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의 14연승, '패배 수당'이 만든 마법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2016. 2. 1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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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오른쪽)이 지난해 11월 열린 2015-2016 V리그 OK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서 여오현 플레잉코치와 작전을 논의하고 있다. 현대캐피탈 제공

지난해 12월21일 2015~2016 V리그 전반기가 끝났다. 지난 시즌 봄배구 탈락의 아픔을 맛본 현대캐피탈은 최태웅 감독을 중심으로 야심차게 ‘업 템포 1.0’, 이른바 ‘스피드 배구’를 앞세우며 출발했다. 그러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10승8패 승점 31. OK저축은행(승점 41), 대한항공(36), 삼성화재(33)에 이은 리그 4위였다. 포스트시즌 진출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현대캐피탈은 시즌을 앞두고 많은 변화를 꾀했다. 김호철 감독이 물러난 자리에 코치 경험도 없는 세터 최태웅을 곧바로 감독으로 선임했다. 감독에 앞서 단장도 바뀌었다. 전력분석을 위한 프로그램을 새로 개발했다. 개발을 맡은 업체가 “프로야구팀의 분석 프로그램보다 항목이 더 많다”고 했을 정도로 꼼꼼하게 준비했다.

모든 변화가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방향에 대한 확신 부족이 가장 큰 이유다.

최태웅 감독은 시즌 직전 코칭스태프 회의에서 “만약 우리의 (스피드배구) 시도가 5~6연패로 이어졌을 때 어떻게 하면 좋겠나”를 물었다. 코칭스태프는 “그래도 끝까지 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장 수뇌부의 의지는 명확했다. 프런트도 뒤를 받쳤다. 구단 관계자는 “팀 정책 결정에 있어 현장의 의견을 제1원칙으로 삼았다”고 했다. 변화의 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다져졌다.

최태웅 감독의 분석과 노력이 이어졌다. 상대의 서브·공격 패턴, 수비 위치 등이 데이터와 함께 최 감독의 직관으로 쌓였다. ‘스피드 배구’는 ‘토털 배구’와 같은 말이었다. 리시브와 토스가 이뤄졌을 때 4명의 공격수가 동시에 날아올라 상대 블로커의 판단을 흔든다. 계획이 실천으로 실천이 결과로 이어지는데는 경험과 시간이 필요했다.

전반기는 4위였다. 1라운드를 4승2패로 마쳤지만 2라운드에서 3승3패로 주춤했다. 주변에서 ‘체력 문제’가 우려되기 시작했다. 모두 함께 많이 움직여야 하는 배구다 보니 체력이 변수였다. 주포 문성민은 지난 시즌 무릎 수술을 받고 돌아온 터였다. 외국인 선수 오레올 까메호의 공격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몰빵배구’로의 복귀가 당연하다는 듯한 훈수가 이어졌다. 설상가상, 전반기 막판 대한항공-삼성화재-OK저축은행 등 3강을 상대로 내리 3연패를 했다. 변화 포기에 대한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변화 시도의 실패는 때 이른 포기에서 나온다. 최태웅 감독과 현대캐피탈 프런트는 여기서 ‘역발상’을 택했다. 프로스포츠에서 인센티브는 승리를 기본으로 삼는다. 이겼을 때 승리 수당을 지급한다. 현대캐피탈은 거꾸로 3연패 뒤 ‘패배 수당’을 선물했다. 구단 관계자는 “최태웅 감독의 결정에 구단이 따랐다. 오히려 승리 수당 보다 규모가 더 컸다”고 말했다. 승부의 결과가 아니라 경기 내용 및 방향에 대한 확신이었다. 최 감독은 “비록 결과는 3연패였지만 지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배구의 색깔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따른 변화 시도의 포기 대신 변화 방향에 대한 확신은 팀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현대캐피탈은 ‘패배 수당’ 이후 후반기 14경기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스피드 배구라는 변화 방향에 대한 확신이 선수단 전체에 뿌리 내렸다. ‘우리는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신념은 최고의 무기가 됐다.

선수단의 신념을 북돋운 최태웅 감독의 ‘어록’은 배구 코트를 넘어 화제가 됐다. 지난 7일 한국전력과의 경기 5세트 11-14에서 만든 기적과 같은 역전승은 최 감독의 “우리 10연승 팀이야, 자부심을 가져”라는 한 마디에서 비롯됐다. 9일 OK저축은행전에서도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너희를 응원한다. 그 힘을 받아서 뒤집어보자”고 했고, 3세트 역전과 함께 연승을 이어갔다.

변화의 방향에 대한 확신, 이를 향한 신념이 모여서 기록을 향한다. 현대캐피탈이 2005~2006시즌 세운 단일시즌 최다연승기록(15연승)에 1승만 남았다. 삼성화재가 갖고 있는 역대 최다연승기록(17연승)도 멀지 않았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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