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타지니의 실패, 이대호는 다를까

2016. 2. 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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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활약, 유형, 계약 과정도 흡사

페타지니는 실패, 이대호는 다를까

[OSEN=김태우 기자] 이대호(34)와 시애틀의 계약 소식이 알려지자 현지에서는 그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한 선수를 떠올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활약해 낯이 익은 로베르토 페타지니(45)가 그 주인공이다.

이대호를 두고 페타지니를 떠올리는 것은 여러모로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다. 한·일 무대에서 모두 특급으로 이름을 날렸고, 주 포지션이 1루수 혹은 지명타자이며, 전형적인 대포 유형의 선수이기보다는 선구안과 타격 기술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비슷한 나이에 시애틀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는 공통점까지 추가됐다.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1994년 메이저리그(MLB) 무대에 승격한 페타지니는 1998년까지 네 팀을 거쳤다. 그러나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상황에서 1999년 야쿠르트와 계약을 맺고 일본무대에 진출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에서는 특급 활약이었다. 두 차례나 홈런왕(1999·2001)을 차지했다. 일본 무대 6년 동안 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하나로 손꼽혔다.

그런 페타지니는 2005년 보스턴과 계약을 맺고 다시 MLB 문을 두들겼다. 그러나 MLB 18경기에 뛴 뒤 1년 만에 방출됐다. 그런 페타지니의 손을 마지막으로 잡은 팀이 시애틀이었다. 스프링캠프가 열리기 직전 페타지니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2005년 마이너리그에서 낸 성적을 높게 샀다. 시애틀과의 계약 과정, 그리고 당시 처한 사정은 이대호와 흡사하다고도 볼 수 있다. 나이도 만 34세로 지금의 이대호와 같다.

그러나 페타지니는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스프링캠프에서 살아남았으나 2006년 MLB 무대에서는 31경기에서 단 27타석만을 소화했다. 포지션 경쟁에서 밀렸고 간혹 우완 상대 대타로 경기에 나설 뿐이었다. 성적은 타율 1할8푼5리, 출루율 3할1푼3리, 1홈런, 2타점이었다. 결국 8월에 방출의 쓴맛을 봤다. 페타지니는 시애틀에서 방출된 뒤 아시아 무대(LG, 소프트뱅크)에 뛰다 은퇴했다.

‘마이너 계약’이라는 첫 출발이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애당초 기대가 크지 않았다. 1루에는 간판선수 중 하나였던 리치 섹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명타자가 그나마 해볼 만한 경쟁이었지만 시애틀은 역시 왼손 타자였던 칼 에버렛을 더 중용했다. 에버렛의 성적이 추락하자 트레이드를 통해 다른 선수들을 데려오기도 했다. 페타지니는 2순위는커녕, 3순위도 아니었다. 기량을 증명할 기회조차 제한적이었다.

페타지니의 사례는 이대호의 앞길이 그렇게 평탄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해준다. 내셔널리그의 한 스카우트는 “일본에서의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판단하는 잣대로 쓸 것은 확실한데, 그런 기준에서 볼 때 이대호의 나이는 너무 많을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이대호는 피가 마르겠지만 시애틀로서는 잃을 것이 전혀 없는 계약이다”라는 말에서는 냉정한 현실이 느껴진다.

설사 스프링캠프에서 가장 큰 경쟁자로 간주되는 헤수스 몬테로를 제친다고 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시애틀은 아담 린드를 1루수로 굳게 믿고 있다. 때문에 이대호는 시즌 초반 왼손 투수 전용으로 활용될 공산이 크다. 출전 시간이 들쭉날쭉하면 타격감 유지는 힘들다. 페타지니는 그런 한계를 이겨내지 못했다. 우완을 상대로도 타율 2할에 그쳤고 구단은 미련 없이 방출했다. 이대호는 페타지니가 겪었던 고난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이를 확인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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