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건물이 오히려 어색한 네덜란드 로테르담

서부원 2016. 2. 1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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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베네룩스 여행기 ⑥] 콘크리트의 자유분방한 변신, 로테르담 기행

[오마이뉴스 글:서부원, 편집:박혜경]

▲ 로테르담 숙소 주변 풍경 왼쪽의 노란 파이프가 걸린 건물은 중앙도서관이며, 연필을 뒤집어놓은 듯한 펜슬하우스가 세워져 있다. 그 뒤가 숙소였던 큐브하우스다.
ⓒ 서부원
우리나라 사람들이 네덜란드 하면 떠올리는 건 십중팔구 풍차와 운하 아니면 히딩크고, 아는 도시를 대보라면 암스테르담과 헤이그 정도다. 암스테르담은 수도여서, 헤이그는 학창시절 역사 시험에 단골로 출제된 '헤이그 특사'라는 용어를 기억하기 때문일 거다. 하긴 요즘엔 박지성 선수가 유럽 축구에 데뷔한 도시인 에인트호벤을 먼저 이야기하는 이들도 더러 있긴 하다.

그런데, 중1 아이에게 네덜란드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축구와 함께 키다리와 치즈의 나라다. 어디서 읽었는지 언제부턴가 네덜란드 사람들이 세계에서 키가 가장 큰 민족이라며 부러워했다. 그 이유가 매 끼니마다 치즈를 먹는 식습관 때문인 것 같다면서, 그때부터 치즈를 습관처럼 즐기게 됐다. 어려서부터 지금껏 우유라면 단 한 모금도 먹지 않는 아이인데 말이다.

네덜란드의 도시로는 로테르담을 앞에 둔다. 많은 여행안내서가 로테르담을 부러 가볼 만한 관광지로 추천하진 않았지만, 그는 이번 베네룩스 여행 중에 꼭 가보고 싶은 도시로 첫손에 꼽았다. 단지 장난감처럼 생긴 큐브하우스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사진을 접한 뒤 아이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보는 게 이번 여행의 '목표'라고까지 말했다.

15박이나 되는 이번 일정 중에 맨 먼저 예약한 숙소도 바로 큐브하우스였다. 예약된 날짜로 전체 여행의 동선이 결정된 셈이다. 게스트하우스 치고는 가격이 꽤 비쌌지만, 나름 재미있는 경험일 것 같아 흔쾌히 결제했다. 숙박이 목적이니 만큼 느지막하게 로테르담에 도착해 체크인한 다음 아이의 바람대로 잠만 자고 아침 일찍 암스테르담으로 향할 계획이었다.

'밋밋한' 모양의 건물 찾아보기 힘든 로테르담

룩셈부르크에서 로테르담으로 가는 내내 비가 내렸다. 비 내리는 밤에 기차에서 내려 허겁지겁 숙소를 찾아가야하는 상황에서 로테르담 도심의 야경을 즐기는 건 사치였다. 잠시나마 멈춰 서서 큐브하우스의 독특한 외관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을 만큼 밖은 어두웠고, 빗줄기도 거셌다. 그나마 큐브하우스가 기차역과 손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여서 천만다행이었다.

건물의 일부를 개조해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고 있다는데, 좁고 불편할 뿐만 아니라 외풍 때문에 춥기까지 했다. 든든한 아침식사가 제공된다는 것과 독특한 생김새의 방에서 잠자는 경험을 해본다는 점만 빼면 이틀 이상 머물기에는 조금 난감한 곳이었다. 이튿날 숙소를 나오면서 아이도 꽤나 힘들었는지, 겉과 속이 너무나 달랐다면서 단박에 '판단 착오'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간밤 비가 그치고 맑게 갠 하늘을 드러낸 로테르담 도심 풍경은 지난밤의 불편함 쯤은 기꺼워 할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순간 다양한 장난감 블록을 곳곳에 세워놓은 거대한 놀이공원에 서 있는 듯한, 꼭 그런 느낌이었다. 큐브하우스 주변은 건축 박람회장을 방불케 했다. 초등학생의 스케치북에나 그려질 법한 기발한 형태의 건물들이 경쟁하듯 늘어서 있었다.

