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프레임 전쟁'에선 보수가 한 수 위

김시균 2016. 2. 1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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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프레임 / 조지 레이코프·엘리자베스 웨홀링 지음, 나익주 옮김 / 생각정원 펴냄
"보수적(conservative)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아끼고 보호한다(conserve)'라는 단어에 있다. 우리는 돈을 아끼고 싶어하고, 우리가 모은 재산을 보호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우리 나라를 보호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우리 나라를 구하고 싶어 한다."

 최근 미(美) 공화당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한 말이다. '보수(保守)'의 가치를 설파할 때 만큼은 그도 발화의 초점이 명확했다. 연일 상식 밖의 '막말'을 쏟아내며 진보 진영의 비난 세례를 받지만 그럼에도 대중이 높은 지지를 받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보수 진영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분명히 전달할 줄 알았다.

 저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그들 스스로 옳다고 믿는 도덕관에 어울리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전작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정치판의 '프레임 짜기'가 왜 중요한지, 이것에 실패한 진보 진영의 무능은 어느정도인지 폭로해 세간의 화제를 몰고온 그다. 이번에는 제자 엘리자베스 웨홀링과 "진보가 그들만의 언어를 재정립해야 함"을 역설한다.

 레이코프가 보기에 진보 진영이 보수 진영에 밀릴 수밖에 없었던 건 '효율적 인 언어 사용'의 부재(不在)에 기인한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보다 더 효율적인 언어를 사용해 자신들의 심오한 가치를 전달"하고 있었다. 저자는 "부동층 유권자의 보수적 도덕성은 보수적 언어로 자극해야 활성화되고, 이들의 진보적 도덕성은 진보적 언어로 자극해야 활성화된다"고 말한다.

 실로 보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그들 나름의 언어를 꾸준히 반복 사용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대중의 마음 속에 이들의 가치가 각인되는 효과가 있었다. 반면 진보는 자신들의 언어를 찾는 노력에 게을렀다는게 저자 판단. 진보의 도덕 체계를 절대선(善)으로 전제하며 그 가치를 '세일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보수의 언어로 그들의 생각을 전하기 급급했다. "가장 중요한 건 보수적인 언어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보수의 언어를 반복하면 보수의 생각이 계속 따라온다."

 예컨데 '세금'이라는 단어. 과거에 세금의 의미는 긍정적이었다.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고 합당하고 가치 있는 정부 사업에 들어가는 돈"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보수 진영이 '더러운 낱말'로 만들었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세금은 정부가 당신 호주머니에서 꺼내다가 별로 가치 없는 사람들과 사업에 낭비하는, 힘들게 번 당신의 돈을 의미하게 됐다." '세금은 고통'이라던 조지 부시의 취임 당시 발언이 대표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세금 부담' '조세 피난처' '세금 탈출구' '세금 낙원' '세금 회피' '세금 포탈' '세금 인하' 등도 보수적인 프레임 안에 갇힌 언어다. 은연중에 세금을 악(惡)으로 내몰며 '세금 부담을 지지 않는게 무조건 좋다'는 인식을 퍼뜨린다. '세금 인하'를 주장하는 보수 진영이 만들어낸, 그들의 도덕체계에 부합하는 언어다.

 저자는 진보 진영이 그들 나름의 언어를 재정립하길 요청한다. 상대편에 대한 반대 논증을 펼치는 데 머물며 그들 특유의 도덕적 가치를 그들 나름의 언어로 설파하지 않는 점이 문제라는 것.

 이어지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만일 어떤 보수적인 사람이 '불필요한 지출을 삭감하라'라는 주장을 펼친다면 진보적인 사람들은 이 주장에 반대하는 논증을 펼쳐선 안 된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바를 말해야 한다. 예컨데 이렇게 말하라. 경제는 현재 현금의 투입을 필요로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우리의 기반시설을 재건하고 우리의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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