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충, 똥꼬충.. 2016년, 대한민국에서 혐오표현은 어떻게 일상화되었나

정용인 기자 입력 2016. 2. 1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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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00년대 이후 보수·뉴라이트·기독교 우파 등이 ‘종북’을 키워드로 결집
지난해 6월 9일 서울광장에서 샬롬선교회, 전국학부모연합, 건강사회를 위한 국민연대 등 동성애에 반대하는 단체 회원들이 동성애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아직까지 세월호냐.” 설 연휴에 한 뉴스 보도에 달린 포털 댓글이다. ‘그날 이후 두 번째 맞는 설,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화문에서 합동차례를 했다’는 보도다. 이 기사에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다음과 같다. “참 나, 그렇게 따지면 천안함은 6주기이고 연평해전은 14주기다. 그런 것은 안 쓰냐 기자놈아.”

“자기 자식이 죽었어도 이런 댓글을 달까”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댓글들의 주장은 거침이 없다. “돈 벌어먹기 좋은 단어 ‘세월호’”, “감성팔이 징징대는 기사”, “유가족들이 8억은 너무 적다고 생각하는 모양” 등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자리 잡았던 서울시청 옆 금세기빌딩 앞.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서명운동 책상 옆에는 이렇게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박원순 시장님, 저희 어린 자녀들을 보호해주세요!! 서울광장 동성애 축제를 학부모들은 반대합니다.” 구호 밑에는 거의 전라(全裸)의 남성사진이 붙어 있고, 위로는 빨간색으로 X 표시가 되어 있다. 서명운동 주최는 ‘차세대바로세우기 학부모연합’이라는 단체다.

세월호 유족들이 8억원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지난해 4월 2일 주요 언론들은 ‘세월호 배·보상 학생 1인당 8억2000만원’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유족들이 참여하지 않은 일방적인 배·보상 기준에다 국민성금(3억원)에 여행자보험금(1억원)을 더해 발표한 액수다. 당시 “배·보상액이 부풀려졌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언론에서 총지급액을 말해달라는 요구가 많아 취합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유족들은 “배상금이 아니라 진상규명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반발했다. 지난해 9월 30일 마감한 배·보상 신청에 희생자 111명의 유족과 20명의 생존자는 접수하지 않았다. 일베를 비롯해 뉴스댓글 등에서 세월호 유족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유족충’ 등의 비하어로 공공연하게 지칭하고 있다.

‘차세대바로세우기 학부모연합’의 서명운동도 마찬가지다.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 폐막식이 열린 것은 지난해 6월 28일이었다. ‘시민들의 통행과 차량 소통에 지속적인 불편을 줄 우려’를 이유로 경찰로부터 ‘옥외집회 금지 통고’를 받았던 퍼레이드는 우여곡절 끝에 열렸다. 행사에 반대하는 기독교단체들은 이들에 앞서 집회신고를 내는 한편 행사가 열렸던 장소 인근에서 맞불집회를 열었지만, 큰 충돌 없이 행사는 마무리됐다.

퀴어문화축제는 매년 6월 말 진행된다. 행사가 끝났는데도 서명운동을 계속하는 것은 앞으로는 이런 행사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뜻일까. 당시 <주간경향> 취재에서 맞불집회를 기획한 ‘탈동성애인권연대’의 이요나 목사(서울 갈보리채플교회)는 “자기들끼리 옥내에서 벗고 놀거나 하는 것에 대해 뭐라 할 생각은 없다”며 “거리에서 벌거벗고 하는 쇼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이고 비윤리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동성애 문제를 인권문제로 다뤄선 안 된다. 동성애를 인권으로 다루면 수간(獸姦)도 인정해달라고 할 수 있고, 소아성애자도 자신들은 소수자라고 주장할 수 있다. 동성애는 불륜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적 약자라고 주장하는데, 무슨 약자가 세계적인 대회를 여느냐. 장애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동성애는 죄다.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인권이다.”

동성애 반대단체들에 맞서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들이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세월호 유족들에게 ‘유족충’이라는 비하어가 붙었다면 성적 소수자들에 대해 비난하는 대표적인 단어는 ‘똥꼬충’이다. 검색엔진 구글에서 ‘유족충’과 ‘똥꼬충’을 검색하면 각각 9만7500개, 36만4000개의 검색 결과가 나온다.

문제는 이런 혐오표현이 공론장이나 공적인 영역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력저지’는 실제 입법현장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벌써 4년째 표류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 대표적이다. 2007년 이후 유엔여성차별철폐·인종차별철폐·사회권규약·아동권리위원회 등이 지속적으로 한국에 차별금지 법제 마련을 권고해 왔다. 그리고 2012년 10월, 유엔인권이사회가 대한민국에 대한 2차 국가별 정례 인권검토 심의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를 냈다.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는 17대 때부터 있었지만 번번이 좌절돼 왔다. 19대 국회에서도 3개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이 추진되었으나 이들 중 2개 법안은 2013년 4월 24일 철회되었다. 현재까지 상정·계류 중인 법안은 2012년 11월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 등 10여명이 발의한 법안이지만 현재까지 소관위 심사 상태에 머무르고 있어 19대 회기 만료에 따라 자동폐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월 28일 서울대. “이 토론회는 불가피하게 짜증나는 내용이 기다리고 있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의 말이다. 그가 ‘불가피하게 짜증나는 내용’이라고 일컬은 것은 바로 ‘혐오표현’이다. ‘혐오표현의 실태와 대책’이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는 서울대 인권센터와 혐오표현연구모임이 주최한 행사였다.

