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동네 만들려면 편하고 많이 걷게 설계해야"
[경향신문] ㆍ박소현 교수, 두 제자와 함께 ‘동네 걷기 동네 계획’ 펴내
걷기가 유행인 시대다. 걷기 열풍이야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도시에서 걷기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서울에서 요즘 뜬다 하는 곳은 북촌, 서촌, 경리단길, 홍대 앞 등 걷기 편한 오래된 동네들이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골목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도시계획가인 제프 스펙은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에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 방법은 ‘걸어다닐 수 있음’, 즉 ‘워커빌리티(Walkability)’”라고 했다.
걷기 좋은 도시란 어떤 곳일까. 박소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55)는 ‘동네’로 눈을 돌렸다. 걷기 좋은 도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서울의 북촌·상계, 경기 분당·일산 등의 30~40대 주부들에게 위성항법장치(GPS)를 부착한 후 실제 걷기 데이터를 분석했다. 서울대 도시설계 협동과정 박사인 두 제자와 함께 연구결과를 묶은 <동네 걷기 동네 계획>(공간서가)을 펴낸 박 교수를 최근 그의 집에서 만났다. 2004년부터 서울대에서 도시·도시설계 분야 강의를 맡고 있는 박 교수는 미국 콜로라도대 건축도시대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시 도시계획위원이기도 한 그의 관심분야는 도시보존이다.
박소현 교수는 “동네 설계는 지역 특성과 주민의 성향을 파악해 건축과 육아·보건복지 등 여러 분야의 협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
“2004년 서울에 왔는데 도시건축이 ‘도시’라는 담론에 갇혀 일상과 괴리가 좀 있더군요. 도시환경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려면 데이터를 구축해 실증적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걷기에 주목한 이유는 많이 걷게 되는 곳이 살기 좋은 동네라는 생각에서였지요.”
박 교수는 “전업주부를 대상으로 삼은 것은 동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단이기 때문”이라며 “주부들이 ‘걷기 편한 동네’는 다른 세대 집단에서도 비슷한 속성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전업주부의 일상을 따라가 봤더니 의외의 결과도 나왔다. 박 교수는 “주부들이 대형마트만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동네 가게에서도 물건을 구입하더라”면서 “학교, 공원, 상가 등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지역공동체 문화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살기 좋은 동네’란 아이 학교 데려다주는 길에 맛있는 것도 사먹고, 장도 보고, 단골 찻집에서 이웃과 만나 수다도 떨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네 걷기’ 환경에 대한 관심은 미국 부동산업체들이 ‘워크스코어(도보환경점수·Walk Score)’를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워크스코어’라는 사이트는 상점 등 편의시설 접근성, 주거지역과의 거리 등을 계산해 얼마나 걷기 편한 동네인지를 0~100점의 점수로 환산해 알려준다. 워크스코어 88점으로 1위를 차지한 뉴욕의 경우 7000여개의 식료품점이 있고, 시민의 71%가 걸어서 5분 안에 접근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살기 좋은 동네를 설계하기 위해 고령화 사회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선 노인들이 가까운 데서 생필품을 구할 수 없는 ‘쇼핑난민’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며 “노인 세대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쇼핑난민이 되지 않고 걸어서 생활이 가능하도록 동네 설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 은퇴 후 동네에서 보내야 할 시간이 많아지잖아요. 가족에게만 의지할 수 없으니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해요. 위기상황이 오면 이웃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도와줄 수도 있어야 하거든요.”
<이명희 기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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