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헐, KBS 변한 거 보소 ㅋㅋㅋ"

김당 입력 2016. 2. 19.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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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북한식당 실태 보도, 과거 보도와 180도 바뀌었다

[오마이뉴스 글:김당, 편집:이준호]

공영방송 KBS가 이 참에 국영방송으로 정체성을 바꿔 '박근혜 확성기'가 되기로 자처한 모양이다. KBS는 최근 북한 당국이 해외에서 운영 중인 식당의 실태를 연달아 보도했다. 중국과 동남아 일대의 북한 식당들이 한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며 '외화벌이에 혈안'이 돼 있는데도 한국 손님들로 북적인다는 고발 기사였다. 그러자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의 정치게시판에는 이런 게시글이 올라왔다.

"헐, KBS 변한 거 보소 ㅋㅋㅋ"

KBS가 언제부터 한국인 관광객의 주머니 사정까지 걱정했는지는 모르지만, KBS가 변한 것을 '일베'가 걱정할 정도다. 한국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해외의 '바가지 상혼'을 고발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외화벌이 차원에서 해외식당을 운영해온 지는 이미 20년이 넘었다. 20년 동안 아무 소리 않다가 이제 와서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느냐이다.

북한식당에 가는 한국인은 비국민?

 KBS는 최근 개성공단 폐쇄 이후 중국과 동남아 일대의 북한 식당들이 한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며 ‘외화벌이에 혈안’이 돼 있는데도 한국 손님들로 북적인다고 연달아 보도했다.
ⓒ KBS화면
내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가 운영하는 베이징의 북한식당 '해당화'에 처음 가본 것도 1996년경이었다. KBS 기자들은 나보다 시력이 좋거나 시각이 좋은 모양이다. 그 뒤로도 베이징에 갈 때마다 북한식당을 여러 번 갔지만 나는 '외화벌이에 혈안'인 종업원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중국의 한국인 술집에 비하면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은 순진하기조차 했다.

그런데 KBS는 북한식당의 외화벌이를 "수십 배 바가지 술값에, 온갖 불법이 횡행하는", 그래서 순진한 한국인들이 가서는 안될 곳처럼 고발했다. 또한 전세계의 북한식당을 세어보기라도 한 듯이 "중국과 러시아 등 전세계에 130군데, 캄보디아에만 일곱 군데를 운영 중인데, 전세계 북한 식당이 평양에 보내는 '충성자금'은 해마다 3천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나는 이런 수치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해외 운영 중인 북한식당 현황'에 따르면, 북한은 세계 10여개국에서 120여개(파견인력은 3,000여명)의 외화벌이 식당을 운영 중이며 매출액은 연간 2,000만 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연간 순이익은 500~1,000만 달러 수준으로 추정했다.

취재원이나 기자가 매출액 2,000만 달러를 3,000만 달러로 과장했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회계상으로 이치가 맞지 않다. 순이익을 본국에 송금하는 것이 아니고 매출액을 다 본국에 송금하면 식당은 도둑질이라도 해서 운영한다는 말인가. 또 해외 북한식당은 개인사업체가 아니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국영식당인데 국정원 보고서에도 없는 '충성자금'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KBS는 "낮에는 식사로 밤에는 공연으로 외화를 버는 북한식당에는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된 와중에도 한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100개에 이르는 중국의 북한식당들이 한국인 손님들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KBS는 이어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도 한국 관광객들을 위한 곡들이고, 관광객들은 함께 박수 치며 춤도 춘다"고 보도해 북한식당에 가는 한국인들은 '비국민'인 것처럼 금기시했다.

정부, 재외공관과 여행업계에 '북한식당 자제' 공문

아니나 다를까, KBS의 '확성기' 보도가 잇따르자 외교부와 통일부는 재외공관과 여행업계 등에 공문을 보내 '북한식당 방문 자제'를 권고했다. 사실 정부가 민간인의 해외 북한식당 방문을 막을 근거는 없다. 그러나 여행업계는 정부의 사실상의 방문 금지 요청을 적극 수용해 북한식당 방문을 여행상품에서 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영방송 KBS'가 앞장서니 국가기간통신사라고 가만 있을 리 없다. <연합뉴스>는 17일 ①북한 해외파견 근로자 번 돈도 당으로 간다 ②북한 해외파견 근로자 '현대판 노예'인가 ③북한 근로자 파견제한, 대북제재에 포함될까 ④북한 인권기록보존소 윤여상 소장 인터뷰 등 네 꼭지를 '김정은의 돈줄'이라는 기획기사로 쏟아냈다. 국영방송과 국영통신의 '충성경쟁'을 보는 듯하다.