▲ 에라스무스 동상과 성로렌스 성당 로테르담 한복판에 자리한 성로렌스 성당 앞에 에라스무스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로테르담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 서부원
미술작품 관람하듯 멍하니 보노라면, 저런 곳에도 사람이 사는지, 대체 어떤 용도이고, 저들을 설계한 건축가는 누구인지 등 호기심이 끝도 없이 일어난다. 하나같이 익숙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밋밋한' 모양의 것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되레 우리나라의 건물들 중 아무거나 하나를 가져다 이곳에 세워놓으면 '독특한' 볼거리가 될 것만 같았다. 그 한가운데 자리한 수백 년 된 성당의 모습이 외려 데면데면할 정도다.

언뜻 도시가스나 수도의 배관 같기도 한 굵은 원통형 파이프로 건물 벽을 치장한 것도 있고, 뒤집어 세운 두툼한 연필 모양의 건물도 있다. 그곳에 달린 창문조차 뒤집힌 모양이라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런가 하면, 건너편에는 층이 올라갈수록 건물을 약간씩 뒤튼 꽈배기 건물도 있고, 멀쩡한 아파트의 꼭대기를 칼로 베어버린 듯 사선으로 잘린 건물도 보인다.

그러한 건물들에 에워싸여 혼자만 '멀쩡할' 수는 없었던지, 지난밤 우리가 내렸던 기차역조차 원반형 UFO 모양의 덮개를 씌워놓았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지, 지도나 표지판이 없다면 그곳이 역이라는 걸 알아내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거인이 이곳을 내려다본다면, 그 건물들 사이로 지나가는 노면전차마저도 태엽을 감아야 움직이는 장난감처럼 느껴질 것만 같다.

▲ 마르크트 홀 내부 모습 뒤집어놓은 U자형 건물 내에는 로테르담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술관 같은 주상복합건물로, 언뜻 박람회장을 연상시킨다.
ⓒ 서부원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U자를 뒤집어놓은 모양의 마르크트 홀이다. 모양으로만 보면 그리 낯설지는 않다. 같은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생각될 만큼 2012년 여수 엑스포 때 국제관으로 쓰인 건물과 형태가 유사하다. 다만 그곳이 간이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었다면, 둥글게 휘어진 이곳엔 실제 많은 주민들이 살고 있다.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고, 비스듬히 낸 창문은 여느 집들처럼 작은 화분 등으로 예쁘게 꾸며놓았다.

마르크트는 네덜란드어로 시장이라는 뜻이다. 독특한 건축 구조에다 안팎으로 세련된 디자인이 가미되다보니 고급 쇼핑몰로 여겨지기 쉬우나, 이곳은 로테르담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이다. 우리네 전통 시장처럼 업종별로 가게가 구획되어 있고, 요란하지는 않지만 호객꾼들의 모습도 더러 볼 수 있다. 특산품인 치즈부터 빵과 야채, 심지어 해산물까지 팔고, 지하에는 공산품을 파는 대형 마트와 주차장까지 갖춰져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해 교통이 편리한 탓인지 평일 낮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따금 카메라를 멘 몇몇 여행자들도 보였지만, 옷차림으로 보아 대개는 현지 주민들 같았다. 시장 구경을 하며 해산물로 점심식사를 했는데, 가격도 생각했던 것보다 저렴했다. 네덜란드에선 먹거리 중에 가장 싼 게 치즈 등 유제품이고, 가장 비싼 게 해산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터다.

재래시장이라기보다 백화점 같고, 주상복합 시설이라기보다 미술관 같은 마르크트 홀에 반해 로테르담의 다른 곳도 둘러보자고 계획을 급히 변경했다. 예정대로라면 점심은 암스테르담에 도착해서 먹기로 돼 있었다. 우선 노면전차 1일 이용권을 끊었다. 사실 1회권이 2.9유로이고, 1일 이용권이 7.5유로이니, 비싸긴 하지만 하루에 한두 번만 탈 게 아니라면 남는 장사다.

