 전 이사장도 빈소를 찾았고,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북한 도발에 맞서 조건부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 전 총재의 장례식은 4·19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지고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유족으로는 배우자인 이경의 여사, 세 딸인 우인·지인·세인씨와 아들 성호씨가 있다. 발인은 24일, 장지는 4·19 국립묘지다.

남상훈·안병수 기자 nsh2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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