KBS는 2002년 6월에만 해도 '남북이 하나된 옌볜의 북한식당'이란 제목으로 달라진 북한식당의 풍경을 이렇게 보도했다.

 KBS는 2002년 6월에만 해도 ‘남북이 하나된 옌볜의 북한식당’이란 제목으로 달라진 북한식당의 풍경을 보도했다.
ⓒ 김당
"앵커 : 2년 전 남북의 정상이 만나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의 새 장을 연 이후 생긴 큰 변화 중에 하나는 남북의 주민들이 서서히 마음의 벽을 허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북한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중국 옌볜의 한 북한식당을 백운기 기자가 찾아가 봤습니다."

기자 : 한국인 관광객들이 늘면서 북한 종업원들이 자연스럽게 남한 가요를 부르고 그토록 고집하던 남조선이라는 호칭 대신 한국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비록 북한이 선전 차원에서 이 같은 식당을 운영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남북이 자연스럽게 어울려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이 그리 잘못돼 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불과 4년 전에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문을 연 유럽 최초의 북한식당 `암스테르담 평양 해당화 레스토랑' 소식을 맨 먼저 전한 것도 KBS였다. KBS는 "북한 당국이 파견한 운영 책임자 한명희씨와 주방인력 4명 등 모두 9명인 종업원은 북한 사람들이고, 한씨는 북한의 보위부가 관할하는 것으로 알려진 해당화 식당 베이징 분점에서 15년 동안 일했으며 총경리, 즉 총책임자를 지냈다"고 식당을 소개했다.

평양냉면-대동강 맥주 마실 때도 핵-미사일 걱정할 판

최근의 KBS 보도 양태와 비교하면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똑같은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이 남한 가요를 부르는 것에 대해 전에는 "마음의 문을 열고 한국 노래를 부른다"고 칭찬하더니, 최근에는 "주머니를 털고 바가지를 씌우기 위해 한국 노래를 부른다"고 보도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04년부터 가동된 개성공단에 유입된 현금 총액은 총 6,160억 원, 지난해 유입 자금은 1,320억 원이다. 북한식당의 연간 외화벌이는 고작 55억~110억원으로 개성공단 연간 임금총액의 4~8% 수준에 불과하다. "개성공단 중단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공언한 박근혜 대통령의 그 다음 대북 압박책이 고작 개성공단의 4~8%인 북한식당 돈줄 끊기라면 실망스러운 일이다.

개성공단의 11년간 임금 총액 중에서 북한 당국이 떼어가는 것을 0으로 하고 북한 노동자 5만명으로 단순 계산하면, 노동자 1인당 임금은 연간 112만 원이다. 작년 임금총액을 기준으로 해도 1인당 264만 원이다. 북한 당국이 떼어가는 돈을 0으로 쳐도 한국의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이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2014년 4월 얼마나 많은 방글라데시 봉제산업 노동자들의 임금착취와 희생 속에서 영국 기업과 소비자들이 옷을 구매하고 있는지를 다룬 "The shirt on your back: the human cost of the Bangladeshi garment industry"라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제작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박근혜 확성기'는 종편만으로 충분히 차고 넘친다. 공중파 방송은 다양한 시청자들에게 획일과 통일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가디언>이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저임금 실태를 고발해 영국 소비자들의 윤리적 소비를 촉구한 것처럼, 개성공단의 저임금 실태를 고발하는 것이 공영방송이 할 일이 아닐까 싶다.

정부가 북한식당 방문을 금지하면 여행사들은 여행상품을 바꿀 수밖에 없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동남아 등지에서 10대 소녀들을 고용한 마사지 업소를 이용하느니 북한식당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본다. 그런데 대통령 때문에 이 나라 국민은 모처럼 해외에 나가 평양냉면을 먹을 때나 대동강 맥주를 마실 때도 냉면과 맥주가 핵과 미사일로 변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해야 하는 비루한 국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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