거미줄처럼 뻗은 노선을 따라 종일 로테르담을 유람했다. 암스테르담에서의 하루 일정을 이곳과 맞바꾼 셈이 됐지만,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시간이었다. 어느 거리, 어떤 건물 하나도 허투루 볼 곳은 없었다. 그저 걷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아이는 모든 건물에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면서, 장래희망을 건축가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로테르담에 반한 아이 "모든 건물에서 장인의 손길이 느껴져요"

▲ '유일한' 관광지, 에라스무스 다리 모든 여행안내서에 거의 '유일하게' 소개된 관광지인 에라스무스 다리의 원경. 그 뒤로 레고블록을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듯한 건물 등이 보인다.
ⓒ 서부원
▲ '지게' 빌딩의 모습 비스듬히 넘어질 듯한 건물을 가느다란 파이프 하나로 받쳐놓은 모습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 서부원
마음 가는 대로 노면전차에서 내려 걷다가 타기를 반복하다 보니 에라스무스 다리에 닿았다. 여행안내서마다 로테르담의 '유일한' 볼거리라며 소개한 곳이다. 이곳 로테르담 태생으로, <우신예찬>을 저술한 종교개혁가인 에라스무스의 이름을 땄는데, 강 사이에 놓인 예술작품이라고 불러야 어울릴 만큼 멋진 다리다. 비스듬히 누운 교각 하나가 상판 전체를 잡아당기며 지탱하는, 마치 요가 동작 같은 자세를 하고 있다.

에라스무스 다리는 그에 못지않은 '친구'들까지 주위에 거느리고 있다. 넘어질 듯 지지대를 세워 받치고 있는 건물은 흡사 우리네 지게를 연상케 하고, 거대한 네모 나무토막을 무심히 쌓아놓은 듯한 엽기적인 건물도 있다. 아예 건물에 차양을 만들기라도 하듯 수영장의 스프링보드 마냥 챙을 앞으로 뽑아놓은 것도 보인다. 이쯤 되면 멀쩡한 건물 가지고 장난을 쳤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성싶다.

▲ 로테르담 중앙역 건물 흡사 백상아리의 주둥이를 연상시키는 듯한 건물로, 로테르담 교통의 중심지다.
ⓒ 서부원
▲ '챙' 빌딩의 모습 옥상을 모자챙이나 수영장의 스프링보드처럼 빼놓은 모습을 한 빌딩도 곳곳에 세워져 있다.
ⓒ 서부원
어쩌다 로테르담이 이렇듯 '우스꽝스러운' 도시가 됐을까.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거의 폐허로 변했는데,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복구'가 아닌 '변신'을 선택한 결과라고 한다. 사라진 도시를 기억 속에서 지우고, 전혀 새로운 도시를 하나 만드는 실험적인 프로젝트였던 셈인데, 당시 내로라는 건축가들의 열정과 네덜란드의 국력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단다.

로테르담은 유럽의 여느 도시들처럼 빼어난 자연경관이나 유서 깊은 문화유적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네덜란드의 다른 곳 같으면 새뜻하다고 할 구시가 델프스 하벤이 되레 수백 년 된 전통마을처럼 느껴질 만큼 현대화된 곳이다. 그러나 옛 것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로테르담은 거리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볼거리가 무한정 '널브러져' 있다. 콘크리트의 자유분방한 변신을 보고 싶다면 단연 로테르담이다.

아무튼 큐브하우스에서 하루를 보내지 않았다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늦은 오후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중앙역을 찾았다. 가는 시간까지 로테르담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백상아리의 대가리를 닮은 중앙역은 주둥이를 벌린 채 여행자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막상 기차에 오르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루 더 머물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서다.

'건축 박람회장' 로테르담을 떠나며, 아이는 뜬금없이 네덜란드가 너무 부럽다고 말했다. 여행 전까지는 우리나라보다 국토 면적도 좁고, 그나마 30퍼센트 정도는 해수면보다 낮은 척박한 곳이라며 가엾게 여겼던 나라였다. 열악한 자연환경과 슬픈 역사를 기막히게 반전시킨 나라의 저력을 로테르담에서 봤다며 이렇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네덜란드가 키만 큰 나라는 아니었던 거야. 축구도 잘 하고, 사이클과 스케이트도 잘 타고,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나라라는 평가까지 받는다잖아. 이 조그만 나라에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도 많다며? 그러고 보면, 세상이 참 불공평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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