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장론의 숨은 뜻은 사드 배치와 핵 재처리

전병역 기자 2016. 2. 2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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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반도 안보 지형이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한이 던진 수소탄에 성큼 다가선 핵과 인공위성의 궤도 진입에 두 차례 연거푸 성공시킨 발사체가 불씨가 됐다. 여기에 맞장구치며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강경파들이 기름을 끼얹었다. 수년 전만 해도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듯한 소리로 들린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그동안은 북한의 위협에도 미국 ‘핵우산’ 아래 안도해 왔으나, 이제 우리 스스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여과없이 표출된다. 이들이 노리는 건 사실 내뱉은 말(핵무장)과는 좀 다른 걸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좌우 이념 지형을 막론하고 이 땅의 ‘자주파’를 위해 핵능력부터 진단해 보자. 핵무기는 대개 1년 남짓 걸려 1조원만 들이면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전문가인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 괜시리 움츠린 어깨가 펴진다. “한·미 원자력협정 문제를 일단 비켜두고 보면, 우리도 빠르면 6개월에서 12개월에 개발하고 18개월 정도면 양산이 가능하다. 예산은 1조원 정도 든다.” 원자력 발전 등으로 쌓은 기술력으로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 개발은 식은 죽 먹기라는 얘기다. 서 교수는 “바닷물에서 중수소 1g을 걸러내는 기술은 학교 실험실에서 누구나 10원 정도만 들이면 된다”고 했다. “북한처럼 우라늄 농축이나 플루토늄 재처리는 ‘찌질한’ 옛날 얘기다. 그런 거 없이 바로 증폭핵분열탄이나 수소탄까지 갈 수도 있는 기술 수준에 있다”는 서 교수의 목소리에서는 설움·애국심·자심감 같은 게 묻어났다.

문제는 핵물질 확보다. 핵무장론자들에게는 안타깝게도 북한에 널렸다는 천연우라늄이 남한에서는 안 나온다. 대신 플루토늄은 상당수 확보할 수 있다. 월성의 중수로 원전 4기에서 제법 많은 양의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미국 핵군축통인 찰스 퍼거슨 미국과학자협회(FAS) 회장은 지난해 4월 비공개로 전문가들에게 돌린 보고서에서 한국이 4개의 가압중수로에서 매년 416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준무기급 플루토늄 2500㎏을 생산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1998년과 2003년 국내에서 플루토늄을 재처리하고 우라늄 농축을 시도했다가 미국에게 걸려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다. 원자력연구소는 앞서 1982년에도 극미량인 수㎎의 플루토늄을 추출한 적이 있다고 2004년 과학기술부가 밝힌 적도 있다. ‘미국이 하면 연애, 우리가 하면 불륜이냐’는 불만이 학자들 사이에 끓어 올랐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원 핵무기 전문가도 기술로는 1년 안에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핵물질 확보, 고폭 실험, 미사일이나 항공기에 탑재하는 3단계가 필요하다”며 “사용후 연료봉 재처리 시설을 짓는 데 1년도 안 걸린다. 북한처럼 핵폭발 실험 대신 시뮬레이션을 이용하고 일반 폭약을 넣어 고폭장치를 터뜨리는 실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미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강경론자들이 전직 총리들까지 동원해 군불을 마구 땐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나 정책위의장 같은 중역들이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당론은 아니라니 어안이 벙벙해진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월 15일 “비가 올 때마다 옆집(미국)에서 우산을 빌려 쓸 수는 없다. 우리 스스로도 ‘우비’를 튼튼하게 갖춰 입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다. 너무 나간다 싶었던지 김무성 당대표는 “당론이 될 수 없고 개인 생각”이라고 슬쩍 찬물을 끼얹었다. 역시 ‘당나라당’ 같다고? 그보다는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는 해석이 더 어울릴 듯하다.

또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 등이 주장해온 미국 전술핵의 남한 내 재배치 요구도 커졌다. 단 ‘전술핵’은 이미 미·소 군축은 물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때 철수한 뒤 실효성이 떨어진 무기라는 시각이 있다. 사거리가 짧은 전술핵 대신 잠수함 등 다양한 투발수단이 발달해 ‘전략핵’으로 단계가 바뀐 상황이다. 미군이 오키나와나 괌에 전략핵 미사일을 배치하고 있고 항공모함 등에도 있다. 남한의 전술핵과 오키나와 전략핵 발사 시간차도 몇 분에 불과하다. 반면 핵 전문가인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전 통일연구원장)는 “남한에 배치했을 때 북한이 갖는 ‘인지’ 효과가 크다”고 반박했다.

