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관리위로 위상 떨어진 여야 위원회, 마음은 공천심사위

윤호우 선임기자 2016. 2. 1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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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공심위’ 때보다 격하됐지만 현역 의원과 예비 후보에겐 공포의 대상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각 당이 만든 공천 관련 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위상은 예전 총선과 같지 않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상향식 공천(국민공천제)을 당헌·당규에 명시해 놓았고,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시스템 공천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와 더민주의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공관위)가 예전 총선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일단 명칭 자체가 예전 총선의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에서 공천관리위(공관위)로 격하됐다. 심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공천’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공관위가 뜻밖의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어 현역 의원들과 예비 후보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공관위의 선택이 곧바로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과연 이번 총선에서도 공관위가 예전 공심위처럼 이름값을 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새누리당은 일찌감치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한구 의원이 공관위원장을 맡았다. 이 위원장은 친박 인사로 분류된다. 주목해야 할 공관위 구성은 내부 인사(전체 11명 중 5명)의 계파별 분포다. 친박계로는 이한구 위원장과 박종희 사무2부총장, 김회선 클린공천지원단장이, 비박계로는 황진하 사무총장과 홍문표 사무1부총장이 포진하고 있다. 사실상 친박계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친박계의 한 관계자는 “선대위 체제로 가더라도 공관위의 결정은 최고위원회의 비준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최고위원회에도 서청원·이인제·이정현·김태호 의원 등 친박이 다수다. 공관위에서 최고위원회에 이르기까지 공천 결정과정에서 친박의 목소리가 더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비박이 믿을 수 있는 것은 당헌·당규라는 원칙이다. 당헌 제97조에는 ‘당의 각종 공직선거의 후보자는 국민참여선거인단대회 등 상향식 추천방식을 통해 추천한다고 돼 있다. 김무성 대표는 2월 11일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공관위)가 당헌·당규에 맞게 공천 관리를 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상향식 공천을 명시한 당헌·당규를 강조한 점과 공천 심사가 아닌 공천 관리를 명백히 언급했다는 점에서 김 대표의 의도가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이한구 위원장은 라디오 인터뷰나 기자회견에서 “상향식 공천제는 바람직한 제도라 생각하지만 제목이 좋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라며 상향식 공천에 물음표를 달았다. 이 위원장은 상향식 공천과 반대되는 제도인 ’컷 오프‘(예비심사 후 경선 배제) 실시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11일 기자회견에서 “월급쟁이, 양반집 자제들 스타일로 (국회의원)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스타일로 하는 사람이 무조건 부적격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집중 심사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의 표현은 이 위원장과 사뭇 다르다. 때문에 ’무(김무성)·한(이한구) 갈등‘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서울 은평갑에 출마한 최홍재 예비후보의 친동생인 최공재 공관위원 문제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김 대표는 공관위의 제한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공관위엔 재량이 없다”면서 “상향식 공천이라는 것이 경선하는 데 일절 관여를 못하게 돼 있기 때문에 공관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감시를 하는 것이지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최 공관위원에 대한 질문이었지만 이한구 위원장을 비롯한 공관위원의 역할이 감시만 하는 것으로 의미를 축소시켰다. 이한구 위원장은 ’컷 오프‘ ’우선 공천‘ 등으로 공관위의 재량을 넓히려 하는 반면, 김무성 대표는 공관위가 단순히 경선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역할로 국한시키려 한 것이다. 한 비박 측 관계자는 “룰은 대강 정해져 있지만 룰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할 것인가는 결국 공관위의 선택이기 때문에 공관위가 어떻게든 공천에 대한 권력을 휘두르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무·한 갈등‘은 아직 예고편에 불과하다. 본격적으로 공천이 시작되면 친박·비박 간의 일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의 상향식 공천에 맞서 시스템 공천을 표방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해 누누이 시스템 공천을 강조했다. 시스템 강조는 여당의 공천 관련 위원회보다 훨씬 더 많은 관련 위원회를 낳았다.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 비례대표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 전략공천관리위원회, 공직선거후보자추천재심위원회 등의 공천기구가 있다. 예전 총선의 공천심사위원회가 가졌던 막강한 권력을 여러 갈래 위원회로 쪼갬으로써 당 지도부라든지 계파의 입김이 줄어들도록 한 것이다. 선출직 공직자평가위원회(위원장 동국대 조은 교수)가 현역 의원들의 평가를 통해 20% 탈락자를 걸러내면,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위원장 백재현 의원)의 평가를 거친 예비 후보들을 대상으로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위원장 홍창선 전 의원)가 당의 공천을 결정하게 된다. 20% 이내인 전략공천 지역과 비례대표 후보에 대해서는 전략공천관리위원회(위원장 김성곤 의원)와 비례대표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가 각각 결정권을 갖게 된다. 인재영입위원회(위원장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는 외부인사 영입을 맡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위원회 가운데 가장 공천에 영향을 미치는 기구가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공관위)다. 비록 많은 권한이 분산됐지만 사실상 공천을 결정하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공관위원장으로 홍창선 전 의원을 임명했다. 공관위원으로는 정장선 전 의원, 김헌태 전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서혜석 전 의원을 비롯한 9명의 위원이 있다. 현역 의원이 한 명도 없어 ’외인구단‘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홍 위원장과 정 전 의원, 서 전 의원이 한때 현역 의원으로 활동해 이들 세 위원의 영향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위원들이 대부분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친하거나 중립적인 인사라 공관위가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일사불란한 선거전략을 따를 것으로 정가에서는 예측하고 있다. 때문에 더민주의 총선 후보 공천은 당 대표와 공관위원장이 갈등 중인 새누리당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띨 것으로 전망된다.

더민주 공관위의 뜨거운 감자는 현역의원 20% 탈락이다. 김 비대위원장은 현역의원들이 대거 국민의당으로 탈당했지만 ’20%룰‘을 남은 현역 의원들에게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홍창선 공관위원장은 아직까지 확답을 피하고 있다. 홍 위원장은 2월 11일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17대(국회) 때 보면 초선이 굉장히 많았고, 늘 40~50%는 된다”고 말했다. 현역 의원 20% 탈락보다 더 많은 현역 물갈이가 있을 수 있다는 암시다. 아직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의 현역 의원 평가가 공관위로 넘어가지 않은 만큼 홍 공관위원장은 탈락률에 대한 성급한 답변을 피했다.

국민의당은 공직후보자격심사위원회 위원장에 전윤철 전 감사원장을 임명했다. 국민의당은 호남지역 현역 의원들의 물갈이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전핏대‘라는 전 전 감사원장의 성향상 국민의당 공심위가 공천과정에서 칼날을 휘두를 것으로 예상된다.

20대 총선의 공관위는 상향식 공천과 시스템 공천을 놓고 장·단점 논란이 계속 불거지고 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여야가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공천을 심사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내려놓고 공천을 관리하는 위원회를 구성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으나 중앙당 차원에서 (현역 의원이나 예비 후보에 대해) 반드시 해야 할 엄격한 후보 평가는 공관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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