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생 에너지도 호락치 않네.. 자원빈국의 딜레마

전병역 기자 2016. 2. 1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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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석유 나지 않는 나라의 운명’ 좁은 국토로 태양광·풍력 발전 효율도 떨어져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 한국인들 귀에 못이 박힌 말이다. 이는 우리에게 늘 집단 콤플렉스였다. 머리라도 굴려서 ‘우리도 잘살아 보세!’를 외쳐야 했던 자원빈국에는 원죄 같은 거다. 혹자는 말한다. 세계가 신재생 에너지 시대를 여는 이때가 한국으로서는 기회라고…. 햇빛, 바람, 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인식에서 우리도 희망을 품곤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재생 에너지 또한 한국은 불리한 처지다. 차라리 세계 최고 수준의 석유 정제시설이나 화학공장, 원자력발전소 건설기술 같은 걸 일궈낸 현재가 우리에게 낫다. 이제 겨우 먹고살 만해졌더니 화석연료를 최소화하자고 세계가 또 요구한다. ‘사다리 걷어차기’다. 에너지 대전환기에도 우리 앞에는 몇 가지 ‘불편한 진실’이 놓여 있다.

경북 영양군 맹동산에 설치된 풍력 발전기들. 국토가 좁은 한국은 환경 보호를 위해 자연을 해쳐야 하는 딜레마가 있다. / 정지윤 기자

독일 같은 나라는 이미 원자력보다 풍력발전 단가가 더 싸다. 우리도 그냥 그쪽으로 따라가면 될까? 신재생 에너지도 한반도 땅 크기가 또 발목을 잡는다. 산업통상자원부 신재생에너지 담당자는 “우리는 국토가 좁아 태양광, 풍력 발전도 단위면적 대비 효율이 떨어진다”며 “그나마 70%는 산지여서 비용이 커지는 등 제약이 많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땅 크기 못잖게 햇빛의 정도, 바람의 속도 같은 품질 면에서도 경쟁력이 높지 않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예컨대 1GW(기가와트=1000메가와트)급 원전은 하루 24시간 가동하고, 수리 등을 제외해도 1년에 90% 이상 돌아간다. 석탄발전소도 80% 이상 가동된다. 반면 1GW를 태양광으로 발전하려면 축구장 1만5000개, 즉 여의도 12개를 더한 면적이 필요하다는 게 산업부의 계산이다. 원전 하나는 여의도 6분의 1 크기여서 태양광발전은 72배나 더 넓은 땅을 차지한단다. 서울시내 정수장처럼 자투리 땅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지만 한계가 있다. 만만한 게 옥상인데 이마저도 건물 사이 햇빛 간섭이 생겨 마음껏 늘리지도 못한다. 풍력발전은 땅이 더 필요하다. 바람개비 날개 사이에 간섭을 피하려면 일정한 공간(이격거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산업부 당국자는 “대개 3MW(메가와트=1000킬로와트) 풍력발전기를 설치한다면 1GW 원전을 대체하는 데 여의도 91배의 땅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우리에게는 3면에 바다가 있지 않냐고? 일단 육상에 비해 해상 풍력발전은 건립비가 더 들어 경제성이 떨어진다. 어업권 피해 등 민원도 많아 사회적 비용도 든다. 환경이고 뭐고 세계에서 욕먹더라도 원전을 최대한 돌리고, 석탄·천연가스를 마구 때는 방식이 경제적으로는 유리한 게 지금의 우리 처지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 식대로 살 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뒤늦게 정신 차려 세계 대열에 동참한다지만 한국의 성적표는 미미하다. 최근 5년 동안 1차 에너지 중에서 신재생 에너지 비중은 고작 1.8% 수준이다. 속내를 보면 더 갑갑하다. 태양광은 4.7%, 풍력은 2.1%뿐이고, 바이오매스가 24.5%다. 나머지는 쓰레기 소각, 폐기물 가스 등을 활용한 것들이다. 바이오 에탄올 같은 바이오 매스도 유럽연합은 2020년까지 수송용에 10% 첨가를 목표로 하지만 한국은 현재 2.5%에서 2018년 3%를 계획하고 있다. 팜유, 대두유는 모두 수입해오며 그나마 폐식용유(2014년 42.8% 차지)를 활용한다. 바이오연료도 옥수수나 사탕수수가 풍부한 미국, 브라질 같은 농업대국에나 유리할 뿐 우리 얘기는 아니다.

결국 한국 사회는 전통의 화석연료에 매달리고 있고, 의존도가 커졌다. 한국은 2014년 국민 1인당 석탄 소비량이 2.29tce(석탄 1톤이 내는 열량을 환산한 단위)로 세계 5위라고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집계했다. 최대 석탄 소비국 중국과 미국보다 높다. 비슷한 자원빈국인 일본(1.30tce)보다도 월등히 높다. 석탄 없는 사회를 표방한 유럽연합 평균치보다 3배 이상이다. 한국은 절대량에서도 지난해 기준 중국, 인도, 일본에 이은 세계 4위 석탄 수입국이다. 특히 한국은 1인당 석탄 소비량이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반대로 가고 있다.

