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기의 발빠른 승부수..유로존 은행 부실 떠안기 모험
◆ 위기차단 나선 ECB ◆
유로존 은행위기의 시발점이 됐던 도이체방크는 지난주 54억달러(약 6조5232억원) 규모 자사 채권을 시장에서 사들이기로 결정하면서 주가 폭락 사태를 진정시켰다. 문제는 기초체력이 약한 이탈리아·스페인 은행 등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ECB와 부실채권 매입 논의를 시작한 이탈리아 은행권 부실대출 규모는 2000억유로에 달한다. JP모건 자료를 보면 이탈리아 은행권의 무수익여신(NPL) 비율은 16.7%로, 유럽 평균 5.6%를 세 배나 웃돈다.
이처럼 부실 규모가 큰 은행들이 디폴트(채무상환 불능)에 빠지도록 놔두면 은행권 위기가 유로존 전체로 순식간에 확산될 수 있다. 이탈리아 은행만큼은 아니지만 마이너스 금리와 오랜 경기 침체 때문에 유로존 은행들의 수익성이 뚝 떨어지고 부실 규모도 커진 상태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추산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유로존 은행들의 부실대출 규모는 9320억유로(약 1조200억달러)로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의 9.2%에 해당할 정도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유럽 은행 자본 구조가 금융위기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화됐다"면서도 "일부 은행들은 여전히 부실채권 등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언급한 배경이다.
오랜 경기 침체와 저유가 한파가 몰고온 막대한 부실대출이 유로존 은행을 괴롭히는 악성질환이 된 지 오래다. 특히 이미 4개 은행이 파산 사태를 맞은 이탈리아에선 이들 은행이 발행한 금융채를 매입한 기관투자가들이 개인투자자들보다 더 큰 손실을 부담하면서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이다.
도이체방크 사태에서처럼 추가 위험 징후가 발생하면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채권 회수에 나서면서 도미노 유동성 위기가 일어날 개연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대로 놔뒀다간 결국 더 많은 구제금융을 제공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한 ECB가 은행권 부실채권 매입이라는 공격적인 은행 구제 카드를 미리 내놓은 이유다.
그렇다 치더라도 각국 정부도 아닌 ECB가 역내 민간은행 부실을 직접 떠안겠다고 선언한 것은 전무후무한 사례다. 드라기 총재가 이런 파격적 결정을 검토하게 된 배경은 이 같은 부실대출이 은행권 위기로 연결돼 은행 대출 여력을 옥죄고 결국 시중 자금 흐름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ECB 처방에 시장과 전문가들은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다. 무엇보다 거대 중앙은행인 ECB가 부실은행들의 연대보증을 서게 되는 격이어서 위축된 투자심리를 살릴 수 있다. 유동성 고갈에 직면한 이탈리아·스페인 등 중소 은행들은 부실채권을 담보로 돈을 빌려 부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또 지난해 3월부터 매월 600억유로어치 국채 등 각종 자산을 매입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ECB 양적완화 정책이 한정된 자산 매입 대상 때문에 경기 부양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부실채권으로 자산 매입 대상을 확대함에 따라 경기 부양 효과를 더 키울 수 있게 됐다.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 싱크탱크인 그레고리 클레이스는 15일 보고서에서 "ECB가 양적완화 규모를 늘리려 해도 매입 채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ECB가 내규를 수정해 자산 매입 대상을 확대할 것을 추천한다"고 밝혔다.
현재 ECB 자산 매입 프로그램 주 대상은 주요국 국채와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이다. 유로존 은행 부실채권 매입 외에 드라기 총재는 3월 정례회의 때 양적완화 규모 확대 등 추가적인 통화 완화 정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래리 엘리엇 가디언 경제담당 에디터는 '유로존 위기가 다시 끓어오른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결국 ECB가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의 부양책을 다음달 내놓지 않으면 위기가 다시 불붙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 가운데 유럽 일부 은행들은 다시 채권 발행에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네덜란드 은행인 ING와 스웨덴 노디어 은행이 이날 각각 선순위 무담보 은행 채권을 발행했다. 최근 유럽은행 건전성에 대한 염려가 높아진 상태에서 발행에 성공한 것이어서 관심이 쏠린다.
선순위 무담보채권은 은행들이 단기자금 시장 이외에서 차입을 위한 목적으로 발행하지만 유로존 재정위기 이후 발행 규모가 크게 줄었다. 코코본드(우발 전환사채) 등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높으나 금리가 높은 채권 발행이 늘어난 것도 발행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다.
[이지용 기자 / 이덕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이주열 "내수-수출 모두 미약..금리인하 여력 있다"
- '남부회랑' 길목 캄보디아..메콩경제권 노리는 韓에 '키'
- LED조명기업 삼진엘앤디, 눈부심 없는 천장등 '시리우스' 美·日 홀리다
- [코스트 제로] 기업 비용절감 3가지 성공비법
- [중기 Info] 수입산 공세로 매출 뚝뚝..FTA 피해 노크하세요
- 강경준, 상간남 피소…사랑꾼 이미지 타격 [MK픽] - 스타투데이
- AI가 실시간으로 가격도 바꾼다…아마존·우버 성공 뒤엔 ‘다이내믹 프라이싱’
- 서예지, 12월 29일 데뷔 11년 만에 첫 단독 팬미팅 개최 [공식] - MK스포츠
- 이찬원, 이태원 참사에 "노래 못해요" 했다가 봉변 당했다 - 스타투데이
- 양희은·양희경 자매, 오늘(4일) 모친상 - 스타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