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살린 에딩턴, 한국에서는 나올 수 없다
[오마이뉴스 글:김성수, 편집: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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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버트 아인슈타인 |
ⓒ 위키피디아 |
1915년 독일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논문을 통해 주장하지만 그때까지 그런 아인슈타인의 존재나 그의 이런 주장을 아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한줌 극소수 과학자들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의 상대성 이론도 과학자들과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한 개의 '이론'일 뿐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무명의 아인슈타인을 세계적 스타 과학자로 데뷔하게 만든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지금도 이름이 낮선 아서 에딩턴(1882-1944)이었다.
에딩턴은 1915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을 때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천문학자였다. 에딩턴은 1915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처음 읽고 이를 실험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과학의 세계에서 증명되지 않은 이론은 물 없는 오아시스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딩턴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실험과 검증을 거쳐 증명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연구자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에딩턴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캠브리지 대학을 통해 영국 정부에 연구자금을 신청한다.
그러나 1915년 당시 영국과 독일은 1차 대전 중이었다. 그래서 캠브리지 대학과 영국정부는 적국인 독일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업적(?)을, 그것도 전쟁 중에, 돈과 자원을 들여서 증명하겠다는 에딩턴의 엉뚱한(?)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울러 적국의 학자가 쓴 논문 '상대성 이론'도 영국인들이 아예 읽지 못하도록 금서 조치까지 취한다. 이 과정에서 캠브리지 대학의 일부 교수들은 에딩턴을 전쟁 중인 적국인 독일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자'라고 거침없이 비난하기도 한다.
또한 교수 중엔 자기 자식을 1차 대전에서 독일군에게 잃은 아버지들도 있었다. 이들은 퀘이커 교도이자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에딩턴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도 있었다. 한 노교수는 "사랑하는 사람(아들)을 전쟁터에서 적국 독일놈들에게 잃어버린 아픔을 아느냐?"라고 에딩턴을 거침없이 나무라기도 했다. 에딩턴은 이런 비난에 대해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아픔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아픔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에딩턴은 그 당시 영국 사회에서도 금기시 되는 동성애자였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동성 애인)을 전쟁터에서 적국 독일놈들에게 잃어버린 아픔"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영국 사회 분위기 때문에 에딩턴은 그 아픔을 남몰래 혼자서 삭여야만 했던 것이다.
한편, 막대한 돈과 자원이 없이는 상대성 이론을 증명할 수 없었던 에딩턴은 한동안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마침내 심사위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에딩턴은 캠브리지 대학의 과학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과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진리(truth) 입니까. 아니면 국가입니까? 영국과 독일이 국가 간 전쟁 중이라고 해서, 또 사랑하는 사람을 전쟁터에서 적국 독일놈들에게 잃어버린 아픔이 있다고 해서, 독일 과학자가 보여준 진리는 진리가 아닌 것입니까? 그것이 정말 진리(truth)를 추구하는 과학자들의 태도라고 생각합니까?"
'이적행위'를 지원해준 영국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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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 에딩턴 |
ⓒ 위키피디아 |
에딩턴의 각고의 증명 덕에 아인슈타인은 졸지에 무명의 과학자에서 세계적인 스타 물리학자로 등장하며 언론의 각광을 받고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캠브리지 대학 동료와 영국정부의 온갖 비난과 반대를 물리치고 적국 과학자의 업적을 증명한 영국 과학자 에딩턴은 금방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잊혀버린다.
이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영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 주장했던 중력파 이론의 존재가 미국 과학자들에 의해 1세기 만에 증명된 2016년,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을 회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에딩턴이 100년 후인 현재 대한민국 박근혜 정부하에 생존해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대학에서 연구는커녕 이미 교도소에 수감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60년 전인 1950년대 한국전쟁기에 생존해 있었다면 에딩턴은 이승만 정권에 의해 이미 처참하게 학살되었을 것이다.
에딩턴은 적국(우리 경우라면 북한)을 이롭게 한 학자로 박근혜 정부에서 이미 낙인찍혔을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수감생활을 마치고 석방되어서 설사 가까스로 대학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하더라도 연구비 지원은커녕 국가보안법 위반자인 '이적행위자'로 대학에서 이미 쫓겨나거나 또 다시 수감되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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