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전이 아니라 농업인 행복지수 높여줄 생명창고죠"

2016. 2. 14.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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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전남 장성 ‘쌀의 집’ 김수공 대표

‘쌀의 집’ 김수공 대표

‘쌀의 집’은 싸전이 전혀 아니다. 민간 공부방이자 시험포여서 아는 이가 많지 않다. 하지만 누가 보든 말든 20여종의 친환경 볍씨를 보급하고, 한 달에 세 차례 소식지 ‘농민의 행복을 찾아서’를 발행해왔던 이 집의 전통은 20년 넘게 굳건히 계승되고 있다. 지난 12일 전남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 쌀의 집을 찾았다. 농촌마을 고샅 한가운데 단아하게 자리잡고 있다. 김수공(61) 대표가 반갑게 맞는다. 그는 단층 패널로 지어진 63㎡ 규모의 쌀의 집 안으로 이끌었다. 1992년 귀향한 뒤 2001년 직접 이 집을 지은 ‘쌀의 문익점’ 김재식 전 전남도지사의 체취가 곳곳에서 풍겨졌다. 한쪽 벽면에는 일본에서 종자를 들여와 재배한 ‘흑진주’, ‘푸른쌀’ 등 벼 표본 20여종이 거꾸로 매달려 전시돼 있고, 표본종에서 각각 채취한 볍씨와 쌀알이 유리상자에 담겨 있다. 맞은편 서가에는 <현대농업><농업신문>등 일본 자료들도 가득했다.

1992년 김재식 전 전남지사 ‘시작’
친환경볍씨 보급·소식지 발간 등
94살 고령 노환으로 후계 부탁



75년부터 38년 근무한 ‘정통 농협맨’
장성 출신으로 20여년 각별한 인연
“여생바쳐 ‘농촌 사랑’ 돌려드릴 터”

김 대표는 지난달 23일 쌀의 집 운영을 넘겨받았다. 서울의 한 회계법인에 근무중인 그는 올해 94살로 노환이 깊어 입원중인 김 전 지사의 간곡한 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후계자’가 된 그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친환경 쌀농사에 일찍이 눈뜨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던 개방적 사고와 단호한 결단을 닮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94년 농협 전남도지부에 근무하던 시절 김 전 지사를 처음 만났다. 고향인 장성 삼서농협에서 신품종 볍씨를 재배하는 작목반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아갔다가 ‘농촌 사랑’에 깊이 공감했다. 이후 진도 지부장을 지내며 김 전 지사의 도움으로 진도지역에 검은 쌀을 보급했고, 장성 지부장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후원자가 됐다.

특히 97년 김 전 지사가 재배한 친환경 브랜드쌀을 판매하는 아이디어를 내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백화점은 제일 좋은 물건을 파는 곳이었다. 이에 착안해 백화점에 근무하는 친구와 궁리했다. 10㎏ 쌀 한 포대를 시중값의 1.5배인 2만7000원에 팔았다. 고가전략이 맞아떨어져 날개 돋친 듯 팔리며 판로가 활짝 열렸다.” 그는 그때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교훈을 얻었고 소비자의 새로운 요구를 알아차렸다. 그 감격을 잊을 수 없어 쌀포장지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그는 농협 구례교육원장이던 2009년 쌀의 집을 인수하기로 이미 약속을 했다. “김 전 지사는 국회의원·전남지사 등 화려한 경력에도 미련 없이 농민의 품 안에 안겼다. ‘농촌을 행복하게 만들자’는 열정이 대단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소비자단체에서 최우수쌀로 뽑힌 ‘해남 한눈에 반한쌀’, ‘장성 자운영쌀’, ‘함평 나비쌀’ 등을 보급하는 업적을 이뤘다. 그분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운영 방향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그는 “전에는 한 톨이 아쉬웠던 쌀이 이제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달라진 시대 상황에 맞게 운영 방향을 생산에서 판매로 바꾸겠다. 앞으로 제값을 받고 전량을 파는 쪽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고 했다.

쌀소비 촉진운동을 시작하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농업과 유통 분야 전문가들한테 재능기부를 받아 ‘생명창고’인 농업을 지키는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친다는 구상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교육하고 조직한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확신한다.

그는 75년 농협 강진지부에서 시작해 중앙회 공판지원부장·기업고객본부장, 농협경제지주 대표 등을 지내며 38년 동안 근무했다. ‘한국 농업의 하버드대’로 불리는 농협대를 졸업하고 5천여명 총동문회의 회장도 지내 인맥이 두텁다. “농협대 동문들을 비롯한 농업 전문가들을 방방곡곡으로 찾아다닐 계획이다. 기금을 모으고, 협동이상촌회사를 설립하자는 제안도 해볼 참이다. 중국 수출 판로 개척 등 쌀소비 촉진운동을 농업 회생의 출발점으로 삼고 싶다.”

김 대표는 내년말까지 서울 생활을 정리한 뒤 쌀의 집 운영에 전념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지금껏 받기만 해온 사랑을 이제는 농촌에 돌려드릴 때가 됐다. 쌀의 집이 농업인의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산소 같은 구실을 하도록 여생을 바치겠다.”

장성/글·사진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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