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는 누구..4.19 산증인
[머니투데이 배소진 기자] [[the300]20일 향년 79세 일기로 별세…7선 의원으로 YS·DJ와 야당사(史) 한 축]
20일 향년 79세의 일기로 별세한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는 1937년 경상북도 영일군 출생이다. 정치적 기반은 부산광역시로 1975년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61년 고려대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60년 고려대 학생위원장으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고려대 4.18시위를 주도하는 등 4.19혁명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제7대 국회인 지난 1967년 신민당 전국구로 정계에 입성했으며, 이후 8대에서 10대까지 부산 동래에서 내리 당선되며 야당의 중진이 됐다. 당시 신민당 역대 최연소 사무총장에 이어 부총재를 역임했다.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로 신군부에 의해 정치활동이 규제됐다. 4년 뒤인 12대 총선에서 지역구를 부산 해운대구-남구로 옮겨 13대까지 당선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1990년 그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정당, 김종필 전 총재의 공화당과 3당 합당시 참여를 거부하며 결별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홍사득· 이철 의원 등과 함께 '꼬마민주당'을 창당해 총재에 선출됐다.
이후 199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해 민주당을 창당하고 공동대표가 됐고 14대 총선에서는 전국구로 당선됐다. 총 7선의 국회의원이다.
김 전 대통령이 잠시 정계를 은퇴한 기간 민주당 대표로 야당 총수 역할을 했으나, 김 전 대통령 정치복귀 이후 동교동계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는 과정에서 이 전 총재는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됐다.
이후 15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총재로서 부산 해운대구-기장갑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경북 포항 북구 재보선에도 출마했으나 박태준 전 의원에 밀려 낙선했고 사실상 정치적 기반을 잃었다. 이후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합당하면서 한나라당 소속이 됐다.
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이회창 총재의 독선에 반발해 탈당, 민주국민당에 몸담고 최고위원을 지냈으나 총선에서 또다시 참패했다.
이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해 상임고문직을 맡으며 17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그러나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등 여야를 넘나드는 정치행적을 기록했다. 2008년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도 지냈다.
이 전 총재는 지난해 11월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빈소를 찾아 "오늘의 이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만드는 데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가장 탁월한 공을 세우신 분"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배소진 기자 sojin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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