특히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처럼 대북 강경파가 아닌 온건 대화파 일각에서도 핵무장론이나 전술핵 재배치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예사롭지 않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핵무장은 어렵지만, 전술핵 재배치는 북핵 포기를 위한 협상용으로 한시적·제한적으로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사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기도 어렵거니와, 그쪽으로 갈 때 사회가 치를 대가가 너무 크다는 건 보수들도 잘 안다. 오히려 양식 있는 보수파나 전문가의 주장은 ‘NPT 체제 안에서 미국에 폐연료봉 재처리 기술을 허락받겠다’는 쪽에 무게가 쏠린다. 김 교수는 “지금 나오는 핵무장론은 사실 핵무기를 만들자는 게 아니라, NPT 체제 안에서 용인된 재처리 기술 등을 우리도 갖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력핵공학과 교수도 “내일 당장 핵무장을 하자는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 차원이 아니라 이 참에 공론화해보자는 거다. 따져보지도 않고 큰형님(미국)에게 겁 먹는 건 전근대적 사대주의 아니냐”고 말했다. ‘큰형님’이 들으면 펄쩍 뛸 소리들이 남한 사회를 강타하는 중이다.

특히 원 원내대표 발언 이튿날인 16일 나온 김정훈 정책위의장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김 의장은 “한·미 당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협의를 할 때 핵 재처리에 대한 논의도 함께 해주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의 대가가 폐연료봉 재처리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급진적 핵무장론은 비판하지만 묘하게 맥은 닿아 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핵무장론은 급진적이고, 전술핵도 결국 미국 자산에 의존하는 것”이라며 “핵개발 능력을 갖추는 건 한 대안으로 면밀히 검토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와 대화를 위한 억제방안으로서 ‘플랜B’를 신중히 검토할 단계라는 얘기다. 또 핵무장·개발론은 2014년에만 78억 달러(약 9조1299억원)어치 무기를 수입했는데, 이 부담을 덜어주는 측면도 강조한다.

핵무장을 한다면 절차상으로는 NPT 탈퇴를 전제로 한다. 보수 일각에선 북한 핵개발로 이미 ‘한반도 비핵화 선언(1991년)’은 폐기된 상태라고 주장한다. NPT 제10조 1항은 조약 회원국에게 비상사태 시 조약 탈퇴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정성장 실장은 “핵무장을 해도 미국이 한·미동맹을 파기할 수도 없고, 안보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적극적이다. 서균렬 교수는 “인도와 파키스탄도 핵무기를 개발하자 미국이 제재에 나섰다가 1년 만에 풀어줬다. 우리가 더 못한 존재냐”고 말했다.

반면 전통적인 대화파들은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우라늄 원료를 수입하고, 원전 기술의 원천이 대부분 미국인데 경제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발전량에서 원자력이 석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38%를 차지한다.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도 “대미 압박용 안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일 뿐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나아가 “색깔론으로 4월 총선에서 표를 모으겠다는 계산이 깔렸다”고 비판했다. 다만 여권과 보수층을 중심으로 나오는 핵무장론, 전술핵 재배치론은 단지 총선용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관측된다.

나아가 핵개발론은 대미관계를 놓고 사상논쟁까지 부를 기세다. 단순히 대비하자면 이렇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전시작전권 회수를 추진한 대미자주파인 민주당 정부 계열은 오히려 미국 핵우산을 이용하자는 쪽이다. 반면 전작권 회수에 반대하던 새누리당 계열은 핵개발로 대미 자주노선을 걷자는 뒤바뀐 구도가 됐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그럼 반미국가가 돼야 하는데 보수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 논의할 가치도 없다”며 “박정희 시절도 그랬고, 핵개발론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어디든 극우자주파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신은 “대화론자이지만 대화지상주의자는 아니다”라는 정성장 실장은 “안보와 대화를 병행한 ‘중도적 핵무장론’으로 보수와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정 실장은 “미·중 패권경쟁 단계에 균형외교를 모색해야 한다”며 “진보는 지나치게 평화에 대한 환상이 있다. 모든 걸 대화와 협상으로 풀려는 사고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대화나 교류가 달러 퍼주기와 시간벌기로 끝났다고 종지부를 찍고 전면 봉쇄로 돌아섰지만 교류·협력, 대화의 실효성이 더 높다는 목소리도 많다. 정욱식 대표는 “북핵은 체제보장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협상으로 풀기 전에는 폐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김연철 교수는 “대화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다른 건 결과가 뻔하다. 전쟁할 수도 없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김종대 단장은 “해법은 평화협정이 들어간 ‘9·19 북·미 공동성명’대로 하면 된다. 그 이상 잘 만들 순 없다”고 강조했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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