김 소장은 “혐오의 배후에 있는 권력관계나 차별구조를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세월호 유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어버이연합 사람들이 동원되었다고 말할 때 이른바 배후가 있어 돈을 줘서 반대급부로 동원되었다는 협의의 개념이 아니라 이념적으로 스스로 옳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일부 개신교의 혐오 선동은 기독교의 신앙원리에서 비롯한다기보다 기득권화된 교회의 권력욕망, 세속교회 권력의 차별구조가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김 소장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혐오발언이 ‘증오선동’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는 데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라는 사명을 방기하고 있는 국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사회적 싸움을 마치 기득권을 둘러싼 이해자들 사이의 싸움처럼 보고 마치 자신들이 중재자나 중립자연하면서 숨는다는 것이다. 유엔에서 특별히 성소수자를 사회적 약자로 분명히 규정하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는데도 법무부가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설 수 없다’고 답하는 것은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 맥락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현상적으로는 국가가 사안에 대해 중립자인 체하지만, 실상은 기득권층의 적극적 보호막 역할을 한다는 것이 김 소장의 주장이다.

“문제의 핵심엔 그런 ‘혐오표현’을 정치적으로 용인하는 최근의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네트워크 팀장의 말이다. 과거에는 혐오의 대상이 이상하거나 미개하다고 여겼다면 2000년대 이후에 나타난 혐오표현의 양상은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고 소수자 지위를 이용해 특권화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상은 종북, 전라도인, 장애인, 이주민, 여성과 성적소수자다. 그렇다면 그 주체는 누구일까. 나 팀장은 “보수우익과 뉴라이트, 개신교 우파, 일베가 각각 다른 맥락을 가지면서도 특정한 정치성향과 인식을 공유하면서 혐오를 선동해 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의 혐오선동 논리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종북‘으로 모아진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1월 28일 서울대 인권법센터·혐오표현연구모임이 주최한 ‘혐오표현의 실태와 대책’ 토론회. / 정용인 기자

지난해 퀴어퍼레이드·서울시민인권헌장 반대운동에 등장한 ’종북게이‘라는 표현이 단적인 사례다. “동성애자와 좌파가 연합한 종북세력이 ’교회파괴-가정해체-사회분열-국가전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주장이 바로 이런 혐오지형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 팀장은 “지금의 혐오에서 제일 우려스러운 것은 대상에 대한 혐오를 넘어서 소수자가 의당 가져야 할 권리 자체가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더 큰 문제는 그런 혐오를 권력이 보장해주고, 그런 기득권 방어를 위한 여러 혐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새누리당 정치인이 건전한 커뮤니티 사이트라며 일베를 옹호한 것과 신은미·황선씨의 통일콘서트에 대한 테러를 안중근 열사 등에 비유하며 치켜세우는 일각의 흐름이 대표적이라는 지적이다.

사실 혐오발언이나 증오선동에 대한 국내 연구는 아직 척박한 단계다.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나온 재특회의 ’혐오발언‘에 대해 ’헤이트스피치‘로 개념 규정을 하며 다양한 모임과 토론회, 단행본 발행 등의 작업을 통해 관련 대응논리와 이론을 개발하고 실태조사 연구가 진행되어온 일본과 비교해봐도 국내 연구는 많지 않다. 서울대 인권법센터와 함께 토론회를 주최하며 혐오표현연구모임을 주도했던 문경란 전 서울시 인권위원장은 “서울인권헌장이 좌절된 이후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혐오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연구모임을 제안하게 됐다”며 “의외로 관련 선행연구나 실태조사 같은 것이 별로 존재하지 않았고, 국제인권규범의 적용 맥락에 대해서도 논의된 것이 별로 없어서 현재까지의 상황 및 실태를 정리하는 토론회를 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단적인 예가 혐오발언을 어느 선에서 규제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당장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원칙과 상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는 “혐오표현에 대한 일정한 국가 개입은 필요하지만 여전히 ’사상의 자유시장‘에 의한 해결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입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며 “형사처벌로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것보다는 예컨대 인권위원회와 같은 차별 시정기구가 주도하는 해결책이 더 나은 방법이며, 아울러 국가나 시민사회의 역할도 금지하는 방식보다는 혐오표현의 피해자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희망을 만드는 법‘의 류민희 변호사는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를 제로섬으로 볼 것이 아니라 평등권이 만나는 장이 될 필요가 있다”며 “혐오표현 대응에 있어서도 시민사회 중심의 대응, 예컨대 미국 남부빈곤법률센터가 매년 백인 인종우월주의 선동단체들을 일정한 기준에 의해 선정, 헤이트맵(hate map), 헤이트워치(hate watch)와 같은 사이트를 운영하는데, 그런 식의 활동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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