정부는 2023년까지 현재의 66% 수준인 총 1만8144MW 규모의 석탄발전소를 건설키로 했다가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계기로 부랴부랴 수정했다. 그러나 2029년까지 원전 2기 추가 건설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 한국의 원전 의존 비중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고, 신재생 에너지 비중은 최하위권인 82위다. 그동안 탄소 배출은 도외시한 채 비용 위주로 계산하다 보니 답은 석탄 과소비와 원전이었다. 국내 원자력발전 단가는 석탄(60원)보다 낮은 kWh당 50원 수준으로 과소평가돼 있다는 비판도 많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에너지총조사를 보면 2001~2010년 제조업 평균 64%의 전기 소비량이 늘어났다. 특히 가열·건조용 전기 소비가 약 4배나 급증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뭔가. 석탄·가스 등을 때서 얻은 열에너지를 전기로 만들고, 송전한 뒤 다시 열을 얻기 위해 에너지를 썼다는 뜻이다. 그냥 열을 내려면 1차 에너지를 써도 되는데, ‘뻘짓거리’를 한 셈이다. 심야전기를 활용키 위해 정부가 방조한 전기온열기 등을 이용한 난방 증가도 그렇다.

2014년 말 기준 국내 에너지 흐름을 살펴보면, 1차 에너지 100을 공급해 최종 에너지 74.9를 얻고, 25.1은 전환·손실이 나는 구조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은 “열에너지를 100%로 보면 전기를 얻는 데 40% 정도만 전환된다”며 “전기난방 확대는 비효율 정책이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국내 석탄 소비의 60%가 발전에 쓰였다. 앞으로 전기차까지 늘어나게 된다.

왜 전기를 쓸까. 일단 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싸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IEA와 한국전력공사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전기료는 OECD에서 값싼 순서로 3∼4위 수준이다. 2014년 2분기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OECD 국가에서 네 번째로 싸다. 독일과 일본은 한국보다 77%와 83%씩이나 비싼데도 국내 기업들은 틈만 나면 전기료가 비싸다는 여론몰이를 해댄다. 특히 한국은 가스나 기름에 비해 산업용 전기료가 크게 낮은 국가다. OECD의 산업용 에너지 가격(TOE당 달러)을 비교하면 2011년 일본은 2081.8달러, 유럽연합은 1746.4달러인 데 비해 한국은 897.3달러로 정반대다. IEA 집계 결과 한국의 주택용 전력요금과 산업용 전력요금 차이는 22%로 집계됐다. OECD 회원국의 주택용과 산업용 요금 차이는 평균 29%다. 미국은 44%, 독일은 56%, 노르웨이는 58%, 프랑스는 34%씩 차이가 난다.

가정용 전기요금도 OECD에서 멕시코와 노르웨이에 이어 세 번째로 싸다. 한국이 100이라면 일본은 280, 영국은 240, 미국은 140이다. OECD 평균은 188이다. kWh당 가정용 전기료가 한국은 평균 120원이지만 독일은 350~360원 정도다. 월 250kWh를 소비한 가정이라면 한국은 기본료(1600원), 부가가치세 등을 더해 3만3710원이 나온다. 반면 독일은 단순계산으로만 8만7500원으로 한국보다 2.6배 정도 비싸다. 한국은 2013년 OECD 국가 중 1인당 전기 소비량에서 1위 미국(1만3227kwh)에 이어 2위로 1만162kwh를 기록했다. 3위 일본 7847kwh와의 차이도 크다.

한마디로 1차 에너지의 95.8%인 129억6000만 달러어치를 수입하는 한국 사회가 전기료는 세계에서 가장 싸게 펑펑 써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산업 경쟁력 저하’ ‘서민 보호’라는 미명 아래 모두 공범이 됐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장은 “모순되게 책정된 전기료가 잘못된 산업구조를 이끌어내고 있다”며 “국내외 석탄발전소 건설에 정부 차원의 금융지원부터 끊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업계는 물론 개인의 삶도 기존 습관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는 배려하지 않는다. ‘비싼 전기료’를 내려달라고? 그건 이제 배부른 소리다. 유류세도 마찬가지다. 신재생 에너지를 토대로 한 자립 이전에 유류세 인하는 비현실적이다. 지난해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7656만9000배럴로, 6년 만에 사상 최고점을 찍었다. 툭하면 “서민 살림살이” 어쩌고하며 전기료, 기름값 깎아달라고 우는 소리를 해대는 가정의 풍경은 쓴웃음을 짓게 한다. 한겨울에 반바지와 반팔티를 입고 있다. 몸은 다 큰 어른인데 머릿속은 유치원생 같은 우리 사회에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독일의 실적도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녹색당이 원내에 진출할 만큼 거센 반핵운동의 결과가 쌓여 시민들이 신재생 에너지 확대를 이끌었다. 1970년대 석유파동,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계기로 대체에너지원 확보와 원전 폐지가 논의됐다.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키로 했다.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은 “핵기술의 원조는 독일이지만 핵발전을 포기하고 전기요금의 절반은 사회·환경 부담금으로 기꺼이 물겠다는 사회적 공감대 덕분에 오늘날 신재생 에너지 강국이 됐다”고 강조했다.

