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살 옛영사관 문을 열면 과거가 펼쳐진다

2016. 2. 1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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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술관이 된 구벨기에영사관’전

구한말·일제 때 최고 근대건축물
옛모습 복원해 건물역사·사진 전시
사당·남현동 기억담은 미술품도

‘미술관이 된 구벨기에영사관전’이 마련된 남서울생활미술관. 도판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이 건물의 나이는 111살이나 되지만,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다. 퇴근길 한잔 골목으로 유명한 서울 사당역 거리에서 남현동 언덕길을 올라가면 불현듯 나타나는 2층짜리 벽돌양옥집, 옛 벨기에영사관이다.

이 벽돌집은 을사늑약이 강제체결된 1905년 서울 남산 기슭 회현동(현 우리은행 본점 터)에 벨기에 영사 레옹 뱅카르의 집무 공간으로 들어섰다가 1982년 도심 재개발로 남현동에 쫓겨가듯 옮겨졌다. 2004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으로 쓰였지만, 존재감은 별로 없었던 건물인데, 최근 들어 미술판의 눈길이 부쩍 쏠리는 것이 이채롭다. 서울시립미술관이 2013년 생활미술관으로 특화시키면서 시작한 원형 복원작업을 마치고 연말부터 건물 자체를 주인공 삼은 전시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이 된 구벨기에영사관’이란 제목의 이 전시는 건축사 전문가, 현대미술 작가들과 함께 준비한 독특한 근현대사 프로젝트다. 미술관 쪽은 2004년 개관 당시 백색 가벽으로 가렸던 원래 기둥과 벽난로 등 특유의 옛 얼개들을 2년여 공사를 거쳐 되살렸고, 복원된 공간에 사당동 일대의 기억과 감성을 다룬 젊은 작가들의 미술품들을 놓아 과거, 현재가 넘나드는 역사예술 난장을 만들어냈다.

높이 2m 넘는 장중한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1층 복도 왼쪽의 건축사 전시장을 먼저 보게 된다. 코린트양식의 기둥장식과 지금은 변형된 2층 지붕의 나무틀 원형 구조, 서양식 벽난로 등을 배경으로 파란만장한 건물 역사에 얽힌 자료와 사진들이 관객을 맞는다.

옛 벨기에영사관의 서양식 기둥장식과 원래의 지붕구조물, 건축 관련 자료들을 담은 진열장이 보인다. 도판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벨기에는 1900년 대한제국과 10번째로 수교한 중립국이다. 러일전쟁 직전 중립국을 선포한 대한제국 처지에서는 소중한 외교 동반자였다. 당시 국왕 레오폴드 2세가 선호한, 열주가 늘어선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이 영사관 또한 크기는 작아도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경성우편국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근대건축물로 꼽히며 회현동 근대거리를 빛냈던 명작이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으로 영사관은 1918년 문을 닫고, 그 뒤 기생조합, 군사시설, 기업체 사옥 등으로 쓰이다 82년 송두리째 뜯겨 연고도 없는 강남으로 이전당하는 비운을 겪는다. 건물의 세부 곳곳을 포착한 사진과 이축 관련 문서, 연표들에서 쓰라린 내력을 돌아볼 수 있다. 특히 한국전쟁 직후 불타 앙상한 경성우편국 위편에 아담한 앞뜰을 둔 회현동 옛 영사관 자태를 찍은 풍경 사진이 눈에 감긴다. 이축 복원 때 나온 바로크풍의 역동적 무늬가 있는 건축 부재 등도 지난 시절 영화를 증언하고 있다.

2층에서는 김상돈, 노상호, 임흥순, 장화진, 허산 작가와 남서울예술인마을의 작가 그룹이 미술관의 역사성과 주변 사당동, 남현동의 다층적인 공간 성격 등을 반영한 회화, 조각, 영상, 사진, 설치 등을 선보이는 중이다. 지난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받은 임흥순 작가의 영상설치물 ‘노스탤지어’를 주목할 만하다. 삐걱거리는 건물의 마룻바닥 소리와 복원 공사 때의 소음 등이 건물 바닥을 물걸레질하는 천장의 영상, 난롯가의 서양 명화 복제품 이미지들과 얽히면서 이 건물에 깃든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들을 떠올리게 한다. 21일까지. (02)2124-8928.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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