신재생 에너지 성장의 비결은 다름아닌 높은 전기료와 절약이다. 이 소장은 “전력의 2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려면 요금도 20% 정도 올려야 한다”며 “유가 하락으로 한전이 10조원의 이익을 거뒀다고 전기료를 내리라고 할 게 아니라 신재생 에너지에 투자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독일이 2050년까지 전기 사용량을 20% 줄이기에 나선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지난해 말 파리 기후변화협약은 개도국에 ‘사다리 놓아주기’ 측면도 있다. 선진국들이 앞서서 개도국에 화석연료 발전을 신재생 에너지 발전으로 바꿔주도록 기여하자고 합의했다. 신재생 에너지에 새로운 시장이 대대적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커졌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2월 보고서에서 태양광발전의 설치비 하락을 들어 “정부는 제도개선을 통한 신재생 에너지 보급시장 규모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1월 28일 ‘독일 에너지 전환 정책의 추이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은 독일의 17분의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신재생 에너지에 의한 발전 비중은 일본이 한국의 약 10배, 미국은 8배나 된다. 송용주 한경연 연구원은 “최근 환경문제 해결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개발도상국에서도 신재생 에너지 이용 확대가 가속화되는 추세”라며 “특히 중국의 신재생 에너지 투자와 발전량은 세계 1위 수준으로 우리를 앞지르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의 경쟁력은 높지 않은 편이다. 2010년 삼성그룹은 5대 새 먹거리 사업으로 태양광발전을 꼽았으나 금융위기와 중국 업체의 공세에 거의 접다시피 했다. 한화큐셀이나 OCI 정도가 터널을 뚫고 나와 빛을 보는 단계다. 풍력도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두산중공업이 새로 키우려다가 본업에 어려움을 겪자 후순위로 밀렸다. 효성은 신재생 에너지에 안정적 전력 공급을 돕는 ‘스태콤’ 사업을 이어오는 정도다. 그나마 LG그룹은 LG전자의 태양광 모듈, LG화학의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LG CNS의 에너지관리시스템 같은 수직 계열화를 갖추고 최근 투자를 늘리고 있다. SK그룹은 지난달 미래 성장동력으로 신에너지 분야를 선정해 역량을 모으기로 했다. 정부는 2035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11%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신재생 에너지 사업은 국제적으로 급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환경보호라는 ‘당위성’ 차원을 넘어 ‘경제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철용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보조금을 빼고도 신재생 에너지의 발전단가가 화석연료의 발전단가와 같아지는 균형점, 이른바 ‘그리드 패러티’가 2020년에 달성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국내는 싼 전기료가 최고 장벽이다.

업계는 현재 그리드 패러티가 kWh당 120~130원 정도로 추산한다.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2014년 기준 kWh당 석탄은 60원, 가스는 70원, 원자력은 120원인 데 비해 태양광은 140원이다. 반면 풍력은 이미 90원으로 떨어졌다. 그리드 패러티는 2020년쯤 예상된다. 석탄과 가스는 80원, 원자력은 130원인 데 비해 태양광은 80원, 풍력은 70원까지 떨어져 역전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이는 지역 차이가 크다. 중동지역은 일조량이 많아 kWh당 발전단가가 70원 수준이다. 2015년 여름 미국 네바다주 모하비 사막에서 본 태양광 패널이 널린 장관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캔자스주 등지 미국 대평원에 널린 수백기의 풍력발전기도 그랬다. 미국의 풍력도 kWh에 60~70원 수준이다. 이철용 연구위원은 “풍력발전의 경제성을 가르는 초속 6m 이상 나오는 국내 육지는 적고, 해상도 설치비가 비싸 초속 8m 이상 나와야 경제성이 있는데, 많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는 새만금이나 시화방조제 정도가 가능성이 높다. 바람 에너지의 50% 이하만 풍력발전에 이용이 가능한데, 한국 잠재량은 독일의 10분의 1 수준으로 알려졌다.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지난해 덴마크,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를 방문하고 지역 차이를 실감했다고 한다. 홍 교수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유럽 평원은 인구밀도가 낮아서 풍력발전단지로서 경쟁력이 높더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토지 가치까지 높아서 풍력 적용이 몇 배는 어렵다.

독일 풍력발전 수치만 보면 오해를 낳는다. 무엇보다 전기료가 비싸서 신재생 에너지 발달이 가능했다. 또한 유사시 이웃나라들에 언제든 전력을 빌려올 수 있는 연계 송전망이 구축된 점도 주목해야 한다. 프랑스는 원전, 노르웨이는 수력이 풍부한데 서로 도와줄 연계망이 돼 있다. 홍 교수는 “그러나 우리는 고립된 ‘섬’과 같다. 신재생 에너지를 늘리면 기후 탓에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는데 어디서 전력을 끌어올 것이냐”고 말했다.

한 대안으로 러시아 연해주의 풍부한 바람을 이용한 풍력발전을 활용할 만하다는 게 2012년 말 현지를 답사한 홍 교수의 제안이다. 30GW 정도 풍력단지를 만들어 중국 동북3성으로 공급하고 일부는 산둥반도와 잇는 서해 해저케이블을 통해 한국으로 끌어오는 구상이다. 정부는 2~3년 전부터 러시아~중국~서해 전력망 연결 문제를 협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신재생 에너지 시대에도 끌려가는 처지가 될 공산이 크다. 이명박 정부 때 해외자원 개발을 빌미로 엉뚱한 곳에 돈을 쓰고, 4대강 개발에 22조원씩 예산을 쏟아부었다. 박근혜 정부도 본질상 다를 게 없다. 이미 유럽은 물론 미국, 중국까지도 에너지 대전환 시대를 대대적으로 맞이하고 있다. 에너지 자급률은 약 10%에 머물고, 신재생 에너지 투자까지 늦은 한국은 진퇴양난에 빠진 모습이다. 모하비·몽골사막이나 유럽·미국의 대평원은커녕 셰일가스조차 없어 ‘신이 외면한 땅’인 한국은 대체 어디서 답을 찾아나가야 할까. 머리 위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인공태양’ 에너지 개발 어디까지 왔나

톰 크루즈 주연의 2013년 공상과학 영화 <오블리비언>에는 비행체들이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중수소를 얻어서 리튬과 반응시켜 핵융합 에너지를 얻는 모습으로 보인다. 만에 하나 ‘인공태양’인 핵융합 반응이 현실화되면 거의 에너지 걱정 없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러나 아직 영화일 뿐 현실은 갈 길이 너무 멀다. 세계 각국에서 2040년쯤 상용화를 목표로 하지만 여전히 실험단계다. 핵융합 에너지를 얻으려면 태양의 중심보다 뜨거운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가두는 그릇인 핵융합 장치가 필요하다.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프로젝트는 초기에 미국·러시아·유럽연합(EU)·일본 등이 이끌고 한국과 중국이 2003년, 인도가 2005년에 합류했다. 중국은 ITER와 별개로 훨씬 큰 중국핵융합공정실험로(CFETR)도 짓고 있다. 중국 정부는 EU가 2050년 이전에 핵융합 발전을 실현한다는 계획보다 10년 앞서 핵융합을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한국의 국가핵융합연구소(NFRI) 핵융합 연구계획은 2040년대가 되면 가정과 사무실에 전기를 공급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핵융합연구소는 1995년 초전도 핵융합장치 KSTAR 개발에 착수해 2007년 완공, 이듬해 플라즈마 개발에 성공했다. 다만 에너지 계통의 한 전문가는 “핵융합 발전은 이상적이지만 실현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장담키 어렵다”고 말했다. 1억도의 플라즈마를 만들기도 어렵지만, 가둬서 계속 연쇄반응을 이끌어내기가 쉽잖기 때문이다. 아직 몇 분 동안만 작동할 수 있다.

한편 또 다른 인공태양을 추구하는 ‘인공 광합성’ 연구도 주목해볼 만한 분야다. 식물광합성 원리로 무한청정한 태양광에너지를 이용해 원하는 화학제품, 즉 아미노산과 플라스틱 원료 등을 생산하는 기술이 ‘태양광 화학공장 인공광합성’이다. 한국화학연구원은 광촉매제를 활용해 원료물질과 효소만 넣어주면 태양광 이외에 추가 에너지 없이 화학물질을 얻는 이 기술을 개발해 2008년 해외 학술지에 실었다. 화학연구원 백진욱 인공광합성그룹장은 “다른 화석연료가 필요 없이 태양빛으로 에탄올이나 다른 화학물질을 얻어내는 기술”이라며 “지금은 효율이 낮지만 20~30년 안에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구온난화와 자원고갈 문제를 풀면서도 원자력과 달리 위험성이 없어 자연친화적인 기술이라는 게 백 박사의 설명이다. 자원빈국 한국이 믿을 건 머리뿐인지도 모르겠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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